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빅 벤

입력 2015-10-18 18:09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최초의 기계시계는 중세 유럽에서 나왔다. 처음엔 톱니를 활용했고 그 다음엔 진자를 썼다. 지금이야 전기시계도 있고, 오차가 매우 작은 수정시계와 원자시계도 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그게 최고였다. 시계는 첨단과학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근대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상징물이었다. 왕궁이나 귀족들의 성에 방마다 시계가 걸려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 주인이 시대를 앞서간다는 점을 증거하는 물건이었다.

영국 런던 의회의사당의 명물인 빅 벤(Big Ben)은 1859년에 세워졌다. 빅 벤은 원래 웨스트민스터 궁전 시계탑에 딸린 종(鐘)의 별칭이다. 궁전 건축 당시 시계탑은 성 스티븐 타워, 종은 그레이트 벨로 불렸다. 그러나 건설 책임자 벤저민 홀의 몸집이 큰 데서 유래한 ‘빅 벤’으로 통칭되다가 점차 그 이름이 굳어지고 말았다. 엘리자베스 2세 즉위 60주년인 2012년 ‘엘리자베스 타워’로 바뀌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빅 벤이라는 이름을 더 좋아한다.

빅 벤은 우리나라 보신각처럼 새해를 알리는 종소리로 영국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BBC 방송도 이를 생중계한다. 시침 길이가 2.7m, 분침이 4.3m나 되니 어마어마한 규모다. 그래서인지 소리도 장중하고 여운이 길다. 몸집이 크고 설비가 복잡한데도 그런대로 큰 고장 없이 잘 지내왔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폭격도 버텨냈다. 1976년과 1997년, 2004년에 조금씩 손을 보긴 했으나 15분마다 울리는 종소리는 여전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빅 벤의 오차가 최대 6초나 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지난 8월에는 시계가 2주 간이나 빠르게 움직였다고 한다. 이를 방송 개시음으로 삼는 BBC 라디오 프로그램이 큰 낭패를 겪었다. 지금까지는 시계를 전담하는 전문가 세 명이 노후 부품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미세 오차를 그때그때 조정해 왔는데, 이번에는 사정이 다른 모양이다.

시계 전문가 중 한 명은 “156년 된 시계여서 가끔 경련도 하고 신경질적으로 변하기도 한다”면서 “문제를 한 번에 바로잡을 수 없어 조금씩 늦추고 있는데 왜 그런지 근본 원인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무리 정교한 기계 장치라 해도 이만큼 나이를 먹었으면 몸에 무리가 따를 법하다. “156년 동안을 1년 365일 매일 24시간씩 자동차를 운행했다고 생각해봐라”는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수리비가 2900만파운드(약 500억원)라고 한다. 공사 기간도 4개월이나 된다니 관광객들은 섭섭하게 됐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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