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단풍 명소

입력 2015-09-25 17:11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설악산 단풍 소식에 마음이 먼저 붉어진다. 유난히 붉은 당단풍 나무가 많기 때문일까. 설악의 가을은 산 전체가 홍엽(紅葉)이다. 대청봉 마루를 빨갛게 적신 물감이 계곡 아래로 흘러내리는 동안 산에 드는 사람의 마음도 덩달아 붉어진다. 시인 백석이 ‘빨간 물 짙게 든 얼굴이 아름답지 않으뇨/ 빨간 정 무르녹는 마음이 아름답지 않으뇨/ 단풍 든 시절은 새빨간 웃음을 웃고 새빨간 말을 지줄댄다’고 한 까닭을 알 것 같다.

올해 첫 단풍은 지난해보다 사흘, 평년보다 나흘 먼저 왔다. 한가위 연휴에 맞춘 걸까. 일교차가 큰 날씨 때문이라고 한다. 설악 단풍은 이번 주말까지 해발 1500m 이상인 대청, 중청, 소청봉 일대를 물들이고 내달 18일쯤 절정에 이를 전망이다. 단풍 명소로 꼽히는 한계령~대청봉 코스와 공룡능선, 남설악을 굽어보는 흘림골, 기암절벽이 늘어선 천불동 계곡이 특히 붉겠다.

오대산 단풍도 내달 17~18일 절정에 오른다. 온 산이 다양한 활엽수종으로 덮여 있는 오대산은 오렌지색과 노란색 등 은은한 색감을 자랑한다. 북한산 등 서울 근교 산들은 내달 12일부터 물들기 시작해 27일께 최고조에 이를 모양이다.

내장산은 북한산보다 닷새 늦은 17일 단풍이 들기 시작해 11월 첫주에 완전히 붉어진다. 갓난아이 손처럼 작고 예쁜 ‘애기단풍’이 내장산의 가을 특미다. 최고의 감상 포인트는 주차장에서 내장사에 이르는 단풍 터널이다. 충남 계룡산 갑사계곡도 ‘춘마곡 추갑사(봄에는 마곡계곡, 가을엔 갑사계곡)’라는 이름만큼 빼어나다. ‘5리 숲’으로 유명한 갑사 진입로와 용문폭포 주위가 일품이다.

지리산 피아골 단풍은 연주담~통일소~삼홍소 구간을 으뜸으로 친다. 삼홍(三紅)은 온 산이 붉게 타서 산홍, 단풍이 맑은 담소에 비쳐서 수홍, 그 품에 안긴 사람이 붉어서 인홍이라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경북 청송 주왕산과 전남 해남 두륜산, 경기 포천 국립수목원, 가평 아침고요수목원, 강원 홍천 은행나무숲에서도 만추의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어디 산행뿐이겠는가. 양재 시민의 숲 등 ‘서울의 아름다운 단풍길 83선’도 좋다. 삼청동길과 덕수궁길, 소월길, 뚝섬 서울숲, 아차산 자락길, 중랑천 제방길, 우이천, 도봉산길, 북한산길, 홍제천로, 하늘공원, 안양천 제방길, 보라매공원, 송파나루공원 등 숨은 명소가 많다.

‘서리 맞은 단풍이 봄꽃보다 붉다’(당나라 시인 두목)고 했다. 나도 이 가을 세상사 시름 다 내려놓고, 꽃보다 붉은 단풍에 흠뻑 젖어나 볼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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