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단통법 1년, 퇴로를 찾아라

입력 2015-10-01 18:15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


기술 진보가 시장으로 확산되는 과정은 S커브를 따른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디딤돌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얼리어답터(early adopter)’다. 하지만 한국에선 지금 얼리어답터의 기가 팍 죽었다. 시행 1년을 맞은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하에서 이들은 ‘비합리적 소비자’일 뿐이다. 고가 단말기로, 고가 요금제를 들었던 번호이동 가입자라는 것이다. 더 이상 신제품, 신서비스 붐이 일어나지 않는 건 당연한 결과다.

시장도 죽었다. 아무리 눈치가 없기로서니 경제가 어렵다는 마당에 지출을 줄이라고 강요하는 엇박자 법을 1년이나 끌어온 건 자해행위나 다름없다. 수요 창출이 막히면서 기업은 망하고, 일자리는 날아가고, 급기야 소비자까지 누굴 위한 법이냐고 항변하는 지경이다.

‘체리피킹’으로 가득찬 홍보

그러나 곧 죽어도 아니라는 쪽은 오직 한 곳. 바로 정부다. “그동안 통신시장은 이통3사 간 가입자 뺏기를 위한 경쟁이 과열돼 사회적 혼란을 일으켰으나, 법 시행 후 시장이 정상화되고 있다.” 경쟁은 곧 과열이요 혼란이며, 시장?침체된 것이 아니라 정상화됐다는 게 정부 주장이다.

규제 논리밖에 모르는 방송통신위원회는 그렇다고 치자. 창조경제를 말하는 미래창조과학부는 뭔가. 미래부의 단통법 1년 설명 자료는 ‘체리피킹(cherry picking)’ 아니면 ‘변명’ 일색이다. 번호이동이 급감했는데도 통신시장은 죽지 않았다고 강변한다. LG유플러스, 알뜰폰 등의 시장 점유율이 찔끔 상승한 걸 갖고는 시장구도의 고착화가 아니라고 우긴다. 지원금 감소로 소비자의 단말기 구입비용이 높아졌다는 주장엔 법 시행 전후의 지원금 수준을 비교하기 곤란하다며, 이통사 마케팅비가 큰 폭으로 감소하지 않았다는 변명을 늘어놓는다. 그뿐인가. 알뜰폰, 데이터요금제 등 단통법과 상관도 없는 것까지 다 끌어와 마치 단통법이 통신비 거품을 걷어낸 것처럼 포장하고, 단통법으로 이통사만 좋아졌다는 주장엔 더 지켜보자며 빠져나간다.

대통령인들 이걸 원했을까

더 황당한 건 국내 단말기 시장 위축, 애플 아이폰의 급격한 국내 시장 점유율 상승, 팬택 워크아웃 등은 단통법과 무관한 세계적 현상 탓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어느 정부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은 법을 동원할 땐 국내 산업 보호라는 명분이라도 갖고 한다. 하지만 이 정부는 보조금을 제한해 국내 산업을 스스로 죽인 꼴이 되고 말았다. 팬택 다음엔 LG전자, 삼성전자가 그 뒤를 따르지 말란 법도 없다.

이용자 간 차별 해소를 자랑하지만 그런 논리라면 모든 상품마다 단통법을 만들지 그러나. 이용자의 완전한 차별 금지는 마케팅이 전혀 필요 없는 시장의 완전한 사회주의화라야만 가능하다. 이게 이 정부?말하는 창조경제인가.

법이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하는 미래부의 주장이 100%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명색이 법이라고 만들었으면 그 정도 빠져나갈 구멍쯤은 몇 개 생겨야 하지 않겠나. 그렇다고 의기양양해 앞으로 법을 안착시켜 효과를 더욱 확산시키겠다고 하는 건 너무 나갔다. 어차피 정치에서 시작된 무리한 법이었다. 단초를 제공한 박근혜 대통령인들 이리될 줄 알았을까. 이쯤에서 퇴로를 찾는 건 어떤가. 좀 멋쩍다 싶으면 우선 보조금 제한부터 풀어라. 더 늦기 전에.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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