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면 걸리는 배임죄, 구조조정까지 막는다"

입력 2015-10-21 18:10  

한경후원 '배임죄, 이대로 좋은가?' 세미나

배임죄 구성 요건 모호해…고소 남발 등 부작용 심각
'오락가락' 법원 판례도 문제
'자신 또는 3자이익 도모' 등 범죄요건 구체적 명시 필요



[ 서욱진 / 김순신 기자 ]
‘걸면 걸리는’ 불명확한 배임죄가 정상적인 경영활동은 물론 기업 구조조정까지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가미래연구원이 21일 우리은행,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제신문사 후원으로 서울 조선호텔에서 연 ‘배임죄, 이대로 좋은가?’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은 “배임죄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서는 적용 범위를 보다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영활동과 구조조정 막아

세미나에서는 배임죄가 기업 경영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발제를 맡은 한만수 법무법인 호산 대표변호사는 “한국은 경영자를 통제하기 위한 민사소송이나 행정 개입 등의 수단이 있음에도 가장 가혹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배임죄를 과도하게 적용하고 있다”며 “감옥에 갈 수도 있는데 어떤 경영자가 자신있게 실패 위험이 있는 사업에 뛰어들겠느냐”고 반문했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원장은 “모호한 배임죄 규정 때문에 기업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수 없다는 문제 제기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며 “최근 이석채 전 KT 회장이 1심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자 배임죄 개정이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신석훈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팀장은 “모기업에 이득이 되는 경영 행위인데도 자회사가 손해를 입으면 배임이라고 봐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대규모 기업 집단이 일반화된 지금 배임죄는 너무 근시안적인 시각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배임죄가 원활한 구조조정을 가로막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신 팀장은 최근 금호산업의 매각 과정에서 채권단이 원금보다 싸게 팔 경우 배임죄에 걸릴 수 있다고 우려해 과도한 시일이 걸린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2013년 쌍용건설 정상화를 위해 채권단이 채무 재조정과 신규 자금 지원 등을 논의할 때 군인공제회가 배임 문제를 명분으로 정상화 논의를 거부한 것도 구조조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경우로 볼 수 있다.

○배임죄 요건 명확히 해야

세미나 참가자들은 배임죄 요건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한 변호사는 “배임죄에 문제가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이미 형성돼 있다”며 “최근 배임죄 개선을 위한 법 개정 움직임은 당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모호하게 표현된 배임죄 규정에 ‘자신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하거나 회사에 손해를 가할 목적’을 추가함으로써 ‘목적범’에 한해 배임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임죄 요건이 모호하다 보니 고소를 남발하는 부작용이 크다는 지적도 나왔다. 나승철 전 서울변호사회 회장(변호사)은 내부 갈등이 많은 회사의 법정관리인으로 일했던 일을 소개했다. 그는 “무슨 일만 하려고 하면 배임으로 걸겠다는 협박이 잇따랐다”며 “무죄가 나올 것이 뻔해도 고소나 고발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서욱진/김순신 기자 ventu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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