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부(富)는 3대까지…빚은 4촌까지 간다?'

입력 2015-09-22 18:43   수정 2015-09-23 09:26

판결문으로 보는 세상

왕래도 없던 친척 사망, 재산은 없고 채무만 남겨
1순위 부인·자녀 포기 후 3촌까지 법원 소장 날아와



[ 김인선 기자 ] “김윤석 씨 계십니까. 등기우편입니다. 여기 서명하세요.”

한가로운 아침, ‘띵동’ 초인종이 울렸다. 등기였다. 채권추심업체에서 보낸 고지서가 들어 있었다. ‘내가 신용 하나는 칼 같은 사람인데…. 무슨 일일까’ 쿵쿵쿵쿵 심장소리가 귀에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2014년 가을께의 일이다.

고지서에는 ‘2005년 사망한 작은아버지 빚 20억여원 중 일부가 조카인 나에게 상속됐으니 이를 갚으라’는 취지로 적혀 있었다. ‘작은아버지가 돌아가셨구나…’ 처음 든 생각이다. 아버지 형제자매를 비롯한 일가친척끼리 왕래가 끊긴 지 오래였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작은아버지는 슬하에 3남1녀를 뒀는데 어째서 촌수로 3촌인 나에게까지 상속 순위가 넘어왔을까. 부동산이나 금융자산뿐 아니라 채무도 상속이 된다는 사실에 정신이 더욱 혼미해졌다. 사촌들의 연락처를 수소문했다.

전화를 받은 작은아버지의 장남 종석 형은 “미안하?rdquo;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소규모 공장을 운영하던 작은아버지는 중소기업은행(현 기업은행)에서 1994년까지 20억원을 대출받았다. 작은아버지와 동업자 박모씨는 이 채무를 연대보증했다. 그런데 몇 년 뒤 외환위기가 왔다. 공장 운영은 어려워졌고, 대출금 연체이자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은행은 1998년 연체된 대출채권을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넘겼다. 캠코는 작은아버지와 박씨를 상대로 채무를 갚으라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양수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004년 확정된 채무는 원금 4억2000만원에 연체이자 5억4000만원까지 더해 9억6000만원에 달했다. 그러나 작은아버지는 이듬해 작고했고, 남은 빚은 상속인에게 차례차례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채무액은 2013년까지 20억6000만원으로 불었다.

종석 형에게 물었다. “형, 그런데 작은아버지 빚이 왜 나에게까지 넘어온 거죠?” 형은 머쓱해하며 말했다. 작은아버지 자녀와 손자들, 작은어머니 등은 장례를 치르고 3개월 안에 서울가정법원에 상속포기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작은아버지의 제1 상속인인 직계비속이 상속을 포기하는 바람에 그 빚이 작은아버지에게 형제인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넘어왔고 결국 나에게까지 상속된 것이다. 상속재산은 사망자의 자녀 및 손주, 부모, 형제·자매, 4촌 순으로 상속이 넘어간다고 했다. 얘기를 들어 보니 큰아버지댁, 고모댁 모두 작은아버지가 남긴 빚폭탄으로 난리가 났다고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서울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변호사는 특별 한정승인을 받는 방법이 있다고 귀띔했다. 과연 나는 빚더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법원의 판단은

서울중앙지법 민사11부(부장판사 김기영)는 캠코가 김윤석 씨를 비롯한 8명을 상대로 낸 양수금 청구 소송에서 지난 18일 “김씨는 상속받은 재산의 범위 내에서 10억3000만원을 캠코에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고 김씨는 이 사건 대출원리금 채무의 연대보증인인 작은아버지의 상속 지분 비율에 따라 대습상속했으므로 그 상속 지분 비율에 따라 상속한 부분을 변제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김씨를 비롯한 작은아버지의 조카 네 명은 법원에 상속재산을 넘는 빚은 갚지 않아도 되는 특별 한정승인을 신청해 승인받았다. 그러나 법원은 상속 포기, 한정승인을 신청하지 않은 또 다른 조카에겐 캠코에 1억8000여만원을 갚으라고 판결했다. 제1 상속인이 상속을 포기하면 차례로 4촌까지 채무가 전가된다. 한정승인은 상속 포기와 달리 빚이 대물림되지 않는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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