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중 행보 이해한다면서도 남중국해 입장 요구하는 미국
물러 설 곳 없는 미·중의 선택 압박, 한미 동맹 강화가 정답
지난주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핵문제에 대한 단호한 공조가 재확인된 것은 의미있는 성과였다. 하지만 경제와 교역 쪽에서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대목이 적지 않다. 국제정치 분야도 만만치 않은 갈등이 드러났다. 특히 대미(對美) 통상외교의 갈등은 이미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세계 경제는 갈수록 집단화, 블록화 추세를 보이면서 그룹 간 벽도 견고해지고 있다. 경제적 협력관계는 곧 안보 협력관계로 동일시되는 시대다. 경제·통상외교가 군사동맹 체결 못지않게 중요해졌다. 대미 경제외교를 재점검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가장 의아스런 대목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한국이 가입하는 문제다.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은 이 문제가 정상회담에서 논의됐다며 이번 워싱턴 회담의 주요한 성과라고 엊그제 브리핑했다. 하지만 장문의 공동설명서에는 ‘미국은 TPP에 대한 한국의 관심을 환영한다. 양국은 TPP에 대한 기존의 건설적인 협의를 심화해 나가기를 기대한다’는 한 줄뿐이었다.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은 적극적인 의지를 거듭 밝혔으나 오바마 대통령은 이 문제 ?대해선 묵묵부답이었다. 박 대통령은 앞서 한미재계회의 연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초청연설에서도 계속 TPP 가입의지를 강하게 밝혔다. 대통령의 요청에 미국의 화답은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청와대는 이 부분에 대해 얼버무릴 것이 아니라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TPP 가입 협력은커녕 미국은 공동설명문에 한국의 환율조작 문제를 포함하자며 한국 측을 압박했다. 최종 발표 단계에서 환율 문제가 빠졌다고는 하지만 경제협력 파트너로 한국을 보는 미국의 시각이 이 해프닝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환율 문제는 어제 공개된 미 의회조사국(CRS)의 ‘한·미 관계’ 보고서에도 들어 있다. 의회에서도 주시하는 만큼 일회성 경고는 아니었던 셈이다.
환율이야말로 국가 간 외교관계의 총체적 반영이라는 측면에서도 긴장할 일이다. 원화 절상을 요구하는 압력은 언제든지 현실화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미 의회는 우리의 시장개방 속도에도 문제제기를 했다. 이는 한·미 FTA의 이행에 대한 명확한 불만 표시다. TPP에는 빠지면서 서둘러 한·중 FTA를 체결한 것에 대한 우회적 불만일 수도 있다. 대통령의 귀국과 동시에 단행된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의 교체는 이런 사정과 어떤 관련이 있나. 겉으로는 F35의 4개 핵심기술을 미국에서 이전받지 못하게 된 상황에 책임지는 모양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사정만으로 보기도 어렵다. 대미 통상외교의 난맥상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남중국해 분쟁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는 오바마 대통령의 ‘공개 요청’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요지는 ‘중국이 국제 규범과 법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한국도 미국과 같은 목소리를 내달라’는 것이었다. 남중국해 분쟁같은 현안에서 공조하자는 요구였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는 상황은 먼 미래가 아니라 당장의 숙제다. 남중국해 분쟁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6월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도 한국에 분명한 목소리를 내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남중국해의 지정학적 특성을 감안한다면 TPP야말로 이 지역에서 중국의 패권주의적 행보에 맞서는 태평양 국가들의 안전항로 구축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TPP 협상 타결 당시 미·일 정상들이 태평양을 둘러싼 ‘가치의 동맹’이 출범했다고 평가한 것도 새로운 경제안보동맹의 시작을 강조한 것이었다. 태평양 12개국의 이런 긴밀한 협력체에 우리가 배제된 것에 대해서도 그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이가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친중 외교가 결국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TPP보다 한·중 FTA를 우선시하는 등 중국으로 달려간 외교적 대가도 만만찮다. 중국과 우호적 관계라지만 정작 북한핵 저지에서는 가시적인 성과도 내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대미 통상외교가 위기에 봉착한 듯한 상황이 됐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한·미 관계가 사상 최고인 상태라고 강변했지만 이번 방미 결과는 그것과는 사뭇 거리가 멀다. 박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의 실패한 동북아균형자론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외교 참모진을 정리한 만큼 한·미 동맹 강화를 국가존망의 차원에서 다져나가야 한다. 한·미 동맹이야말로 대한민국 외교의 기초 중의 기초다.
[한경닷컴 바로가기] [스내커] [슈퍼개미] [한경+ 구독신청]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