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人터뷰] 고산 에이팀벤처스 대표 "한국인 1호 우주인 탈락이 '창업 신세계' 발 들일 기회로"

입력 2015-10-16 18:00  

벤처 창업운동가 변신…고산 에이팀벤처스 대표

"3D프린터는 상상을 세상 밖으로 해방시키는 도구죠"

작년 7월 회사 차린후 15억 투자 유치
이름 알려진 덕에 사업 도움됐지만 스타트업 자금 유치는 '하늘 별따기'
창업자금 지원 '라운드제' 도입해 특정분야·업체에 쏠림 없애야

세운상가는 '제조업 혁명' 최적지
모든 부품 1~2분내 구할 수 있는 곳…창업 꿈꾸는 이들에 연구공간 제공
시제품 제작도 돕는 '팹랩' 운영…벤처 발굴·네트워크 확대 노력



[ 안정락 기자 ]
‘한국의 첫 우주인 후보.’

고산 에이팀벤처스 대표(39)에게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수식어다. 고 대표는 2006년 말 3만6000여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한국 최초의 우주인 후보로 선정됐다.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한 뒤 삼성종합기술원에서 인공지능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중이었다. 고 대표는 “‘나도 할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꿈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2007년 초부터 1년 이상 러시아 가가린우주인훈련센터(GCTC)에서 실전 훈련을 받았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일어났다. 우주선(소유스 TMA-12) 발사 한 달을 남겨둔 2008년 3월 보안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하차해야 하는 극한 상황에 몰렸다. 외부 반출이 금지된 훈련 교재를 복사했던 게 문제가 됐다. 이후 우주인은 예비 후보였던 이소연 씨로 교체됐고 그는 참담한 심정으로 귀국해야 했다.

7년여가 흘렀다. 그새 평상심을 되찾은 고 대표는 ‘3차원(3D) 프린터’를 제작·판매하는 에이팀벤처스라는 회사의 대표가 됐다. 청년 창업을 돕는 ‘창업 운동가’로도 맹활약 중이다. 그는 “돌아보면 우주인이 되지 못한 게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된 것 같다”며 “여전히 기억해주시는 분이 많아 사업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3D 프린터에 빠진 우주인

고 대표는 지난해 7월부터 3D 프린터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회사를 세운 뒤 벤처캐피털 등에서 15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그가 3D 프린터를 처음 접한 것은 2010년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민간 창업학교 싱귤래리티대학에서다. 고 대표는 “당시 미국에서는 3D 프린터 같은 첨단제품을 활용해 학생들에게 기술 트렌드를 가르쳐주고 창업할 수 있게끔 지원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청년들의 창업을 지원하겠다고 맘먹었다. 차세대 비즈니스로 떠오를 것으로 확신한 3D 프린터 사업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는 3D 프린터를 머릿속 상상의 세계를 세상 밖으로 해방시켜주는 도구로 인식했다.

에이팀벤처스의 15명 직彭?함께 제품 개발에 몰두한 이유다. 지난 5월 첫 제품인 보급형 3D 프린터 ‘크리에이터블 D2’를 선보였다. 200만원짜리 중저가 제품이지만 웬만한 고급 제품 못지않은 품질을 갖췄다는 게 고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국내에 출시된 100만원 미만 제품은 특정 소재만 사용해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며 “크리에이터블 D2는 이 같은 단점을 보완하고 정밀도를 크게 높였다”고 설명했다.

에이팀벤처스는 3D 프린터를 활용한 교육사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초·중급, 전문가 과정은 물론 부모와 자녀가 함께하는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최근엔 3D 프린터를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인 ‘쉐이프엔진’도 선보였다. 쉐이프엔진은 3D 프린터로 제품을 제작하고 싶은 사람과 3D 프린터를 보유한 사람을 인터넷상에서 연결해주는 사이트다. 고 대표는 “시제품을 제작해야 하는 디자인 전공 학생이나 중소기업 등에서 3D 프린터 수요가 적지 않다”며 “보급형 제품은 물론 다양한 기업·기관 등과 협의해 최고 사양의 프린터도 이미 확보해뒀다”고 말했다.

○벤처 창업도 적극 도와

고 대표는 ‘타이드인스티튜트 대표’라는 직함도 갖고 있다. 타이드인스티튜트는 벤처 창업 등을 돕는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2011년 2월 고 대표가 싱귤래리티대학 연수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설립했다. 제조업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3D 프린터 등을 활용한 시제품 제작법을 알려주고 개발 공간을 제공해주는 ‘팹랩’(Fablab·공공 제작소)을 운영하고 있다.

본사는 서울 종로3가 세운상가에 있다. 고 대표는 “세운상가라고 하면 의아해하는 분들도 있다”며 “하지만 1~2분 거리에서 웬만한 부품을 다 구할 수 있는 세운상가야말로 제조업의 혁명을 일으킬 최적지”라고 강조했다.

타이드인스티튜트는 국내외에서 다양한 창업 경진대회도 열고 있다. 고 대표는 “현지인을 대상으로 예비 창업자를 발굴하고 국내외 창업 네트워크를 확대하기 위해 시작한 행사”라며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 실리콘밸리, 영국 런던, 일본 도쿄, 중국 상하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등지에서 성공 사례를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타이드인스티튜트에서 예비 창업자를 대상으로 기술 교육부터 시제품 제작까지 도와주는 ‘타이드 아카데미’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고 대표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가 강연하는 영상을 볼 수 있는 수업도 준비했다”며 “디지털 제작, 오픈소스 하드웨어 등과 관련한 강의를 일반인에게도 개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벤처 생태계 활성화해야

고 대표는 국내 벤처 생태계를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의 창업 지원이 좀 더 효율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정 분야, 특정 업체에만 자금이 쏠리는 지원 방식을 개선해 초기에는 다양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적은 금액이라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창업 자금을 지원할 때 ‘라운드제’를 도입하는 게 좋다는 의견을 내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예컨대 1라운드에는 소액을 지원하고 일정 기간 결과를 본 뒤 성과를 내면 2라운드에 다시 지원하고, 이후 3라운드까지 오르면 대규모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그는 “막 출범한 스타트업이 자금을 지원받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만큼 어렵다”며 “처음부터 어느 기업이 옥이고 돌인지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시장이 판단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세상을 바꾸는 사람을 꼽으라면 창업가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엘론 머스크 테슬라모터스 최고경영자(CEO) 같은 창업가가 한국에서도 많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화 ‘아이언맨’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머스크 CEO는 전기자동차 회사인 테슬라뿐만 아니라 솔라시티(태양광), 스페이스엑스(우주선)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있다. 고 대표는 “머스크는 창업을 통해 세상에 자기 비전을 투영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고 대표는 평소 권투와 암벽 등반 등 다양한 스포츠를 즐긴다. 권투는 2004년 전국신인아마추어 대회에서 동메달을 수상했을 정도로 수준급이다. 그는 “요즘엔 일에 푹 빠져 다른 취미 활동은 거의 다 잊어버렸다”며 “우주인에서 벤처인으로 변한 삶에 만족하고 있다”고 했다. 고 대표는 이제 새 인생을 개척하며 ‘불운의 우주인’이란 꼬리표를 지워가고 있다.

■에이팀벤처스는…

“스타트업 돕는 특공대 되겠다”…80년대 TV시리즈서 사명 따와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는 200만원대 3D프린터 개발

에이팀벤처스는 3차원(3D) 프린터 개발과 제조·판매를 하는 기술 기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다. 지난해 7월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유롭게 하라’는 비전 아래 출범했다.

고산 에이팀벤처스 대표는 “1980년대 유행한 TV시리즈 ‘에이특공대’에서 회사명을 따왔다”며 “우리만의 발전을 넘어 스타트업을 도와주는 특공대가 되고 싶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에이팀벤처스는 지난 5월 로봇팔 구동 방식의 보급형 3D 프린터 ‘크리에이터블 D2’를 출시했다. 이 제품은 도면을 저장한 컴퓨터와 연결하거나 메모리카드를 끼우면 내장된 프로그램이 곧바로 파일을 읽어 출력해준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게 강점이다.

크리에이터블 D2의 대당 가격은 200만원이다. 비슷한 보급형 제품보다 속도가 평균 1.5배 빠르고 사용자 편의성을 고려한 오토레벨링 기능을 갖추고 있다. 오토레벨링은 프린터의 수평을 자동으로 맞춰 조형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기술이다.

3D 프린터는 일반 프린터의 잉크 역할을 하는 필라멘트를 녹여 층을 쌓아가는 방식으로 입체 형상을 제작한다. 따라서 층의 두께가 정밀도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가 된다.

고 대표는 “인터넷에서 일부 저가 제품이 50만원 안팎에 판매되기도 하지만 우리는 정밀도를 높여 200만원의 가격에 최상의 제품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와이파이 기능을 추가하고 스마트폰과 연동하는 앱(응용프로그램) 등을 개발해 3D 프린터의 성능을 개선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다양한 3D 프린터를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인 ‘쉐이프엔진’도 선보였다. 쉐이프엔진은 3D 프린터로 제품을 제작하고 싶은 사람과 3D 프린터를 보유한 사람을 서로 연결해주는 인터넷 사이트다. 수요자는 고가의 프린터를 사지 않아도 되고 공급자는 보유하고 있는 프린터로 부가 수익을 낼 수 있다. 고 대표는 한국 사업이 어느 정도 정착하면 미국 등 해외 진출을 꾀할 계획이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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