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민의 합리적 무관심을 전제하는 것이 정당정치다

입력 2015-10-01 18:08  

여야 대표가 추석 연휴 때 합의했다는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두고 여권 내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청와대가 이 공천제의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서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어제 국군의 날 행사에 불참하는 등 공식 일정을 취소하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오늘까지만 참는다”는 험한 말까지 했다고 한다.

공천방식을 둘러싼 여권의 갈등에는 딱히 논평할 것도 없다. 청와대나 새누리당이나, 소위 비박이나 친박이나 오십보백보일 뿐이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국민공천이라는 명분으로 온 국민을 정치판으로 끌어들이려는 생각만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여당과 야당이 똑같다.

국민공천제는 국민을 대상으로 한 전화 등 여론조사를 통해 선거에 나갈 예비후보를 뽑는 것이다. 말이 국민공천이지 결국 선거를 위한 사전 투표요, 잘 포장된 선거전이다. 온 나라가 선거 수개월 전부터 정치판으로 바뀔 게 분명하다. 꼼수도 보인다. 이미 얼굴이 알려진 현역 의원들이 무조건 유리하게 돼 있다. 이런 ‘그들만의 리그’를 꾸려가는 새 시스템을 여야 대표가 합의했다고 뉴스는 떠들썩하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에게는 관심 밖의 일일 뿐이다.

정치에 관해 가장 소중한 국민의 권리는 정치를 무시할 수 있는 권리다. 평소에는 생업에 몰두하고, 기껏해야 소극적으로 지지하는 정당 하나쯤 갖고 있는 것이 보통의 국민이다. 이 당도 저 당도 싫다, 이 후보자도 저 후보자도 다 싫다, 그래서 난 투표를 거부한다는 것은 일반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평소에 침묵하는 이런 다수의 마음을 읽고 이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정당정치의 제도화인 것이다.

새로운 정치제도를 만들려면 이런 적절한 수준의 무관심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리고 전화 여론조사 방식의 예비선거는 언제든 역(逆)선택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고 이름이 알려진 기성 정치인이게 절대 유리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여야가 합의만 하면 국민들이 따라와야 한다고 우겨서는 곤란하다. 정치는 지금도 충분히 과잉이다. 국민은 장기판의 졸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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