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시도하는 한복] 2030 "한복은 멋진 나들이 옷"…SNS 열기 타고 한복산업 기지개

입력 2015-09-25 17:06  

개량한복 실패 딛고 패션한복으로

한옥마을서 주말 500벌씩 대여
백화점 여성복 코너에 한복 입점
파리서 호평…샤넬도 영감 얻어



[ 임현우 기자 ] “나, 사극에 나오는 여주인공 같지 않아?” “색감 좀 봐. 정말 예쁘다.”

토요일인 지난 19일 전주한옥마을에서는 고운 한복 차림으로 한옥촌을 둘러보고, 길거리 음식을 먹고, 셀카도 찍으며 즐거워하는 젊은 관광객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어림잡아 20대 관광객의 절반이 한복 차림이었다. 1~2년 전부터 젊은 층 사이에서 ‘한복 입고 한옥마을 관광하기’가 유행하면서 자리 잡은 새로운 풍경이다.

전주한옥마을 곳곳에는 30개 가까운 한복대여점이 성업 중이다. 기생옷 곤룡포 선비옷까지 갖춰 놓고 시간당 5000원 정도에 빌려준다. 한 업체 관계자는 “주말에는 400~500벌씩 나간다”고 말했다. 특별한 옷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올려 뽐내길 좋아하는 젊은 층의 욕구와 잘 맞아떨어졌다는 설명이다.

판매 부진, 중국산 공세 … 고사 위기 한복산업

일부 희망적인 신호에도 불구하고 국내 한복시장의 ‘뿌리’는 흔들리고 있다. 사 입는 사람이 갈수록 줄고 있어서다. 업계에서는 원단과 완제품 등을 포함, 한복시장 규모를 연 1조3000억원 선으로 추산한다. 서울 종로에서 30년째 한복전문점을 운영 중인 A씨는 “명절에도 한복 입는 사람이 거의 없고, 결혼식 정도가 아니면 요즘 한복을 사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며 “저렴한 중국산을 사서 몇 번 입고 마는 사람이 많아 갈수록 장사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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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진흥센터가 전국 260개 한복사업자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연매출이 3000만원 미만인 곳이 43.5%에 달했다. 1억원 이상인 곳은 7.7%에 불과했다. 조사 대상의 99.2%는 해외 매출이 ‘제로’였다. 판매 부진의 원인으로는 한복 수요 감소(57.7%)와 경기 침체(27.9%)를 가장 많이 꼽았다.

20~30대가 재발견한 ‘한복의 멋’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한복의 멋’ 재조명 움직임이 만만찮다. 전민정 한복진흥센터 진흥팀장은 “해외 패션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멋을 지닌 데다 편안한 디자인의 한복이 많아지면서 20~30대에서 새로운 수요가 창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2~3년 새 ‘패션 한복’ ‘데일리 한복’ 등의 슬로건을 내걸고 새 브랜드가 등장하는 등 반가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20대 한복 디자이너 황이슬 씨는 생활한복을 내놓고 ‘리슬’이라는 브랜드로 인터넷에서 판매한다. 유명 업체들도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김영진한복에서는 ‘차이 킴’, 돌실나이에서는 ‘꼬마크’ 등의 새 브랜드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몇몇 브랜드는 ‘짝퉁’도 등장했다.

이 같은 달라진 시선은 백화점 매장 입점으로 이어졌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3월 서울 본점 4층 여성복 코너에 한복 디자이너 이혜순 씨의 ‘담연’을 유치했다. 6개월여의 운영 결과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결혼예복 등 100만~200만원대 맞춤한복의 매출 비중이 80~90%에 달하고, 유아용 배냇저고리와 나이트가운 에코백 같은 상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이지연 롯데백화점 바이어는 “고급 예복을 찾는 예비부부들이 선택하는 등 반응이 기대 이상”이라고 말했다.

독창적 선…패션 본고장 프랑스에서도 통해

국내에서는 1990년대를 전후로 ‘개량한복’이 주목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반짝 인기에 그쳤다. 천편일률적인 소재와 색상을 벗어나지 못해 ‘한식당 직원들이 입는 옷 같다’는 이미지가 굳어진 게 패착이었다. 전민정 팀장은 “당시 디자인을 다변화하고 적극적인 재투자로 대응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세계 패션시장에서 한복의 독창성과 장점에 대한 평가가 높아지는 점도 고무적이다. 프랑스 파리 장식미술관에서 19일 개막한 ‘한국특별전 패션전’에는 이영희 김혜순 김영석 등 정상급 한복 디자이너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한국문화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보여주는 전시”라고 호평했다.

영국 등 유럽 다른 국가에서도 전시회 요청이 잇따르고 있다. 샤넬은 올 5월 서울에서 패션쇼를 열어 한복에서 영감을 얻은 옷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혜순 디자이너는 “‘한복의 재발견’ 움직임이 국내외에서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주·서울=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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