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정진 정치부 기자) “국군의 날 제 자리...혹시 의전실에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 실장이랑 헷갈린건 아닐까요?”
1일 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내용의 글과 함께 보도 사진 한 장을 올렸습니다.
사진에는 국군의 날 기념식장에서 박근혜 대통령 뒤에 뻘쭘하게 서 있는 김 의원이 보였습니다. 이 사진은 언론 보도를 타고 순식간에 퍼졌고 덕분에 김 의원은 의도치않게 이날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습니다.
사진이 이날 이슈가 된 이유는 김 의원이 서 있던 위치 때문이었습니다. 야당인 새정치연합 소속의 김 의원이 새누리당 소속인 박 대통령 바로 뒤에 있다는 건 누가 봐도 이해가 가지 않는 장면이었습니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조차 박 대통령과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있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김 의원은 자신과 이름 한 글자 그것도 받침 하나만 다른 김관진 실장을 청와대 의전실이 헷갈렸을 거라고 위트있게 풀어낸 겁니다.
그 같은 판단에 힘을 실어주는 또 한 장의 사진이 김 의원 사진 바로 아래 따라 올라왔습니다. 거기엔 김 실장이 자신과 별로 관계없는 야당 수장인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 옆에 뻘쭘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누가 봐도 이날 행사에서 박 대통령 뒤엔 김 실장이, 문 대표 옆엔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인 김 의원이 있어야 하는 게 상식적인 그림이었겠죠.
김 의원은 박 대통령 바로 뒤에 멋쩍게 서있는 자신의 또 다른 언론사 보도사진들도 잇따라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청와대 실수인지, 김 의원의 의도된 착석인지에 대한 논란은 계속됐습니다.
국방위 소속 한 의원실 보좌관은 “이채익 의원 자리에 김광진 의원이 실수로 자리를 잘못 잡은 것”이라며 “김관진 실장 자리는 자신의 자리와 바뀐게 아니라 본래 그 자리가 맞다. 의원실로 좌석표가 다 왔는데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해명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불편하게 지켜본 같은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의 한기호 새누리당 의원도 김 의원 페이스북에 “현장에 제가 있었는데 김영우 새누리당 의원과 이채익 의원이 참석치 않아서 빈자리가 생기니까 맨 끝자리에 있었다가 (김 의원이) 제 발로 쫓아와서 앉아 놓고. 어이구 국회의원 체면 다 구긴다”라고 분노어린 댓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논란이 계속되자 김 의원은 2일 페이스북에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하루가 끝났네요. 덕분에 실시간 검색어 1위도 해봤습니다. 매년 국감마다 몇번씩 했는데 사실 올해 국감에는 실시간 검색 순위에도 못올랐는데”라며 뼈 있는 글을 남겼습니다.
그러면서 “예능은 예능으로 받자”며 “웃자고 한 이야기에 국민들은 다 웃었는데 괜히 의전실 모욕이니 어쩌니 하며 버럭하는 청와대도 웃긴다”고 받아쳤습니다. 한 의원의 댓글에 대해서도 “청와대가 의전 서열상 그 위치가 맞아 배정했다고 인정하는데도 ‘자기가 현장에서 봤는데 끝에 있다가 자리가 비니까 가서 앉더라’면서 허위사실을 말하는 분도 웃긴다”며 일침을 가했습니다.
김 의원이 밝힌 결론은 김 실장과 자신의 자리가 바뀐게 아니라 세번째 줄에 있어 의원 서열상 뒤로 밀려난 것이라는 거였습니다. 그러면서 애교있게 “청와대 의전실을 미워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과연 청와대 의전실의 실수였는지 김 의원의 의도된 돌출행동이었는지는 청와대와 김 의원만 알고 있겠죠. 하지만 모처럼 국민들은 정치인을 보며 인상 찌푸리지 않고 즐거워했습니다. 실소가 머금어지는 짧은 에피소드였지만 우리 정치권이 ‘코미디같은 정치만 한다’는 쓴소리 대신 이날처럼 국민들에게 유쾌한 웃음을 줄 수 있는 시원한 정치를 했으면하는 바람입니다. (끝)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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