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배임죄 남용' 관련 토론회…경영판단 처벌 완화 '신호탄' 되나

입력 2015-09-21 19:05  

[ 양병훈 기자 ] “범죄가 될 수 있는 행위 중에서 가장 오남용되거나 그럴 우려가 농후한 것이 배임죄다. 법인 대표가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걸 예측하고 경영상 판단에 의해 위험을 무릅쓰는 경우에도 처벌한다. 배임죄는 손해를 입히려는 고의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데 법원은 이런 경우도 처벌 대상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대법원 형사실무연구회가 21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연구발표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발표자로 나온 문형섭 전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사법연수원 4기)는 배임죄의 남용 위험성을 이같이 지적했다.

문 전 교수는 “배임죄 조문은 처벌 대상을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했지만 일부 판례는 채무불이행도 배임죄로 처벌한다”며 “재산상의 손해가 없었지만 그런 위험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배임죄를 적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연구발표회 주제는 부동산을 특정인에게 팔겠다고 계약한 뒤 돈을 일부 받아놓고 다른 사람에게 팔았을 때 배임죄로 처벌하는 판례, 즉 부동산 이중매매를 배임죄로 처벌하는 게 타당한지 여부였다. 그러나 이 주제는 근본적으로 배임죄 범위와 관련이 있어 발표 중에 배임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계속 이어졌다. 문 전 교수는 아무도 배임죄의 남용 위험성을 주목하지 않았던 2001년부터 줄곧 배임죄에 대한 劇낡?판례를 비판하는 논문을 내며 이런 주장을 펴고 있다.

문 전 교수는 “부동산 이중매매가 신뢰를 깨는 행위인 건 맞지만 모든 신뢰관계의 위배를 배임죄라고 할 수 없다”며 “그렇다면 모든 계약불이행을 배임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결론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배임죄가 성립하는 신뢰관계는 일반적인 거래 당사자 사이를 넘는 ‘특별한’ 것이어야 한다”고 전제한 뒤 “독일에서는 상대방의 재산을 보호하는 게 계약의 본질적 내용일 때만 배임죄를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인 경영자는 단지 법인 재산을 지키는 것만이 임무가 아니므로 경영상 판단으로 손실을 봤을 때는 배임죄로 볼 수 없다는 논리다.

일각에서는 대법원 형사실무연구회가 배임죄 반대 논리로 유명한 문 전 교수를 발표자로 불렀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배임죄의 오남용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커지자 이런 법리를 검토하기 위해 부른 것 아니겠느냐는 분석이다. 한 변호사는 “최소한 들어볼 만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해 부른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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