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우 기자의 맞짱골프 (7) 싱글인증전 도전기
"칼같은 룰로 실력 확인"
골프장 싱글인증대회 참가
첫홀 버디 잡고 상쾌한 출발
어깨 힘 들어가자 티샷 말려
네홀 연속 보기 '눈앞 캄캄'
6오버파 78타로 마감…139명 중 79타이하 66명뿐
[ 이관우 기자 ]
꿈을 꿨다. 드라이버 티샷을 한 순간 페어웨이 한가운데서 난데없이 바위산이 솟아올랐다. 날아가던 공이 만화처럼 산꼭대기로 올라가더니 자리를 잡고 앉아버렸다. OB. “탈락입니다!” 흰 이빨을 드러낸 경기위원이 ‘넌 이제 짐을 싸야 해’라고 말하는 듯 다가왔다. 저승사자처럼 퀭한 그의 눈을 보는 순간 잠이 깼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다.
국내 처음으로 민간 골프장이 주최하는 싱글인증대회에 참가한 것은 진짜 실력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됐다. 시간이 갈수록 ‘롤러코스터’ 증세가 심해졌기 때문이다. 70대 후반을 치다가도 어느 날엔 ‘백돌이’ 수준으로 처참하게 무너지기를 반복했다. ‘핸디(캡)가 얼마예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애매하게 ‘9’라고 둘러댄 게 그 때문이었다. ‘싱글인 듯 싱글 같지 않은’ 묘한 핸디캡은 실력을 슬쩍 숨기기에 좋았다. ‘칼 같은 룰에서 나 자신을 시험해보자’고 결심한 배경이다.
○‘실수 막자’…드라이버 짧게 잡아
대회장은 ‘맞짱골프’의 주 무대인 경기 시흥의 솔트베이CC. 홈그라운드라 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코스에 도착하자마자 가슴이 쿵쾅쿵쾅 요동치기 시작했다. 동반자는 단 한 명. 친구들의 싱글인증전을 구경하러 왔다가 얼떨결에 출전하게 된 30대의 티칭프로였다. 졸지에 1 대 1 매치플레이가 돼버린 것이다. 캐디가 말했다. “골프대회 TV로 많이 보셨죠. 그 룰대로 합니다.”
꿈으로 미리 액땜한 것일까. 첫홀부터 쉽게 풀렸다. 방향 컨트롤을 위해 드라이버를 5㎝가량 짧게 잡고 어드레스 때 무릎을 평소보다 더 폈다. 일어서서 치는 스탠딩 스윙. 백스윙도 절반만 했다. 비거리는 평소보다 20m가량 짧은 190~200m만 나가지만 살짝 페이드가 걸려 러프나 해저드로 공이 이리저리 튀지 않는 안전한 스윙법이다.
펀치샷으로 찍어 친 두 번째 아이언샷이 홀컵 오른쪽 10m 부근에 떨어졌다. 2단 그린을 넘어가야 하는 까다로운 퍼팅이었지만 공은 운 좋게도 홀컵으로 빨려들어갔다. ‘첫홀 버디.’
중장거리 퍼팅 방식을 바꾼 게 주효했다. 공보다 홀컵을 더 자주 보며 빈 스트로크로 거리감을 충분히 익히는 방식이다. ‘본능을 깨우면 골프가 달라진다’던 여러 고수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주변 격려에 멘탈 ‘흔들’
컨디션은 엉망이었다. 이런저런 생각과 사나운 꿈 때문에 잠을 두 시간도 채 못 잤다. 이상하게도 성적은 거꾸로였다. 집중도가 더 높아져서인지 전반에 버디 2개, 보기 2개를 묶어 이븐파를 쳤다. 컨디션을 감안해 전략을 짠 게 먹힌 듯했다. 거리 대신 방향, 어정쩡한 면(面) 대신 목표지점을 찍는 점(點) 공략, 일정한 프리샷 루틴, 느린 백스윙, 퍼팅 때 머리 따라가지 말기. 이렇게 다섯 가지를 꼭 지키자는 다짐이었다.
그린 적중률이 괜찮았다. 18개 가운데 13개(72%)를 그린에 올렸다. 남은 중장거리 퍼팅도 홀컵에 바짝 붙거나 쏙쏙 잘 들어갔다.
문제는 후반. 전반 1오버파를 친 동반자가 “후반에 언더파로 갈 실력”이라며 덕담을 건넸다. 캐디와 대회 진행자들도 ‘라이프 베스트’를 달성해보라며 분위기를 띄웠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였을까. 드라이버 티샷이 자꾸 말렸다. 페어웨이 벙커가 있는 곳마다 티샷한 공이 찾아 들어갔다. 버디를 노릴 만한 파5 첫홀부터 보기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13번홀부터 16번홀까지 네 홀 연속 보기가 나오자 머릿속이 하얘졌다. 후반 7개홀에서만 6오버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바람까지 세차게 불기 시작했다. ‘더블 보기라도 하나 나오면 7자를 그리지 못한다’는 생각이 가슴을 조여왔다.
17번홀(파4). 드라이버 티샷이 벙커 둔덕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리더니 세컨드 샷마저 그린을 놓쳤다. ‘아, 결국 여기서 무너지는구나.’ 25m짜리 어프로치 칩샷을 무조건 붙여야 파 세이브가 가능한 상황. 맞짱골프를 통해 배운 ‘만능 어프로치’를 시도했다. 56도 웨지의 헤드 힐을 들고 페이스를 살짝 닫은 뒤 왼손 엄지손가락을 짧게 당겨잡고 스트로크를 했다. 공이 홀컵 왼쪽 30㎝ 지점에 붙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퍼팅 어드레스를 하는 순간 손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숨까지 가빠지기 시작했다. ‘왜 이러지, 목숨 걸 일도 아닌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온 힘을 다해 그립을 꽉 잡은 뒤 퍼팅 스트로크를 했다. 공이 홀컵을 한 바퀴 돌더니 떨어졌다. ‘으허헉~.’ 풀썩 주저앉아 긴 한숨을 토해냈다. 13번홀(파3)에서 트리플 보기를 한 동반자는 말수가 더 줄었다.
○싱글 가는 길 ‘산 넘어 산’
산 넘어 산. 위기는 18번홀에서 다시 찾아왔다. 초속 3m가 넘는 돌풍이 갑자기 불기 시작한 것. 티를 낮게 꽂고 다운블로로 티샷을 해 페어웨이 벙커 턱을 가까스로 넘겼다. 잔디를 네 번 뜯어 날렸다. 바람의 세기를 감안하지 않으면 이른바 ‘막창’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꼴’만큼은 막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135m 거리를 115m짜리 피칭 웨지로 공략해 12m짜리 오르막 퍼팅을 남겨뒀다. 자칫 퍼팅이 짧으면 다시 굴러내려올 수 있는 상황. 과감하게 스트로크를 했다. 홀컵 70㎝에 공이 붙었다. “이제 됐구나.” 마음이 평온해지자 파 퍼팅이 홀컵 뒷벽을 맞고 들어갔다. 6오버파 78타. 617명이 치른 예선을 통과한 본선 출전자 139명 가운데 39위에 해당하는 성적이었다. 동반자는 파5를 모두 2온시킨 뒤 버디를 잡는 괴력을 발휘한 끝에 76타를 쳤다.
2언더파가 1위를 차지한 이날 9오버파 이하를 쳐 싱글인증서를 받은 사람은 94명. 뭄?골퍼들이 ‘진짜 싱글’로 치는 79타 이하는 66명에 불과했다. 예선전 2라운드 평균 타수가 75.3타인 고수들이었지만 룰을 엄격하게 적용한 결과 절반 이상이 문턱을 넘지 못했다. 장소협찬=솔트베이골프클럽
시흥=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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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같은 룰로 실력 확인"
골프장 싱글인증대회 참가
첫홀 버디 잡고 상쾌한 출발
어깨 힘 들어가자 티샷 말려
네홀 연속 보기 '눈앞 캄캄'
6오버파 78타로 마감…139명 중 79타이하 66명뿐
[ 이관우 기자 ]
꿈을 꿨다. 드라이버 티샷을 한 순간 페어웨이 한가운데서 난데없이 바위산이 솟아올랐다. 날아가던 공이 만화처럼 산꼭대기로 올라가더니 자리를 잡고 앉아버렸다. OB. “탈락입니다!” 흰 이빨을 드러낸 경기위원이 ‘넌 이제 짐을 싸야 해’라고 말하는 듯 다가왔다. 저승사자처럼 퀭한 그의 눈을 보는 순간 잠이 깼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다.국내 처음으로 민간 골프장이 주최하는 싱글인증대회에 참가한 것은 진짜 실력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됐다. 시간이 갈수록 ‘롤러코스터’ 증세가 심해졌기 때문이다. 70대 후반을 치다가도 어느 날엔 ‘백돌이’ 수준으로 처참하게 무너지기를 반복했다. ‘핸디(캡)가 얼마예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애매하게 ‘9’라고 둘러댄 게 그 때문이었다. ‘싱글인 듯 싱글 같지 않은’ 묘한 핸디캡은 실력을 슬쩍 숨기기에 좋았다. ‘칼 같은 룰에서 나 자신을 시험해보자’고 결심한 배경이다.
○‘실수 막자’…드라이버 짧게 잡아
대회장은 ‘맞짱골프’의 주 무대인 경기 시흥의 솔트베이CC. 홈그라운드라 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코스에 도착하자마자 가슴이 쿵쾅쿵쾅 요동치기 시작했다. 동반자는 단 한 명. 친구들의 싱글인증전을 구경하러 왔다가 얼떨결에 출전하게 된 30대의 티칭프로였다. 졸지에 1 대 1 매치플레이가 돼버린 것이다. 캐디가 말했다. “골프대회 TV로 많이 보셨죠. 그 룰대로 합니다.”
꿈으로 미리 액땜한 것일까. 첫홀부터 쉽게 풀렸다. 방향 컨트롤을 위해 드라이버를 5㎝가량 짧게 잡고 어드레스 때 무릎을 평소보다 더 폈다. 일어서서 치는 스탠딩 스윙. 백스윙도 절반만 했다. 비거리는 평소보다 20m가량 짧은 190~200m만 나가지만 살짝 페이드가 걸려 러프나 해저드로 공이 이리저리 튀지 않는 안전한 스윙법이다.
펀치샷으로 찍어 친 두 번째 아이언샷이 홀컵 오른쪽 10m 부근에 떨어졌다. 2단 그린을 넘어가야 하는 까다로운 퍼팅이었지만 공은 운 좋게도 홀컵으로 빨려들어갔다. ‘첫홀 버디.’
중장거리 퍼팅 방식을 바꾼 게 주효했다. 공보다 홀컵을 더 자주 보며 빈 스트로크로 거리감을 충분히 익히는 방식이다. ‘본능을 깨우면 골프가 달라진다’던 여러 고수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주변 격려에 멘탈 ‘흔들’
컨디션은 엉망이었다. 이런저런 생각과 사나운 꿈 때문에 잠을 두 시간도 채 못 잤다. 이상하게도 성적은 거꾸로였다. 집중도가 더 높아져서인지 전반에 버디 2개, 보기 2개를 묶어 이븐파를 쳤다. 컨디션을 감안해 전략을 짠 게 먹힌 듯했다. 거리 대신 방향, 어정쩡한 면(面) 대신 목표지점을 찍는 점(點) 공략, 일정한 프리샷 루틴, 느린 백스윙, 퍼팅 때 머리 따라가지 말기. 이렇게 다섯 가지를 꼭 지키자는 다짐이었다.
그린 적중률이 괜찮았다. 18개 가운데 13개(72%)를 그린에 올렸다. 남은 중장거리 퍼팅도 홀컵에 바짝 붙거나 쏙쏙 잘 들어갔다.
문제는 후반. 전반 1오버파를 친 동반자가 “후반에 언더파로 갈 실력”이라며 덕담을 건넸다. 캐디와 대회 진행자들도 ‘라이프 베스트’를 달성해보라며 분위기를 띄웠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였을까. 드라이버 티샷이 자꾸 말렸다. 페어웨이 벙커가 있는 곳마다 티샷한 공이 찾아 들어갔다. 버디를 노릴 만한 파5 첫홀부터 보기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13번홀부터 16번홀까지 네 홀 연속 보기가 나오자 머릿속이 하얘졌다. 후반 7개홀에서만 6오버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바람까지 세차게 불기 시작했다. ‘더블 보기라도 하나 나오면 7자를 그리지 못한다’는 생각이 가슴을 조여왔다.17번홀(파4). 드라이버 티샷이 벙커 둔덕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리더니 세컨드 샷마저 그린을 놓쳤다. ‘아, 결국 여기서 무너지는구나.’ 25m짜리 어프로치 칩샷을 무조건 붙여야 파 세이브가 가능한 상황. 맞짱골프를 통해 배운 ‘만능 어프로치’를 시도했다. 56도 웨지의 헤드 힐을 들고 페이스를 살짝 닫은 뒤 왼손 엄지손가락을 짧게 당겨잡고 스트로크를 했다. 공이 홀컵 왼쪽 30㎝ 지점에 붙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퍼팅 어드레스를 하는 순간 손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숨까지 가빠지기 시작했다. ‘왜 이러지, 목숨 걸 일도 아닌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온 힘을 다해 그립을 꽉 잡은 뒤 퍼팅 스트로크를 했다. 공이 홀컵을 한 바퀴 돌더니 떨어졌다. ‘으허헉~.’ 풀썩 주저앉아 긴 한숨을 토해냈다. 13번홀(파3)에서 트리플 보기를 한 동반자는 말수가 더 줄었다.
○싱글 가는 길 ‘산 넘어 산’
산 넘어 산. 위기는 18번홀에서 다시 찾아왔다. 초속 3m가 넘는 돌풍이 갑자기 불기 시작한 것. 티를 낮게 꽂고 다운블로로 티샷을 해 페어웨이 벙커 턱을 가까스로 넘겼다. 잔디를 네 번 뜯어 날렸다. 바람의 세기를 감안하지 않으면 이른바 ‘막창’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꼴’만큼은 막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135m 거리를 115m짜리 피칭 웨지로 공략해 12m짜리 오르막 퍼팅을 남겨뒀다. 자칫 퍼팅이 짧으면 다시 굴러내려올 수 있는 상황. 과감하게 스트로크를 했다. 홀컵 70㎝에 공이 붙었다. “이제 됐구나.” 마음이 평온해지자 파 퍼팅이 홀컵 뒷벽을 맞고 들어갔다. 6오버파 78타. 617명이 치른 예선을 통과한 본선 출전자 139명 가운데 39위에 해당하는 성적이었다. 동반자는 파5를 모두 2온시킨 뒤 버디를 잡는 괴력을 발휘한 끝에 76타를 쳤다.
2언더파가 1위를 차지한 이날 9오버파 이하를 쳐 싱글인증서를 받은 사람은 94명. 뭄?골퍼들이 ‘진짜 싱글’로 치는 79타 이하는 66명에 불과했다. 예선전 2라운드 평균 타수가 75.3타인 고수들이었지만 룰을 엄격하게 적용한 결과 절반 이상이 문턱을 넘지 못했다. 장소협찬=솔트베이골프클럽
시흥=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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