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Good Job!'이 낳은 자신감

입력 2015-10-21 18:23  

김현석 산업부 차장


공을 쫓던 아이가 넘어졌다. “왜 넘어져?”란 질책 대신 “좋은 시도야(Good try)!”란 응원과 박수가 쏟아졌다. 기자가 작년 8월부터 1년간 미국에서 연수를 받던 때의 일이다. 아이는 축구를 그리 잘하지 못했다. 운동을 워낙 싫어해 한국에서 억지로 보낸 축구교실. 그곳에서 “물이나 떠와”란 말을 듣게 되자 주눅이 들었다. 축구하는 날마다 가기 싫다고 떼를 썼다. 그런 애가 미국에 가더니 넉 달 만에 달라졌다. “잘했어(Good job)!” “대단한데(Great)!”를 외쳐 대는 코치, 학부모들과 몇 달을 함께하더니 기적이 일어났다. 칭찬을 듣고 자신감이 생기니까 좋아하게 되고, 열심히 뛰니까 잘하게 됐다. 아이는 어느새 경기가 있는 날 먼저 축구화를 신고 나가 아빠가 나오길 기다렸다.

아이를 춤추게 만드는 칭찬

미국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뭘 하더라도 과할 정도로 칭찬을 했다. 반면 한국에선 꾸지람을 많이 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수수수미수’를 맞았다면 ‘수’ 받은 걸 칭찬하기보다 “왜 이 과목은 미를 맞았느냐”고 나무란다. 그 학생은 ‘수’ 받은 과목을 더 열심히 공부하기보다 ‘미’를 맞은, 싫어하는 과목을 억지로 보완해야 한다. 미국에서 ‘ABCCD’를 받으면 교사는 “이 과목에서 A를 받았다”며 칭찬한다. 이런 문화가 미국 아이들이 ‘디스커버리(discovery·발견)’를 하도록 만든다. 잘하는 걸 칭찬받다 보니 더 열심히 공부하고, 그러다 보니 그 분야에서 발명과 창조를 하게 된다. 미국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삼성 계열사 사장은 “한국인은 모르면 누군가 가르쳐주길 기다리지만, 미국인은 스스로 찾을 때까지 탐구하더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연구개발(R&D)의 상징이던 종합기술원을 3년 전부터 축소하더니, 핵심 연구 기능을 미국 실리콘밸리로 옮겼다. 10년 뒤를 내다보고 한다는 선행연구 과제 상당수는 폐기했다고도 한다. 한국에 남긴 연구기능은 당장 1~2년 내 상용화가 가능한 제품 개발이다. 첨단소재와 차세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소프트웨어, 기존 틀을 무너뜨리는 파괴적 기술, 사물인터넷(IoT) 등 미래기술 연구는 실리콘밸리의 삼성리서치아메리카(SRA)가 맡았다. 길영준 부사장 등 과거 종합기술원의 핵심 임원들도 미국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상한 사람으로 키워라

삼성만이 아니다. LG전자 SK하이닉스 등 괜찮은 한국 기업들은 모두 실리콘밸리에 연구소를 세우고 있다. 세계의 혁신 기지이기 때문이겠지만,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는 창의적 연구가 쉽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가요 프로그램 ‘복면가왕’에서 희한한 가면을 제작해 ‘복면재근’이라고 불리는 디자이너 황재근 씨는 세계 3대 디자인스쿨 중 하ざ遮?벨기에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를 나왔다. 황씨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학교에 갔더니 더 이상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더라”고 했다.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아주기 위해 학생의 속에 있는 걸 짜내더라는 것. 다른 나라에선 남들과 다른 나를 찾을 수 있게 하는데 우리 교육은 똑같은 사람을 찍어낸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에서 9년째 머물러 있는 한국에선 제조업의 전성시대가 저물고 있다. 서비스업은 정부 규제 때문에 클 수가 없다. 그동안 대부분 좋은 직업 중 하나가 R&D였는데, 이나마도 해외로 옮겨 가고 있다. 우리 아이가 크면 어떤 일자리가 남아 있을까.

김현석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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