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피감기관 779개 사상최대…질의 안받은 기관장 수두룩
재계 "서면 진술서 의무화…증인 모욕 의원 제재 조치를"
[ 손성태 / 서욱진 기자 ]
19대 정기국회의 마지막 국정감사가 8일 막을 내린다. 추석연휴를 전후로 처음 분리 시행한 이번 국감에서 여야는 피감기관 779개를 감사하겠다고 의욕을 불태웠지만, ‘호통·망신주기’와 ‘기업 때리기’ 등 구태를 반복하면서 ‘국감 무용론’에 불만 지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차별식 피감기관 선정 및 증인 신청이 국감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주범으로 지적됐다. 올해 피감기관 수는 사상 최대인 779개로 전년(672개)보다 107개 늘어났다. 이렇다 보니 16개 상임위원회의 절반 정도가 하루 5개 이상 기관을 감사해야 할 정도로 업무 과부하에 걸렸다. 하루 20개가 넘는 기관을 감사했던 상임위도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 교육문화체육관광 등 6개에 달했다. 미방위는 지난달 17, 18일 이틀에 걸쳐 20여개 이상 피감기관을 불렀 嗤? 상당수 기관장이 질문 하나 받지 못하고 돌아갔다.
재계에서는 제대로 질문조차 받지 못하는 무더기 증인 채택과 ‘망신주기’식 기업인 출석요구 등 국감 제도의 근본적 개선책이 나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감 증인 출석 부담 때문에 기업이 관련 사업을 백지화하는 등 경영의 발목을 잡는 부작용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국감 안건과 피감기관의 범위를 미리 정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재계에서 제기됐다. 하루 최대 감사안건(피감기관) 수와 안건당 채택 가능한 최대 증인 수, 증인 채택시 안건 관련성 정도 등을 규정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재계는 또 증인 신문 이전에 구체적인 신문요지서를 보내주고, 서면 진술서 제출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감에서 해당 안건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현재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본회의 또는 위원회가 증인에게 출석을 요구하는 경우 요구서에 신문할 요지를 첨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첨부되는 신문요지서에는 안건의 제목 정도만 기재돼 있는 게 현실이다. 반면 일본 의회에서는 구체적으로 증언할 내용을 송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 상원에서는 청문회 하루 이전에 서면 증언서를 내도록 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또 증인 보호를 위해 상임위원회의 위원장 권한으로 증인에 대한 모욕, 고함, 적절하지 않은 신문을 하는 의원에 대한 제재 조치를 할 수 있게 법률에 명시할 것을 제안했다. 국감 증언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증인에 대한 형사적 책임을 면제해줄 필요도 있다고 했다.
국감 증인으로 나선 기업인들이 증언을 통해 실체적 진실 파악에 기여하지 못하고 의원들의 모욕적인 언사나 고함 등으로 인격만 무시당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일본 의회는 증인에 대한 신문이 위협적이거나 모욕적일 경우 위원장이 이를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을 법률에 명시하고 있다. 미국 하원은 발언 예절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를 준수하도록 의장의 경고 및 주의 수단을 마련했다. 또 미국은 의회에서 증언하는 증인에게 면책권을 줘 증언이 유죄 선고의 증거로 사용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언제든지 필요할 때 정책 질의를 통해 행정부를 견제할 수단이 있는데, 특별히 한 달을 또 잡아서 모든 부처를 대상으로 감사한다면서 나라 전체를 흔들어대는 나라가 우리 말고 어디 또 있나”고 말했다. 김수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원은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의회의 국정조사권은 인정되지만 한국처럼 정기적인 국감 제도는 없다”며 “매년 폐해가 반복되는 국감은 기업 경영에 큰 부담이 돼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성태/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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