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브랜드로 이겼다
스와로브스키 등 세계적 업체 공동마케팅 제안 모두 거절
미국 진출 석달만에 백화점 입점…품질·디자인·가격으로 '승부'
[ 뉴욕=이심기 기자 ]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기업 가치가 10억달러가 넘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유니콘’이라고 부른다. 시장에서 각광받는 ‘독보적 존재’라는 뜻이다. 대부분 첨단기술을 갖고 있는 하이테크(high tech) 기업이다. 노동집약적인 로테크(low tech) 분야에서도 독보적인 기업, 유니콘이 나올 수 있을까.
1997년 미국에 진출해 미국 전역의 최고급 백화점 3674곳에서 자체 브랜드 매장을 운영 중인 주얼리 기업 나드리의 최영태 회장은 “전통산업에서도 독보적인 브랜드 가치를 확보하면 하이테크 기업을 능가하는 유니콘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드리는 미국에 진출하기 전인 1989년 세계적인 주얼리 업체 스와로브스키로부터 공동 마케팅 요청을 받았다. 한국 기업 중 유일하게 거래하던 나드리의 제품 경쟁력을 보고 나드리가 제작한 주얼리에 스와로브스키 상표를 부 幣舅渼?제안이었다. 당시 나드리 반지는 주얼리 업체들이 통상 사용하는 8각이 아니라 12각으로 세팅한 인조보석을 사용해 인기가 높았다.
최 회장은 “단기적으로는 스와로브스키 상표를 다는 게 제품 판매에 절대적으로 유리했지만 그 순간 ‘나드리 브랜드는 끝난다’고 판단해 제안을 거절했다”고 말했다.
나드리는 비슷한 시기에 일본 백화점으로부터 자체상표(PB)로 납품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소니의 휴대용 카세트플레이어 워크맨이 한국에서 선풍적으로 팔릴 때였다. 최 회장은 “당시 일본 구매담당자에게 ‘한국의 워크맨 시장은 소니 것이냐, 한국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건 소니의 시장이지’라고 대답하기에 내가 다시 ‘맞다. 소니가 팔리면 소니 시장이고 나드리가 팔리면 나드리 시장’이라고 받아쳤다”며 “그렇게 협상이 끝났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브랜드 가치를 키우는 방법으로 “팔리는 제품과 팔고 싶은 제품, 팔아야 할 제품을 구분해야 한다”며 “지금 당장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이유로 팔리는 제품만 생산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신 “시장의 트렌드를 보여주고, 소비자의 눈을 뜨게 하는 ‘팔고 싶은 제품’을 끊임없이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팔아야 할 제품은 무엇일까. 그는 “기업이 추구하는 이상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기업에 생명을 부여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미국에 오자마자 뉴욕 맨해튼의 백화점 주얼리 매장부터 봤는데 쇼케이스 안에 있는 제품이 ‘죽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왜 이렇게밖에 못 만들었을까. 이 정도 고급 브랜드면 기술이 없지는 않을 테고, 백화점도 이 정도 수준의 품질을 묵인하지 않을 텐데라는 의문이 들었다”며 “원인을 찾고 보니 재고 비용 등 판매 부담을 고객과 납품업체에 떠넘기는 유통구조에 있었다”고 말했다.
나드리의 품질과 원가 경쟁력은 미국 진출 3개월 만인 1997년 11월 노드스트롬 백화점이 주얼리 브랜드를 나드리로 교체하면서 인정받았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백화점에서 테스트 판매를 했는데 3일 만에 모두 팔렸고 노드스트롬의 미국 93개 매장에 주얼리를 공급하는 본계약 체결로 이어졌다. 그렇게 블루밍데일스, 삭스피프스애비뉴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명품 백화점들이 나드리에 러브콜을 보냈다. 최 회장은 이 같은 회사의 급성장에 대해 얘기하면서도 매출과 영업이익률을 묻자 회사의 핵심 경쟁력과 관련한 내용이라며 함구했다.
최 회장은 한국의 주얼리산업이 쇠퇴의 길로 접어든 이유에 대해 “글로벌 시장에서 자체 브랜드를 전개한 경험과 역사를 써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전통산업 분야에서 독보적 브랜드를 구축한다면 하이테크산업과 달리 예상치 못한 신기술의 등장으로 밀려날 리스크에 시달리지 않을 뿐 아니라 탄탄한 시장 입지를 확보해 불황의 무풍지대를 차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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