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냄새 품어오는 저녁 물바람 / 오랑쥬 껍질 씹는 젊은 나그네의 시름 / 압천 십 리 벌에 / 해가 저물어…저물어….’ (정지용 ‘압천’ 중)
일제 강점기 도시샤(同志社)대학에 다니던 젊은 시인 정지용은 교토를 가로질러 흐르는 가모가와(鴨川)강을 보며 망국 유학생의 번민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 윤동주 시인도 옥사하기 전 같은 대학을 다녔다. 도시샤대에는 두 시인의 시비가 나란히 있다. 20대 푸른 감성의 그들을 위로했을 교토의 풍광은 고즈넉하고 넉넉하다.
지붕 없는 박물관, 교토
교토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17개 있다. 사찰 3030개, 신사 1770곳 등 많은 유적지를 품고 있어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 투하 지역 후보에서 제외됐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가장 일본다운 정서와 문화가 깃든 것으로 평가되는 교토에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渡來人)들의 자취가 많이 남아 있다.
교토의 대표적 명소로 동쪽에 기요미즈데 ?淸水寺)가 있다면 서쪽에는 덴류지(天龍寺)가 있다. 기요미즈데라는 고대 간무 천황 시절 최초의 쇼군이었던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가 788년 창건했다. 임신 중인 아내를 위해 사슴을 사냥한 뒤 한 스님을 만나 자신의 살생 행위를 반성하며 건립했다고 한다. 아슬아슬한 절벽 위에 지어진 기요미즈데라는 139개의 거대한 나무 기둥으로 무대를 만들어 넓게 트인 전망을 끌어들였다. 지진을 고려해 쇠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로만 지은 기발한 건축기법은 현대 건축가들이 봐도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로 정교하고 웅장하다.
교토 사람들은 기요미즈데라 안에 있는 ‘청수의 무대’에서 가을 석양 무렵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전망을 최고로 꼽는다. 청수의 무대는 12m 높이에 있는데 이곳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그야말로 아찔하다. 일본인들이 결단을 내릴 때 흔히 ‘청수의 무대에서 뛰어내릴 결단’이라고 말하는 의미가 실감난다. 기요미즈데라에는 3개의 물줄기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샘물이 있는데 각각 명예, 사랑, 건강의 의미를 지녀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기다리며 시음한다.
에도시대, 고즈넉한 골목을 걷다
에도시대부터 이어 내려온 서민들의 삶의 풍경을 살펴보려면 기온(祇園)의 전통가옥 거리인 ‘하나미코지(花見小路)’로 가야 한다. 일본 전통가옥을 ‘마쓰야’라고 부르는데 앞은 좁고 안은 길어 일본인들은 ‘장어의 침실’이라고 부른다. 깊숙이 들어가는 통로를 지나면 긴 툇마루와 소박한 정원이 있다.
교토의 골목은 정갈하고 고요하다. 숲 속 작은 산사의 담을 굽이 돌아 걷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멀리 기모노를 곱게 차려입고 앙증스러운 양산으로 얼굴을 가린 게이샤가 사람들 눈을 피하며 걸어왔다. 순간 주위 전통 가옥과 더불어 잠시 에도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졌다. 올린 머리를 한 그녀의 목덜미가 서늘했고 하얀 버선이 눈부셨다.
교토 아라시야마의 덴류지 입구에는 가쓰라강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백제에서 넘어온 도래인들이 강에 제방을 쌓고 개척해 교토 번영의 바탕이 됐다. 덴류지는 정원으로 유명하다. 모래와 돌로 만든 산수정원을 지나면 연못 주변을 따라 산책할 수 있도록 설계된 지천회유식(池泉回遊式) 소겐치 정원을 만날 수 있다. 한적함 속에서 우아함을 추구하는 일본 문화를 잘 나타내는 정원이다. 절 뒤로 나서면 울창한 대나무 숲길 지쿠린(竹林)이 있다. 영화 ‘게이샤의 추억’에서 주인공 장쯔이가 차를 타고 지나며 바라보던 대나무 숲이다. 녹색의 싱그러움과 청량한 공기에 둘러싸인 채 걷다 보면 일상의 자잘한 근심을 잊게 된다. 시원하게 뻗은 대나무의 기상 앞에 하늘도, 햇살도 이따금 수줍은 얼굴을 내밀 뿐. 절은 앞이 밝고 뒤는 깊어야 한다. 덴류지의 대나무 숲길은 길고 아늑했다.
나고야의 상징, 화려한 긴샤치
나고야성은 오사카성, 구마모토성과 함께 일본 3대 성으로 꼽힌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전국 통일 후 1612년 재건해 도쿠가와 집안의 성으로 사용했다. 천수각 지붕에 놓인 긴샤치(金號)는 상상의 동물인데 머리는 호랑이, 몸은 물고기 형상이다. 긴샤치는 물을 부른다고 여겨서 화재 방지를 위한 주술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나고야성의 긴샤치는 현재 가치로 20억엔 정도의 금으로 제작했다.
미에현에 있는 이세 신궁은 일본 3대 신궁 중 하나다. 일본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이세 신궁은 신사보다 더 격이 높은 곳으로, 일왕의 조상신을 모신 곳이다. 일본인들이 일생에 한 번은 가보고 싶어 하는 마음의 안식처로 유명하다. 5세기께 것으로 추정되는 이세 신궁은 20년에 한 번씩 새 궁을 짓고 이사한 뒤 헌 궁을 허무는 ‘식년천궁(式年遷宮)’을 한다. 2013년에 62번째 이사를 했다. 식년천궁은 신앙 이외에도 전통 건축양식을 후세에 전수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신궁 앞에는 에도시대부터 메이지시대까지 목조 건물을 재현한 일본 최대 풍물 거리 ‘오카케요코초’가 있다. 입구에 있는 아카후쿠(赤福)라는 떡집은 1707년 창업해 300년 가까이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대나무 평상에 앉아 달콤한 팥떡을 먹으며 거리를 보니 마치 흑백 무성영화처럼 아련하고 깊었다.
여행상품 정보
하나투어(hanatour.com)는 교토를 비롯해 이세 신궁, 나고야를 둘러볼 수 있는 여행상품을 판매한다. 나고야, 교토, 미에현 4일(1일 자유) 일정으로 코코파리조트에서 2박을 한다. 코코파리조트의 이국적인 통나무집에서 색다른 추억을 쌓을 수 있고 자유 일정 하루 동안 인근 나가시마리조트 투어나 골프를 할 수 있다. 79만원부터.
교토·나고야=김미애 여행작가 malina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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