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금융 우간다보다 못하다'는 자기비하의 배경

입력 2015-09-29 11:13  


(박동휘 금융부 기자) 흔히 한국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아프리카 우간다와 비교하곤 합니다. 우간다보다 못하다는 게 결론입니다. 오죽했으면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핀테크 1박2일 워크숍’에 참석해 이런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우간다의 금융산업이 어떻길래 우리보다 낫다는 건지 제가 직접 가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우간다보다 못하는 자기비하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근거는 다보스포럼으로도 불리는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7월 발표하는 국가 경쟁력 평가입니다. 올해만해도 한국은 전체 144개국 중 종합 순위 26위를 차지했는데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나타내는 ‘금융시장 성숙도’ 순위는 80위에 그쳤습니다. 아프리카의 케냐(24위)·가나(62위)에도 뒤지고 말라위(79위)·우간다(81위)와 비슷한 후진국 수준입니다.

국회, 언론 등 많은 이들이 WEF의 발표를 인용하며 한국의 금융산업이 형편없다는 비판에 활용하곤 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통장 계설도 단 몇 분이면 가능하고, 인터넷 뱅킹으로 못하는 게 없으며, 홍채 인식 등 비대면 인증 기술도 세계 최고라는 한국의 금융산업이 어쩌다 우간다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 걸까요?

저간의 사정을 살펴보면, 흥미롭기도 하고 허탈한 ‘진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선 WEF의 국가경쟁력 평가 방식에 함정이 있습니다. WEF는 경쟁력지수를 산출하기 위해 계량적 지표 37개 항목과 124개 항목으로 구성된 설문조사를 활용합니다. 경성데이터라고도 하는 계량적 지표엔 GDP 등 경제성과를 비롯해 사회간접자본, 기술적 역량 등 비교적 객관적인 수치들이 들어갑니다.

문제는 연성데이터인 설문조사입니다. WEF는 회원국에 요청해 설문을 받는데 한국에선 KDI(한국개발연구원)이 매년 이 과제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KDI는 이 설문을 최고경영자과정에 들어온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돌린다고 합니다. 답변자들은 주로 제조업 CEO들로 전공도 대부분 이공계가 주류라고 합니다. 설문 답변 방식은 1에서부터 5까지 점수를 매기는 방식입니다.

이쯤되면 대략 짐작이 되시죠? 설문에 답하는 기업인들은 워낙 눈높이가 높은 제조업체 CEO들이다보니 한국 금융산업의 성숙도에 낮은 점수를 주곤 합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등은 세계 시장을 재패하며 펄펄 날고 있는데 은행, 증권사들은 여전히 국내 시장에서 맴돌고 있으니 좋게 평가해 줄 리 없습니다. 게다가 정부가 인사에까지 관여하는 등 여러 폐해를 보아온 터라 부정적인 인식이 고스란히 점수에 반영됐습니다. 만일 우간다와 비교해 어떻냐고 물어봤다면 100% 5점을 줬을 겁니다.

이렇게 평가된 점수를 취합해 WEF는 금융산업의 경쟁력 순위를 매깁니다. 상대적으로 우간다 등 아프리카의 설문 답변자들이 자국 금융산업에 대해 후하게 평가했다면 한국보다 경쟁력 순위에서 앞설 수 있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사실 국가경쟁력순위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은 IMD 순위입니다. 스위스 소재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 산하의 세계경쟁력센터(WCC)가 매년 발표하는 지수로 계량적 지표의 비중이 3분의 2 가량을 차지합니다. WEF 순위에 비하면 주관이 덜 들어갔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부터 WEF의 발표에 연연하게 됐던 걸까요? 이 대목에서 우스운 얘기가 시작됩니다. 2007년에 발표한 WEF의 국가경쟁력 리포트에서 한국은 일약 11위로 급상승했습니다. 전년만해도 23위였다가 하루 아침에 ‘신데렐라’가 된 겁니다. 정부는 이를 정책 홍보의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했습니다. 정부가 그동안 잘 한 덕에 국가경쟁력 순위가 올라갔다고 얘기하고 싶었던 겁니다.

당시 정부가 WEF 경쟁력 순위를 어찌나 홍보했던지 그 이후로 언론 등 많은 이들이 매년 발표하는 WEF를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우간다보다 못하다’는 자기비하가 탄생하게 된 배경입니다. (끝)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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