판결문으로 보는 세상
세무당국, 압류 후 공매 추진… 재건축위 "압류 무효" 소송
행정법원, 원고 승소 판결 "집합건물법 취지에 어긋나"
[ 김인선 기자 ]
‘강남 재건축의 상징’ ‘아파트값 바로미터’….
내 이름은 은마(銀馬), 1979년 9월3일생이다. 사람들은 나를 다양한 이름으로 부른다. 뭐라고 부르든 간에 크게 개의치 않기로 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니까.
날 세상에 태어나게 한 이는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92)이다. 세무서 말단 공무원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정 전 회장은 1978년 5월26일 구자춘 당시 서울시장에게서 민영주택건설사업 계획을 승인받고 대치동 땅에 나를 짓기 시작했다. 당시로선 파격적인 규모의 대단지였다. 14층 높이 아파트 28개동에 총 4424가구, 상가 및 편의시설 한 개동으로 이뤄진 아파트 단지를 건설했다.
내가 막 걸음마를 떼던 1980년대, 난 이른바 ‘대치동 빅3’인 선경·우성·미도 아파트에 밀려 찬밥 신세였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다. 대치동에 생겨난 무수한 학원과 재건축사업 승인 등으로 ?몸값은 천정부지로 급등했다. ‘똥마아파트’가 ‘금마아파트’로 바뀐 순간이다. 1978년 분양가 2000만원(101㎡)에서 현재 9억여원으로 45배나 뛰었으니 이만하면 성공한 걸까.
잘나가던 앞길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건 2014년께다. 아파트의 핵심용지인 ‘대치동 1020의 1(2190.6㎡)’이 문제였다. 이 토지는 정 전 회장 소유였다. 서울시는 1982년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하면서 12필지였던 이 토지를 한 필지로 환지(換地)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해당 토지가 미등기 상태로 남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미등기가 무슨 문제냐고. 쉽게 설명해보겠다.
정 전 회장은 2006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서울고등법원 항소심 재판 중이던 이듬해 5월 법무부의 출국금지처분에 대해 집행정지 결정을 받아 해외로 출국한 이래 아직까지 귀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을 거쳐 카자흐스탄으로 건너갔고, 정부에서 카자흐스탄 정부에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하자 키르기스스탄으로 이동해 그곳에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까지 체납한 국세만 2225억원에 달한다.
세무당국은 정 전 회장의 체납 세금을 환수하기 위해 미등기 상태로 남은 ‘대치동 1020의 1’을 떠올렸다. 그러곤 지난해 2월 서울시에 요청해 해당 토지를 등기처리하고, 곧바로 압류를 걸었다. 국세청은 지난해 5월 한국자산관리공사에 공매를 추진했다.
그러자 아파트 재건축추진위원회는 세무당국의 압류처분은 무효라며 법원에 소송을 냈다. 이 땅이 제3자에게 넘어가면 다시 사들여야 하고, 새 낙찰자가 비싼 가격을 요구하면 재건축사업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클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내 운명은 어떻게 될까. 예정대로 재건축 사업을 진행해 환골탈태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법원의 판단은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판사 김정숙)는 지난 6월 이모씨 등 은마아파트 주민 세 명이 구로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압류처분무효확인 소송에서 “대치동 1020의 1에 관한 세무당국의 압류처분은 무효”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압류처분은 필연적으로 전유부분과 토지의 분리처분이란 결과를 낳게 되므로 집합건물법의 규정내용과 입법 취지에 반하는 것으로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집합건물법 20조는 ‘구분소유자는 그가 가지는 전유부분과 분리하여 대지사용권을 처분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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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당국, 압류 후 공매 추진… 재건축위 "압류 무효" 소송
행정법원, 원고 승소 판결 "집합건물법 취지에 어긋나"
[ 김인선 기자 ]
‘강남 재건축의 상징’ ‘아파트값 바로미터’….내 이름은 은마(銀馬), 1979년 9월3일생이다. 사람들은 나를 다양한 이름으로 부른다. 뭐라고 부르든 간에 크게 개의치 않기로 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니까.
날 세상에 태어나게 한 이는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92)이다. 세무서 말단 공무원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정 전 회장은 1978년 5월26일 구자춘 당시 서울시장에게서 민영주택건설사업 계획을 승인받고 대치동 땅에 나를 짓기 시작했다. 당시로선 파격적인 규모의 대단지였다. 14층 높이 아파트 28개동에 총 4424가구, 상가 및 편의시설 한 개동으로 이뤄진 아파트 단지를 건설했다.
내가 막 걸음마를 떼던 1980년대, 난 이른바 ‘대치동 빅3’인 선경·우성·미도 아파트에 밀려 찬밥 신세였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다. 대치동에 생겨난 무수한 학원과 재건축사업 승인 등으로 ?몸값은 천정부지로 급등했다. ‘똥마아파트’가 ‘금마아파트’로 바뀐 순간이다. 1978년 분양가 2000만원(101㎡)에서 현재 9억여원으로 45배나 뛰었으니 이만하면 성공한 걸까.
잘나가던 앞길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건 2014년께다. 아파트의 핵심용지인 ‘대치동 1020의 1(2190.6㎡)’이 문제였다. 이 토지는 정 전 회장 소유였다. 서울시는 1982년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하면서 12필지였던 이 토지를 한 필지로 환지(換地)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해당 토지가 미등기 상태로 남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미등기가 무슨 문제냐고. 쉽게 설명해보겠다.
정 전 회장은 2006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서울고등법원 항소심 재판 중이던 이듬해 5월 법무부의 출국금지처분에 대해 집행정지 결정을 받아 해외로 출국한 이래 아직까지 귀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을 거쳐 카자흐스탄으로 건너갔고, 정부에서 카자흐스탄 정부에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하자 키르기스스탄으로 이동해 그곳에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까지 체납한 국세만 2225억원에 달한다.
세무당국은 정 전 회장의 체납 세금을 환수하기 위해 미등기 상태로 남은 ‘대치동 1020의 1’을 떠올렸다. 그러곤 지난해 2월 서울시에 요청해 해당 토지를 등기처리하고, 곧바로 압류를 걸었다. 국세청은 지난해 5월 한국자산관리공사에 공매를 추진했다.
그러자 아파트 재건축추진위원회는 세무당국의 압류처분은 무효라며 법원에 소송을 냈다. 이 땅이 제3자에게 넘어가면 다시 사들여야 하고, 새 낙찰자가 비싼 가격을 요구하면 재건축사업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클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내 운명은 어떻게 될까. 예정대로 재건축 사업을 진행해 환골탈태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법원의 판단은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판사 김정숙)는 지난 6월 이모씨 등 은마아파트 주민 세 명이 구로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압류처분무효확인 소송에서 “대치동 1020의 1에 관한 세무당국의 압류처분은 무효”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압류처분은 필연적으로 전유부분과 토지의 분리처분이란 결과를 낳게 되므로 집합건물법의 규정내용과 입법 취지에 반하는 것으로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집합건물법 20조는 ‘구분소유자는 그가 가지는 전유부분과 분리하여 대지사용권을 처분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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