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블(double), 따블.” “따따블, 따따블.” “OO동 갑니다.”
늦은 밤 시내 중심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소리다. 특히 금요일 밤이나 연말연시 사람들이 모임 등을 하기 위해 많이 몰리는 날이면 더 혼잡스럽다. 택시기사들은 유리창만 살짝 내리고는 “어디 가느냐”고 묻는다. 나오는 요금의 두 배를 주겠다거나 네 배를 주겠다는 사람도 있다. 택시기사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만 골라 태운다. 점잔을 빼거나 ‘정석’대로 오는 택시를 차례대로 기다려 ‘제값’ 주고 집에 가려는 사람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길거리에서 허송세월해야 한다.
요즘은 조금 나아졌다고 하지만 택시의 횡포와 택시기사들의 불친절은 여전한 불만 사항이다. 경제학에서는 ‘수요와 공급’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이런 현상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서 벌어지는 일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은 넘쳐나는 데 반해 택시는 부족해서 택시기사들이 승객을 마음대로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택시기사가 왕이고, 손님은 봉이다.
그런데 경제학에서는 수요와 공급 이야기를 하면서 한발 더 나아간다. 즉 부족한 것은 저절로 채워지고 넘치는 것은 저절로 사라져 균형을 맞춰간다는 이야기도 한다. 택시의 경우 택시 공급이 너무 적어 택시기사가 왕 노릇을 할 정도면, 택시영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대거 몰려들게 돼 있고, 택시 공급이 늘어나게 돼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택시에 대한 불만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왜 그럴까. 시장이 잘못된 것일까. 이유는 택시의 영업이 독점이기 때문이다.
택시영업을 하는 회사가 한둘이 아니고 수만명의 개인택시기사까지 경쟁하는데, 독점이라니 무슨 말이냐고 의아해할 수 있다. 운수사업법에 따르면 택시운전자격은 일정 요건만 갖추면 누구나 취득할 수 있다. 그리고 택시면허 취득자는 본인이 원하면 누구라도 또 언제라도 택시영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누구라도 택시면허를 취득할 수는 있지만, 누구나 택시영업을 할 수는 없다. 정부가 택시의 총 운행 대수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택시 운행 대수를 제한해 택시영업을 독점시장으로 만든 것이다.
서울에서는 개인택시를 포함해 택시 7만3000여대가 운행 중이며, 이 숫자는 1990년대 초반 결정된 이래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법인택시를 운전하면서 15년 무사고 등 자격 요건을 갖춘 개인택시면허 대기자가 상당수며 이들은 개인택시 공급 확대를 요구했지만 정부는 이 요구를 계속 묵살했다. 정부가 진입장벽을 쳐 새로운 경쟁자를 배제하 ?기득권자의 이익을 보호함으로써 시장에 이미 진입한 기존 택시법인과 개인택시 기사들에게만 영업할 수 있도록 일종의 독점권을 부여한 것이다.
개인택시를 운행하려면 신규 취득은 불가능하고 기존 개인택시사업자로부터 면허를 양수받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다 보니 개인택시 면허 가격(이른바 번호판값)이 형성돼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다. 최근에는 택시 감차정책에 따라 이 가격이 치솟고 있다. 올 1월 교통일보 보도에 따르면 개인택시 면허 가격이 경남 거제시는 1억8500만원, 충북 청주시는 1억2000만원이나 된다. 서울과 부산은 7500만원 선에서 거래가 이뤄진다고 한다. 이것은 독점에 따른 일종의 지대(rent)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어떤 재화나 서비스를 공급하는 사람(기업)이 단 한 명일 경우 이것이 독점이라고 알고 있다. 택시영업 부문에서는 다수 회사가 존재하고 게다가 수많은 개인택시기사가 경쟁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독점의 폐해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이런 개념과 실제의 불일치는 널리 알려진 독점의 개념이 적절하지 않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독점의 개념과 달리 독점은 국가가 특정 개인 또는 그룹에 특권을 제공함으로써 형성된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국가가 부여한 특권으로 인해 다른 사람(기업)의 시장 진입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독점이 형성되고 유지된다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 역시 정부가 부여한 특권으로서의 독점을 시민의 ‘자연적 자유’에 대한 침해로 보고 격렬하게 공격했다. 이런 ‘초기 독점’의 특성은 사악한 이익의 추구와 횡포였다. 초기 독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현재까지도 이어지면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독점에도 두 가지가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 문제의 출발선이다. 즉 정부 특혜를 통한 독점과 시장 경쟁으로 형성되는 독점을 구분하지 못하고 양자를 동일시함으로써 문제가 발생한다. ‘공급자가 한 사람(기업)일 경우 독점’이라는 잘못된 정의를 따른 결과다. 정부가 제공하는 특권이 아닌 시장 경쟁을 통한 독점은 소비자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다. 이때의 독점은 시장에서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결과 나타난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오히려 소비자 이익을 증진한다. 이런 의미에서 시장점유율을 ‘소비자선호율’로 고쳐 불러야 한다는 논의도 나오고 있다. 시장경쟁을 통한 독점이란 다른 기업과의 경쟁에서 값싸고 질 좋은 제품을 효율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소비자의 독점적 선택을 받았다는 증거에 다름 아니다. 또 여기에서는 이 시장을 노리는 경쟁자가 언제든지 진입할 수 있다는 점도 정부의 특혜에 의한 독점과는 구별된다.
시장경쟁을 통한 독점을 ‘사악한 독점’이라 해 징벌하는 것은 경쟁을 왜곡하고 기업가 정신을 말살한다. 공급자가 단 한 명일 경우 독점이라고 하는 개념은 적절하지 못할 뿐 아니라 커다란 해악을 끼치고 있다. 정부 특혜에 의한 독점이 진짜 독점의 문제다.
권혁철 <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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