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달 공들인 기업구조조정전문사 설립 '백지화'
은행 "유암코 안팔겠다"에 하루 만에 설립 중단 결정
금융위 내부 '신설' 주장엔 "신속한 구조조정이 최우선"
"틀렸어도 강행하는게 관임 위원장이라 가능한 일"
[ 박동휘 기자 ]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16일 하루 동안 금융위원회 핵심 관계자들과 수차례 회의를 열었다. 전날 하영구 전국은행연합회장과 독대한 자리에서 ‘유암코(연합자산관리) 매각을 중단하겠다’는 은행들의 의사를 전달받은 터였다. 매각 중단은 임 위원장이 지난 3개월간 추진해온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 신설 대신 부실채권 투자에서 노하우를 축적한 유암코에 향후 기업 구조조정의 핵심 역할을 맡길 수 있게 된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금융위 실무진은 기존 신설안을 강행해야 한다는 주장을 좀처럼 굽히지 않았다. 밤늦게까지 계속된 이날 회의에서 임 위원장은 “우리가 욕을 먹는 게 두려워 결정을 미뤄선 안 된다”며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 신설 방침을 백지화했다. 3개월간 밀어붙인 정책을 불과 하루 만에 포기한 신속한 결단이었다.
금융위가 기업구조조정전문회 ?신설 방안을 접고, 유암코를 확대·개편해 향후 한계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하기로 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각에선 아까운 시간을 낭비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관(官)이 시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신속하게 새로운 결정을 내린 보기 드문 사례”라는 게 금융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임 위원장은 20일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유암코로 선회한 배경과 관련, “기업 구조조정이란 절체절명의 과제를 신속하게 수행하는 게 핵심이지, 비판이 나올 게 두려워 우왕좌왕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임 위원장이 시장 중심의 구조조정 추진을 위해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 신설을 처음 거론한 건 지난 6월4일 한경 밀레니엄포럼에서다. 당시 그는 “채권은행이 모든 부담을 떠안는 구조조정 방식엔 한계가 있다”며 “민간자본 주도형 구조조정 방안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임 위원장 취임 이후 구성된 정부 태스크포스(TF)에선 두 가지 방안이 제시됐다. 지난 6년간 부실채권 정리 및 투자 분야에서 성과를 내온 유암코를 활용하자는 안이 1순위로 고려됐다. 그런데 유암코의 주주인 은행들 반응이 미온적이었다. 유암코에 출자한 6개 시중은행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고 유암코를 매각하려 했기 때문이다. 임 위원장은 “기관 신설이 유일한 대안이었다”고 했다.
금융위 실무진도 새로운 기관 신설에 적극적이었다.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 설립이라는 아이디어가 나오자 외국계 은행, 저축은행, 보험사, 캠코(자산관리공사) 등 출자하겠다는 회사들이 줄을 섰다. 은행권 부담을 줄이면서 신용위험도 B등급에서 C등급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는 기업을 患翅?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 설립이 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새로운 기관을 신설하는 작업은 만만치 않았다. 막상 설립 추진이 본격화하자 외국계 은행 등이 발을 뺐다. “신설 기관을 맡아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할 전문가를 찾기도 너무 어려웠다”(임 위원장)는 점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시간도 충분치 않았다. 은행권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유암코 매각 대금을 신설 회사에 출자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려면 구조조정전문회사 출범은 내년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들이 유암코 매각 철회 의사를 밝히면서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됐다는 게 임 위원장의 설명이다. 신설 회사 기관장 자리를 놓고 이곳저곳에서 ‘눈독’을 들이는 등 인사잡음에 대한 우려도 방향을 바꾼 배경이 됐다는 후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지주회사 회장은 “신속한 궤도 수정은 임 위원장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한번 일을 추진하면 ‘이 산(山)이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나도 자존심 때문에 계속 오르는 게 관료들의 속성’이라는 통념을 깬 결단이었다”고 덧붙였다.
유암코 운영과 관련, 임 위원장은 “국내 사모펀드(PEF)들과 공동으로 펀드를 운용하거나, 기업 구조조정 분야에서 역량이 입증된 PEF에 투자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우선 규모가 작은 기업의 구조조정부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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