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된 출판시장에 2030 두 시인의 '조용한 반란'

입력 2015-09-29 18:47  

황인찬 시집 '희지의 세계' 출간 3일 만에 초판 매진
박준 시인 '당신의 이름을…' 종합베스트 10위권 돌풍



[ 박상익 기자 ] 출판시장이 최근 몇 년 동안 침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시집은 ‘마이너리그’로 불릴 만큼 독자들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 서점 베스트셀러 시 분야를 봐도 정통 시집보다는 우화, 필사책, 시선집 등이 상위권을 차지한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20~30대 젊은 시인들의 시집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 화제다.

박준 시인(32)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문학동네)는 2012년 출간됐다. 세상에 나온 지 3년 된 이 시집은 29일 현재 교보문고 인터넷 주간 종합 베스트셀러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온라인서점 예스24와 알라딘에서도 각각 종합 8위를 기록했다. 시집이 주요 서점 종합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든 것은 근래 보기 드문 일이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가 갑작스런 관심을 받은 배경에는 지난 22일 방영된 tvN의 독서 프로그램 ‘비밀독서단’이 있다. 15일 첫 방송된 이 프로그램은 매주 한 가지 주제와 이에 어울리는 책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22일 방영분 주제는 ‘사랑이 어려운 사람들’. 박 시인의 시집은 ‘한국 문단 서정시의 부활’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의 시집은 방영 직후 이틀 만에 3000부 가까이 팔려나갔고, 문학동네는 연휴 직전에 6000부를 급히 인쇄했다. 문학동네 편집자인 김민정 시인은 “명절 연휴에 택배 업무를 하지 않아 출판사 영업자들이 시집을 서점에 직접 배송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전위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 대신 서정과 서사를 주무기로 삼는 젊은 시인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처럼 보이면서도 독특한 이미지를 구현해낸다는 평을 받고 있다. ‘지는 해를 따라서 돌아가던 중에는 그대가 나를 떠난 것이 아니라 그대도 나를 떠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파서 그대가 아프지 않았다’(‘용산 가는 길-청파동 1’ 부분), ‘철모를 베고 풀밭에 누우면 밤하늘이 반겼다 그제야 우리 어머니 잘하는 짠지 무 같은 별들이, 울먹울먹 오열종대로 콱 쏟아져 내렸다’(‘별의 평야’ 부분) 같은 따뜻하고 조곤조곤한 시어(詩語)가 젊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분석이다.

황인찬 시인(27)의 신작 시집 《희지의 세계》(민음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자들의 지지를 받은 사례다. 18일 출간된 황 시인의 시집은 출간 3일 만에 초쇄 1500부가 매진됐다. 출판사는 이미 3쇄까지 인쇄를 마쳤고 5쇄까지도 충분히 찍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시집이 출간되자마자 매진되는 일도 서점가에서 오랜만에 나타난 현상이다. 트위터에서 신작에 대한 기대와 호평이 이어지면서 독자들이 계속 시집을 찾아 알라딘 문학분야 베스트셀러 7위를 기록하고 있다.

2010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으로 등단한 황 시인은 2012년 제31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희지의 세계》는 20대의 감수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시다. 기존의 시들이 세상을 뜨거운 시선으로 바라본 데 비해 황 시인의 시는 ‘차가운 관조’로 대변된다.

‘그래도 우리는 걸을 거야 서울의 밤거리를 자꾸만 걸을 거야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서 그냥 막 걸을 거야 우리 자주 걸을까요 너는 아직도 나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나는 너에게 대답을 하지 않고 이것이 얼마나 오래 계속된 일인지 우리는 모른다 ’(‘종로사가’ 부분)

그의 시에는 기성세대와 달리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는 무력감이 보이지만 세상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름답게 그려내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덕분에 문학분야에서 소외됐다고 여겨졌던 10대 독자도 황 시인의 주요 독자층으로 등장했다는 것이 출판사 측의 설명이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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