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존망 가를 위기의 싹 키워
멀리 보고 준비하는 조직 이끌어야
김영용 < 전남대 교수·경제학 yykim@chonnam.ac.kr >
독일 폭스바겐의 명성을 드높여 온 ‘클린 디젤’이 미국 환경청에 의해 거짓임이 드러났다. 폭스바겐은 지금까지 판매한 1100만여대 차량에 대해 배기가스 소프트웨어를 조작하는 속임수를 쓴 것을 시인했다. 이 스캔들로 폭스바겐 주가는 3분의 2로 폭락했고, 미국에서만 리콜 비용에 더해 21조원 정도의 벌금을 물어야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런던시립대의 조직행동론 교수인 안드레 스파이서는 지난달 24일 CNN 방송에서 이번 폭스바겐 스캔들을 기업의 조직 문화와 관련해 설명했다. 누구나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는 자신의 자리 보존과 높은 연봉을 위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을 약속한다. 이번 경우에 불가능성이란 정부의 탄소 배출량 감축 요구, 소비자들의 값싸고 강력한 힘을 가진 차량 요구, 투자자들의 높은 수익 요구, 근로자들의 높은 임금 요구 등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CEO는 그런 약속을 달성하는 속임수 같은 것에 관련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런 약속은 CEO로부터 하위 경영자와 기술 개발 엔지니어들에게 무언의 압력으로 전달된다.
CEO가 불가능한 목표를 제시하는 것은, 자신이 그렇지 않더라도 그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위 경영자들 역시 그런 약속이 불가능함을 알더라도, 이를 내비치면 CEO를 화나게 하고, 그 결과 자신의 자리가 위험해지기 때문에 그런 불가능성을 은폐한다. 그들은 CEO에게 좋은 결과만 보고할 뿐, 문제가 되는 사항은 보고하지 않는다. 따라서 폭스바겐의 CEO가 자신은 그런 속임수를 몰랐다고 한 말을 믿기는 어렵지만, 실제로 몰랐을 수도 있다. 결국 폭스바겐 스캔들은 바로 이런 조직문화에 기인했고, 기업의 존망을 좌우할 정도의 큰 비용을 지급하게 됐다.
한국의 사정은 어떤가. 폭스바겐 스캔들과 똑같은 경우는 아니지만 단기적 성과에만 치중하는 경향은 많은 조직에 널려 있다. 한국 기업의 CEO들이 어려운 목표 달성을 위해 속임수를 쓰지는 않더라도 단기적 성과에만 집착할 수밖에 없는 사정은 폭스바겐과 비슷하다. 임원들은 흔히 ‘임시 직원’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성과가 좋지 않으면 언제든지 해임될 수 있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우스갯소리다.
정부 부처의 장차관들은 유능하다는 평판을 얻기 위해 단기적이며 가시적인 성과에만 집착한다. 장기적 안목 없이 엉뚱한 정책을 입법화해 국민들의 삶을 어렵게 하는 때가 많다. 대학의 연구 문제도 다르지 않다. 교육부의 지원금이 단기적 성과에 좌우되다 보니 대학 경영자들도 교육부 지표에 따른 성과 높이기에 급급해 하지 않을 수 없다. 학문의 초석을 다지는 긴 호흡의 창조적 연구는 생각하기 어렵다.
각종 연구소도 예외는 아니다. 대부분의 연구소가 싱크탱크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단기적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집중할 뿐, 한국은 물론 세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는 사상과 철학에 관한 깊은 연구는 관심 밖이다. 연구소가 설립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 색깔과 위상 및 권위를 드러낼 수 있는 쓸 만한 연구 성과물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이 저간의 사정을 증명한다.
폭스바겐 스캔들은 어느 누구든지 사람들을 장기간 속일 수 없고, CEO가 자신이 설정한 목표 달성에 동원되는 중요한 수단에 대해 모르거나 모르는 체 하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며, 멀리 보고 준비하는 조직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또 장기적 관점에서 사람들의 유인 체계와 그에 따른 장·단기 평가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해묵은 과제를 다시 제기했다.
이번 폭스바겐 스캔들을 계기로 한국의 모든 최고 의사 결정자들은 조직 전체의 의사 결정 체계와 보고 체계 및 그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김영용 < 전남대 교수·경제학 yykim@chonnam.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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