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정문국 ING생명 사장 "원칙은 반드시 지킨다는 뚝심이 외국계 보험사 3곳 CEO된 비결"

입력 2015-10-22 19:05  

"받는 만큼 일한다는 월급쟁이 아닌 일한 만큼 받겠다는 자세로 임해"


[ 이지훈 기자 ] 울타리 벗어나 야전으로

늦둥이로 태어난 전형적인 마마보이
암으로 어머니 떠나보내고 철들었죠

외환위기 때 제일생명서 매각 실무
M&A 컨설팅사 차려 새 도전 나서

평사원에서 경영자로

해외 유학·근무 경험 없는 ‘토종’
5년만에 친정 복귀…‘경영자의 길’

보험상품 경쟁력이 회사 성패 갈라
경영자는 끊임없이 혁신 추구해야

정문국 ING생명 사장(56)은 스스로를 ‘100% 국산’이라고 부른다. 해외에서 근무한 경험도, 그 흔한 해외 경영학석사(MBA) 학위도 없어서다. 그런데도 2007년 알리안츠생명을 시작으로 에이스생명과 ING생명에 이르기까지 세 개 외국계 보험회사 사장에 올랐다. 최고경영자(CEO)로 일한 기간만 9년이다.

서울 서소문로에 있는 중화요리 전문점 배재반점에서 그를 만나 비결을 물었다. 다소 엉뚱한 대嶽?돌아왔다. 정 사장은 “받은 만큼 일하는 게 아니라 일한 만큼 받겠다는 자세로 살아온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월급쟁이 근성’과 같은 얘기는 정말로 듣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누구 못지않은 주량의 정 사장은 “숙취 해소에 짜장면 곱빼기만 한 게 없다”며 20여년간 이곳을 즐겨 찾은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배재반점은 서울 한복판에 있는데도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며 “20년간 변함없는 짜장면 맛을 보면서 늘 초심을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13살 막내아들 두고 떠난 어머니

배재반점은 신선한 해산물 요리로 정평이 나 있다. 전복 해삼 갑오징어 등 각종 해산물을 채소와 함께 볶고 녹말물로 걸쭉하게 조리한 전가복이 대표 메뉴 중 하나다. 전복에 젓가락을 가져간 정 사장은 “이게 안주로는 그만”이라고 한 뒤 “고량주가 빠지면 안 된다”며 술을 권했다. 그는 술을 한 잔 마시고는 “나는 전형적인 마마보이였다”며 어린 시절 이야기를 풀어놨다.

정 사장은 열아홉 살 많은 누나와 일곱 살 터울의 형을 둔 막내로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른여덟에 늦둥이를 본 어머니는 막내를 금지옥엽(金枝玉葉)으로 키웠다. 이발소보다는 미장원이 익숙했고, 목욕탕도 늘 어머니를 따라 여탕에 다녔다. 어머니는 한시도 막내아들을 품에서 떼어놓지 않으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가 암 선고를 받았다. 서울에서 한동안 치료받고 부산으로 내려온 어머니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등교하는 아들의 인사를 받지 않았다. 이미 병세가 깊어진 뒤였? 정 사장은 “닫힌 방문을 보면서 얼마나 서러웠는지 모른다”며 “사랑만 받고 자란 아들이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철부지로 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냉정하게 대하셨던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어머니는 정 사장이 중학교 1학년 때 세상을 떠났다. 이후 외삼촌과 외숙모가 함께 살며 그를 돌봤다. 정 사장은 “고교시절 한때 방황도 했지만, 어머니의 부재가 역설적으로 자립심과 독립심을 키워준 계기가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사업으로 바쁜 아버지, 결혼한 누나와 유학길에 오른 형 문건씨(한국지방세연구원 부원장). 이 무렵부터 정 사장의 홀로서기가 시작됐다.

부산 해동고를 졸업한 뒤 한국외국어대 네덜란드어과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 제일생명 비서실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영어는 좀 했다. 남다른 성실함으로 촉망받는 인재로 성장했다. 비서실장까지 오른 그는 최고경영자를 보좌하면서 기업 전체를 볼 수 있는 넓은 시야를 얻었다.

미국인 프랭크 빔을 만나다

한참 대화가 오가던 중 새빨간 색감이 식욕을 자극하는 깐쇼새우가 나왔다. 두반장, 토마토케첩, 설탕을 섞은 양념에 제철 새우를 버무려 볶은 깐쇼새우의 새콤한 맛이 입맛을 돋웠다. 정 사장은 “나에게도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있었다”고 말을 이어갔다. 평생의 친구가 된 프랭크 빔을 만난 인연을 두고 하는 얘기였다.

정 사장은 외환위기 당시 제일생명 구조조정팀에 소속돼 매각작업을 담당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간이 매각주관사였는? 책임자가 바로 빔이었다. 함께 밤늦도록 일하는 날이 많았다. 1년간의 협상을 거쳐 제일생명은 독일 알리안츠생명에 매각됐다. 그런데 정 사장의 성실성을 눈여겨본 빔이 글로벌 인수합병(M&A)과 관련한 컨설팅회사를 함께 차리자고 제안했다.

빔은 “당신은 나와 함께 일하면서 M&A의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배웠다. 그 어떤 MBA 과정에서도 얻을 수 없는 경험을 쌓았다”며 설득했다. 고심 끝에 빔과 함께 허드슨인터내셔널어드바이저를 설립해 한국법인 대표를 맡았다. 대형 보험사라는 울타리 안이 아닌 울타리 밖의 냉혹한 ‘을(乙)의 세계’로 뛰어든 것이다.

그는 “당시의 결단과 야전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요즘도 직원에게 안주하지 말고 도전정신을 가지라고 주문하는 배경이다.

울타리 밖의 세계는 만만치 않았다. 시장 환경이 급변해 매물로 나왔던 기업의 가격이 오르면서 매수자가 줄었고, 회사는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능력을 높이 산 AIG그룹은 AIG인베스트먼트에서 아시아지역 M&A를 전담해 달라고 제안했다. 정 사장은 다시 자리를 옮겼고, 이후 매물로 나온 여러 국내 보험사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정밀하게 실사하는 기회를 잡았다. 그는 “보험사의 모든 것을 알게 됐고, 이후 경영자로 일하는 데 소중한 자산이 됐다”고 설명했다.

악착같이 일하는 정 사장의 근성을 보여주는 일화 하나. AIG인베스트먼트에서 M&A를 담당할 때 그의 별칭은 이름의 이니셜을 딴 ‘MK, 5분’이었다. AIG그룹에서 나온 전문가들은 회의가 시작되면 늘 정 사장을 바라보며 “What’s the point(핵심이 뭐죠)”라고 물었다. 그러면 정 사장은 회의 자료의 요점을 간략하고도 명쾌하게 설명했다.

그는 “원어민도 아니고 계리 전문가도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밤을 새워 영문으로 된 회의 준비 자료를 반복해서 숙독하며 완벽하게 파악하는 것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친정 복귀 2년 만에 CEO에

차장 직급으로 제일생명을 떠난 지 5년 만인 2004년 정 사장은 알리안츠생명 부사장으로 복귀했다. 매각 협상 당시 그를 눈여겨본 사람은 빔만이 아니었다. 알리안츠그룹에서는 자신의 후임으로 한국인 CEO를 원했던 마누엘 바우어 당시 알리안츠생명 사장에게 그를 적극 추천했다. 바우어 사장은 2년 뒤 물러날 때 후임자로 고려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친정을 떠난 지 5년 만에 CEO로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이다.

성공가도를 달려온 정 사장에게도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알리안츠생명 사장을 맡은 뒤 성과급제 도입을 추진하자 노조가 크게 반발했다. 파업이 시작됐다. 영업에 상당한 문제가 생겼는데도 그는 원칙을 지켰다. 노사 대립은 234일 만에 종결됐고, 이내 회사는 안정을 찾았다. 그는 “원칙에 맞지 않는 요구를 다 수용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CEO는 그래서 외로운 자리”라고 말했다.

상품 혁신이 보험사 성패 갈라

한국 보험산업의 미래로 화제가 옮겨갈 즈음 짜장면이 나왔다. 정 사장이 해장용으로 즐겨 찾는 메뉴다. 그는 “차별화된 메뉴를 두고 있어야 음식점이 성공하는 것처럼 보험사도 차별화된 상품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瑛揚?AIG생명 알리안츠생명 ING생명 등 세 곳의 보험사에서 각각 혁신적인 상품을 내놓아 배타적 사용권을 획득하기도 했다. 보험업계에서 그가 상품 혁신의 아이콘으로 통하는 이유다.

만난 지 세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정 사장은 “보험과 더불어 31년을 살았지만 최근에 진정한 보험의 가치를 경험했다”고 말했다. 심장에 점액종이 생겨 수술받은 것이다. 정 사장은 실손보험과 건강보험에 가입한 덕에 부담 없이 수술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보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직접 경험했다”며 “요즘 설계사들을 만나면 더 자신감을 갖고 상품을 판매해 달라고 주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 사장에게 다음 목표를 물었다. 그는 “보험 규제가 크게 완화되는 만큼 앞으로 상품 경쟁력에 따라 회사의 성패가 갈릴 것”이라며 “혁신적인 상품과 리스크 관리를 통해 ING생명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하는 게 내 임무”라고 말했다.


■정문국 사장의 단골집 배재반점
자색 양파 곁들인 짜장면…전가복·깐쇼새우도 인기

배재반점은 서울지하철 1호선 시청역 10번 출구에서 충정로 방향으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다. 초록색 간판을 따라 서소문 배재빌딩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1973년부터 이곳을 지키고 있는 중화요리 전문점을 만나게 된다.

배재반점은 신선한 해산물 요리 등으로 시청역 부근 직장인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 주말에도 문을 연다. 해산물을 듬뿍 얹어주는 삼선짬뽕(7000원)과 자색 양파를 곁들인 양념으로 유명한 짜장면(6000원)은 합리적인 가격에 양도 푸짐하다. 여름엔 계절 별미인 중국식 냉면이 인기다.

식당이 자랑하는 대표 메뉴는 전가복(5만원) 깐쇼새우(4만원) 등이다. 마늘소스에 오리알을 더한 해파리냉채(3만원)와 신선한 게살에 마늘향 소스를 곁들인 깐풍게살(4만5000원)도 인기 메뉴다. 저녁에는 냉채, 게살수프, 샥스핀, 대하, 고추잡채 등으로 구성된 코스요리(5만~10만원)도 괜찮다.

■ 임직원과 유럽 방문길…발로 뛰는 정문국 사장

시장의 변화와 고객이 원하는 것을 읽어내는 부지런함은 정문국 ING생명 사장의 강점이다. 그는 혁신을 위해서라면 지금도 현장을 누빈다. 지난달엔 임직원과 함께 유럽 3개국의 보험사를 방문했다. 설계사 활동관리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그가 직접 기획한 출장이었다. 정 사장은 “차별화만이 우리에게 새로운 시장, 새로운 고객,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 정문국 사장

△1959년 부산 출생 △1978년 부산 해동고 졸업 △1983년 한국외국어대 네덜란드어과 졸업 △1984년 제일생명 입사 △1999~2001년 허드슨인터내셔널 어드바이저 한국법인 대표 △2001~2003년 AIG글로벌 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 △2003~2004년 AIG생명 상무 △2004~2007년 알리안츠생명 신채널菅?부사장 △2007~2013년 알리안츠생명 대표이사 사장 △2013~2014년 에이스생명 대표이사 사장 △2014년 2월~ ING생명 대표이사 사장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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