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보건·바이오 R&D, 칸막이 행정에 멍든다

입력 2015-09-22 18:15  

"全주기 관리 필요한 바이오 분야
세 부처 나뉜 관리체계 비효율 가중
미국 NIH 같은 범부처 독립기구 절실"

김선영 < 서울대 교수·생명과학 sunyoung@snu.ac.kr >



보건·바이오 분야에서 연구개발(R&D)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관련 산업군은 인간의 건강을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의약, 진단, 의료 기기만 합쳐도 1500조원의 시장이 형성돼 있다. 모든 선진국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은 R&D 연방예산의 24% 정도인 36조원을 보건·바이오 분야에 쓸 정도다.

그러나 한국의 보건·바이오 R&D는 세계 10위 경제국이라는 지위에 걸맞지 않게 후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일단 이 분야 R&D 예산이 2조원도 안 된다. 형편상 많은 돈을 쓸 수 없다면 투자 대비 생산성이라도 높아야 하는데 지금 구조로는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우리는 보건·바이오 분야 R&D에서 국가 차원의 청사진이 없다. 보건·바이오 R&D에서 주관 부처가 어디인지 모호해 통합적 관리체계가 구축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보건·바이오 분야는 건강을 다룬다는 특수성 때문에 보건복지부가 주ズ光냅?것 같지만 예산 구조로 보면 미래창조과학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훨씬 더 크다. 복지부는 2015년 연구개발 예산이 5117억원으로, 이는 국가 R&D 예산 19조원의 2.7%에 불과하다. 또 미래부와 산업부 관련 예산의 절반 정도에 해당한다. 게다가 이들 부처 간에 협업은 고사하고, 칸막이가 매우 높고 영역 다툼도 심하다.

불필요한 경쟁으로 인한 비효율성이 지적되자 미래부는 원천기술, 산업부는 제품 개발, 복지부는 임상연구를 한다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듣기에는 그럴듯하지만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결과다. 보건·바이오는 기초과학, 실용화 연구, 공정 개발, 임상연구 등이 상호연계성을 가지고 전(全)주기에 걸쳐 관리해야만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부처 간 협업이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에서 이런 식의 인위적 영역 설정은 오히려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데 한몫하고 있다.

모든 구미 선진국, 중국, 일본이 막대한 자금력과 최고급 인프라로 경쟁력을 구축해 나가는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전열을 가다듬어야 한다. 미국에서는 국립보건원(NIH)이라는 조직이 중추적 기능을 하고 있다. 바이오 예산의 90%가 넘는 33조원가량을 받아, 20%는 자체 예산으로 쓰고 80%인 약 26조원은 대학과 연구소에 배분한다.

한국에도 국립보건연구원이 있지만 그 위상은 초라하다. 정규직원은 159명, 예산은 1272억원에 불과하다. 직급이 있어야 영(令)이 서는 우리 공무원 조직에서 질병관리본부장은 메르스 사태로 그나마 차관급으로 격상했지만, 보건연구원 원장은 여전히 1급이다. 다부처 성격의 보건·바이오 R&D에서 중심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건·바이오 R&D 부문에서 혁신의 필연성을 절감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작년 7월 의장인 대통령에게 바이오 관련 범부처 독립기구를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보건·바이오의 다부처 성격, 산업적 중요성, 국가 청사진 작성 등을 다룰 조직을 국무총리실 또는 청와대 산하에 두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R&D 예산체계를 크게 바꿀 이 제안은 관련 부처의 반발로 유야무야됐다고 한다.

1980년대에는 정부가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해 오늘날 한국이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했다. 보건·바이오 분야에서 한국의 인력은 그야말로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이들을 지원할 정부 시스템은 후진적이다 못해 퇴행적이기까지 하고, 그 정점에는 예산 배분권한을 가진 정부 부처들이 있다. 21세기 최대 ‘먹거리’ 하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김선영 < 서울대 교수·생명과학 sunyoung@sn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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