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회사의 적은 승진 포기한 만년 대리"

입력 2015-10-12 19:28  

칼퇴근 기본, 힘든 일은 패스~ 후배들은 선배 보며 "안타까워"

직장 내 저성과자를 보는 시선

이렇게 생각하는 직장인도 있다!
회생 프로그램, 기회 준다지만
실제론 '데스노트'에 가까워

"회사와 직원은 파트너 관계
스스로 역량 키우면 잘릴 걱정 없어"



[ 박상익 기자 ] ‘노동개혁’이라는 화두가 한국사회 전반에 파장을 확산시키고 있다.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입법화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노동개혁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대원칙에 가까스로 합의한 재계와 노동계는 여전히 대립하며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해 당사자들인 회사원 사이에선 ‘업무성과가 떨어지는 근로자’를 뜻하는 ‘저(低)성과자’라는 단어가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지난달 노·사·정이 저성과자 해고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정부 지침으로 제정하기로 대타협을 이뤄낸 이후부터다.

“저성과자는 직장 내에서 얌체 같은 행동을 하면서 동료들의 사기까지 떨어트리기 때문에 조직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정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정부가 얘기하는 저성과자의 기준이 모호해 일방적 해고의 빌미가 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도 있다.

보고 있으면 복장 터지는 선배

한 은행 영업점에 근무하는 이모 부지점장(48)은 책임자(과·차장)가 된 지 1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차장이다. 통상 책임자가 된 뒤 10년이 지나면 부장으로 승진을 하는데, 승진할 기미가 없다. 동료들 사이에는 “입사 초기부터 몇 차례 금융사고에 연루되면서 앞으로도 부장승진이 어려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은행 영업점 직원이 부족해져 직접 손님을 응대하는 창구에 앉게 된 이 부지점장. 다른 직원들이 고객 3~4명의 업무를 처리하는 동안 그는 2명 분량의 업무도 처리하지 못했다. 손님 한 명을 붙들고 10분 이상 잡담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와 같은 지점에서 근무 중인 김모 과장은 “이 부지점장의 업무처리가 늦어지는 바람에 창구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식사시간을 놓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며 “복장이 터지는데, 뭐라고 할 수도 없고…”라고 안타까워했다.

한 자동차회사에 다니는 박모 과장(37)은 자신의 팀에 속한 김모 대리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40대 중반인 김 대리는 과장 진급을 포기하고 노동조합원으로 남았다. 회사 방침상 과장을 달면 노조를 탈퇴해야 한다.

김 대리는 야근은 물론 주말 출근도 없다. 팀 성격상 팀원끼리 서로 공조해야 하는 업무가 많은데도 팀장은 그에게 일을 맡기기 꺼린다. 팀장과 입사 동기다 보니 잡다한 업무에는 대부분 열외다.

아침에 출근해 인터넷 서핑이나 하다가 오후 6시만 되면 칼퇴근하는 게 김 대리의 일상이다. 직급은 박 과장이 위지만 임금체계가 호봉제라 연봉은 오히려 김 대리가 더 많다. 박 과장은 “‘이런 식이면 내가 대체 승진을 왜 했을까’하는 생각마저 든다”며 “이렇게 놀고먹는 직원이 많은데도 회사가 제대로 굴러가는 게 신기할 정도”라고 말했다.

어리다고 성과 좋은 것 아니야

한 대형 회계법인 6년차 회계사인 김모 회계사(34)는 장래 파트너까지 승진해 이름을 날려보겠다는 꿈을 안고 있다. 하지만 한 후배 팀원 때문에 요즘 곤혹스럽다. 클라이언트와의 약속에 늦고, “몸이 아프다”며 지각하는 게 다반사다.

마감을 앞두면 야근과 추가 근무가 필요한데도 “친척이 상을 당했다” “임신한 아내가 아프다”며 요리조리 빠져나가기 일쑤였다. 큰맘 먹고 혼을 내기도 해봤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러던 가운데 김씨는 얼마 전 동료들로부터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이 후배가 김씨 몰래 공기업으로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 “이직을 고민하느라 근무평가에도 신경을 놓은 지가 오래”라고 했다. 자산규모가 100억원이 넘는 부자 아버지가 “힘든 회계사 할 바엔 공기업에서 몇 년 편하게 일하면서 유학을 준비하라”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김씨는 후배가 이직을 할 때 어떻게 하면 불이익을 줄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회생 프로그램의 공포

한 금융회사에 다니는 김모 과장(38)은 최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내 게쳤퓻?저성과자들을 재교육하는 ‘리바이탈(re-vital) 프로그램’ 대상자 명단이 붙었는데, 자신의 이름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라도 리바이탈 프로그램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김 과장의 회사는 업무 평가에서 3년 연속 C등급을 받은 직원을 현업에서 제외하고 리바이탈 프로그램에 참여시킨다. 상대평가에서 C등급은 조직 내 하위 10~15% 정도다.

리바이탈 프로그램에 포함됐다가 회생하는 일은 드물다. “프로그램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았다”고 징계를 받는 경우도 있고, 열심히 해도 평가를 제대로 못 받는 경우도 있다. 프로그램 이수 후 원하지 않는 부서로 발령이 나 외톨이가 되기도 한다. 김 과장은 “리바이탈 프로그램은 조직 내에서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 스스로 나가게끔 하는 제도”라며 “‘나도 언제든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부서 발령…찍혔나?

명확한 기준 없이 저성과자로 낙인 찍혀 사실상 강제로 퇴출당하는 사람도 많다. 지난해 한 출판사에 편집자로 입사한 윤모씨(30)는 지난 4월 물류팀으로 소속이 갑자기 바뀌었다.

그는 회사 측으로부터 “주변 사람과 마찰이 많고, 업무 태도가 불량하다”는 지적을 받고 권고사직을 권유받았다. 권고사직을 거부한 그는 편집자에서 물류창고 관리로 보직이 변경됐다.

윤씨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 발령을 인정받아 편집팀으로 복직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윤씨의 한 동료는 “윤씨가 특별히 주변 사람과 문제를 일으킨 것을 보지 못했다”며 “규모가 작은 출판사에서 오너 눈 밖에 나 저성과자라는 ‘딱지’가 붙었을 가능성이 높다”며 한숨을 쉬었다.

한 벤처캐피털에 근무하는 전모씨(38)는 ‘저성과자 퇴출’이 전혀 낯설지 않다. 벤처캐피털 특성상 성과를 내지 못하면 알아서 나가야 하는 문화가 사내 깊숙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전씨 회사의 직원 숫자는 30여명에 불과하지만, 회사에서 운용하는 자산은 수천억원에 달한다. 뛰어난 투자 성과를 내거나, 외부 기관의 펀드위탁 자금을 끌어올 영업력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다. 이 원칙은 연령, 직급과 관계없이 모든 직원에게 적용된다. 전씨는 최근 자신의 팀이 3년 전 투자한 벤처기업들이 코스닥시장에 상장하며 대규모 인센티브를 받았다. 전씨는 2억원 정도를 받았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당연히 나가야 하는 것 아닐까요. ‘회사와 직원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파트너 관계’라고 생각해요. 직원들 스스로 역량을 키워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죠. 그러면 ‘회사에서 잘리는 것 아닐까’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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