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들의 수다] 이정현 “韓-中 대중 모두 자부심 강해… 양국 문화 존중 필요”

입력 2015-10-21 09:30  


[스타미디어팀] 이정현은 느낌이 온다고 했다.

마음에서 우러러 나오는 끌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멀건 얼굴을 하고 잔잔한 연기를 펼치던 소녀가 격정적인 테크노 음악에 몸을 맡겨 한 시대를 풍미할 줄 누가 알았을까. 음반활동에서 멈추지 않고 스크린에서도 그녀의 존재는 무게감을 달리했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그의 에너지는 국경을 넘었다. 이목을 사로잡는 퍼포먼스로 대륙을 휘어잡았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솔직한 시간을 살아온 이정현의 지난 날을 돌이켜 봤을 때, 한번도 예상 가능한 흐름이 아니었기에 앞으로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이정현에게 직접 힌트를 구했다.


이정현과의 화보 촬영은 고풍스러운 호텔의 스위트 룸에서 진행됐다. 총 네 벌의 의상을 소화한 그. 시크한 블랙 오피스 룩과 편안한 캐주얼 룩이 잘 어울렸지만 무엇보다도 ‘여배우의 특권’이라 불리는 드레스 두 벌은 이정현을 위한 맞춤 의상 같았다. 고혹한 미모를 뽐낸 그에게 평소의 모습을 물었다.

“패션에 관심은 많지만 여느 패셔니스타들처럼 옷을 모으거나 하지는 않아요. 나이를 먹으면서 여성스러운 의상이 좋아지더라고요. 운동을 안 하면 다리가 마르는 편인데 운동할 시간이 별로 없어서 바지보단 치마를 주로 입어요”

마지막 의상이었던 연핑크 드레스를 입고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비녀는 꽂은 그의 모습은 마치 중국 영화 ‘천녀유혼’ 속 스무 살의 왕조현을 보는 듯 했다. 도전하고 싶은 장르로 꼽은 중국 무협 영화 속 이정현의 프리뷰를 보는 듯한 느낌.

“중국에서 영화를 너무 하고 싶어요 시나리오를 많이 받아보고 있어요. 중국 CCTV에서 방영한 ‘공자’로 중국 정통 사극에 출연했었는데 황후 역할을 맡았거든요. 그 때 분장 스태프들이 첸카이거 감독의 스태프들이었는데 정말 최고였어요. 무협 영화를 꼭 하고 싶어요. 정말로요”

2000년대 초 중국에 진출해 한류 열풍을 이끌었던 그는 여전히 높은 인기를 구사한다. 쉴 틈 없이 양국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억’소리가 절로 날 정도로 높아진 한류의 명성에 이바지한 이정현의 공헌 또한 결코 적지 않다.

“추자현 씨나 박해진 씨도 저와 마찬가지로 현지에서 활동을 열심히 하고 계신데 그들의 고충이 공감이 돼요. 지금의 인기를 얻기까지 노력했다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하고요. 한국과 중국의 대중들은 비슷해요. 재미를 원하고 각자의 문화를 자랑스러워하죠. 양국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해요”


한국에서 이정현의 색깔은 종잡을 수가 없다. 다양한 앨범을 꾸준히 발매한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가수 활동과 더불어 평범하지 않은 역할을 소화해온 것이 두 번째 이유다. 이정현이 연기한 인물들은 모두 대중의 가슴을 관통했다. 관통이라는 단어가 다양한 의미가 있을 수 있으나 ‘뇌리에 박혔다’는 의미만큼은 명확하다.

“음반 활동을 하면서 제 이미지가 대중에게 굉장히 강하게 인식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들어오는 시나리오들이 모두 공포 영화뿐이더라고요. 특히 귀신 역할로. 그 땐 굉장히 속상했어요. 연기에 대한 갈망을 음반으로 계속 풀었어요”

억지로 음악을 한 것은 아니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을 음반으로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국내에서의 얻은 ‘테크노 여전사’의 닉네임을 내려두고 배우의 이름을 찾기 위해 이정현이 선택한 방법은 바로 해외 진출이었다.

“해외에서 작품을 했어요. 중국에서 드라마 두 개를 촬영했고 일본에서도 하나 했고요. 해외에서는 저의 강한 이미지를 잘 모르니까 다양한 역할로 제의가 들어왔죠. 무대 위에서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인 청순 가련한 여자도 연기해봤어요. 픽 쓰러지기도 하면서요(웃음)”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던 이정현에게 2010년 소중한 인연의 끈이 닿았다. 박찬욱 감독이 걸어온 한 통의 전화는 이정현의 연기 인생에 터닝포인트와도 같았다. 그 날을 기억을 되새기는 이정현의 표정은 여전히 설렘이 가득했다.

“믿을 수가 없었죠. 박찬욱 감독님 맞으시냐고 확인까지 했어요. 제의를 주신 역할이 무당 역할이었어요. 감독님께서 괜찮겠느냐고 여쭤보셨는데 저는 무조건 한다고 했어요. 제게 전화를 주신 것 자체가 그저 감사했거든요”

박찬욱의 연출력과 이정현의 연기력이 만난 영화 ‘파란만장’은 제 6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단편영화 부문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파란만장’은 국내 영화인 사이에서도 파란을 일으켰고 이정현이란 배우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이정현은 ‘명량’에서 아무 말도, 아무 것도 들을 수 없었지만 가슴으로 한을 풀어내는 ‘정씨 여인’ 역을 맡았다. 아름답지도 고급스럽지도 않은 역할이었지만 이정현의 울부짖음으로 가득 찬 단 몇 분의 장면은 관객들에게 큰 울림을 남겼다. 이정현을 비롯한 주연배우들의 호연이 빛난 영화 ‘명량’은 관객수 약 1760만명을 달성하고 역대 관객수 1위를 꿰찼다.

“‘파란만장’을 통해 ‘명량’에 출연할 수 있었어요. 김한민 감독님께서 영화 ‘최종병기 활’을 촬영하고 있던 도중에 ‘파란만장’을 보시고 연락을 주셨죠. 다음 작품을 꼭 같이했으면 좋겠다고 당부를 하셨는데 ‘명량’의 시나리오가 완성되자마자 제게 바로 보내주시더라고요”

‘명량’이 막을 내리고 이정현이 선택한 차기 영화는 대규모의 상업영화가 아닌 독립영화였다. 주연 ‘앨리스’ 역을 맡은 이정현은 노 개런티로 출연을 결정해 화제를 모으기도. ‘앨리스’ 역이 이정현의 손에 닿기까지 박찬욱 감독의 인연이 크게 작용했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가 상업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회사에서 미리 거절을 했었나 봐요. 여주인공 자리가 비어있는 상태에서 박찬욱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보셨고 제 이름을 거론하셨어요. 저희 회사에서 이미 거절한 사실을 들으시고는 ‘내가 하면 정현 씨 반응이 다를 거야’하시면서 직접 연락이 주셨어요. 시나리오를 받아서 읽어본 지 1시간만에 출연을 결정했죠”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제16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대상 수상을 시작으로 대만 금마장영화제,벤쿠버국제영화제, 홍콩 아시안영화제, 폴란드 바르샤바 영화제 등 해외 영화제에 초청되었으며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4만 관객을 넘었다.

‘수남’의 잔혹함을 자연스럽게 해낸 이정현.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통해 느낀 블랙코미디의 매력은 상영되고 있는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들을 보면 표면으로 더 와 닿는다고.

“블랙 코미디의 특징이라면 웃음이 나오면 안 되는 장면에서 자꾸 웃음이 나온다는 것. 그런 매력을 가장 많이 느낄 수 있었던 것이 박찬욱 감독님의 ‘복수는 나의 것’이었어요. 안타까운 장면에서 자꾸 웃음이 나오는 거예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무대인사를 돌면서도 많이 느꼈어요. 상영관이 웃음소리로 가득 차면 관객들과 공감하고 있구나 느낄 수 있었죠”


연초를 뜨겁게 달궜던 MBC ‘무한도전’의 ‘토토가 특집’은 복고 열풍을 몰고 왔다. 이정현뿐만 아니라 9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들의 무대는 과거의 아련함을 품고 있는 대중의 가슴을 떨리게 했다. 이정현은 오랜만의 무대를 재현하기까지 부담감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당대 최고라 불리던 이들과 모인 무대에 쏟아지는 대중의 기대는 상상을 초월했다.

“부담감보다는 너무 재미있었어요. 아직까지도 중국에 가면 ‘와’를 좋아해주시거든요. 공연계약서에 ‘‘와’는 꼭 부른다’라고 되어있을 정도니까요. 재석오빠의 적극 추천으로 출연하게 됐는데 ‘토토가’에서 활동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거에 초점을 맞추고 직접 비녀도 깎고 의상도 고르고 했어요. 준비과정부터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무대에서의 카리스마는 여전했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아우라는 관객들을 압도했고 새로운 앨범을 원하는 팬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무한도전’의 출연은 팬의 연령층을 넓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토토가’ 특집 이후로 팬이 늘었어요. 나이 어린 팬들도 많이 생겼고요. 2000년 대에 태어난 팬들이 생겼는데 너무 신기하고 기뻐요. 어린 친구들이 바라는 건 새로운 음반이더라고요. 진짜 좋은 곡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실망감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계속 기다리고 있어요”

여자 솔로로서 음반 활동과 연기를 병행해 온 이정현의 행보는 변함이 없을 예정이다. 어느 작품에서든지 굵직한 존재감을 펼쳐왔기에 그에 대한 기대감은 날이 갈수록 힘을 보탠다.
 
“봉준호 감독님과 꼭 작업해봤으면 좋겠어요. 모든 여배우가 하고 싶어 하는 감독님이죠. 상대 배역에는 김수현, 유아인, 송강호, 하정우?(웃음)”

어느덧 30대 중반의 나이가 된 이정현. 한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그도 평범한 가정을 꿈꾸지 않을까? 결혼 이야기를 꺼내자 요즘 주변에서 부쩍 많이 듣는다며 수줍게 답했다. “외모는 송중기, 성격은 유재석. 재석오빠 같은 성격이면 너무 좋죠. 완벽하게 착한 사람이라서요. 연하남이면 좋은데 존경할 수 있는 남자이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제가 남편을 존중할 수 있어야 가정이 화목할 것 같아요”


이정현은 아이콘이다. 아이콘이라는 단어가 상징하는 바는 크다. 트렌드를 앞서야 하고 독보적인 행보를 걸어야 하며 스치는 기억을 더듬어도 단번에 떠오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세 음절로 이루어진 짧은 한 단어에 결코 작지 않은 뜻이 담겨있다.

짧지 않은 시간을 센세이션 속에서 살아온 이정현. 그가 만들어 낸 트렌드의 소용돌이가 한중을 뒤흔든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청사진이 또 다른 반향을 일으킬 것이라는 기대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반향’의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각인시켜줄 그의 다음을 기대해본다. (사진출처: bnt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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