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전·월세 상한제 도입해야 하나

입력 2015-10-23 18:28  

[ 이현일 기자 ] 주택 전세난이 갈수록 심해지자 정부는 전세난 해소 방안의 하나로 저리의 전세자금 대출 확대를 추진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는 이 정책에 대해 “미봉책에 불과하며 결과적으로 전셋값을 더 밀어올리는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 서민주거복지특별위원회 소속 야당 측 의원들은 전세금 대출 확대 대신 전·월세상한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을 내놓았다. 전·월세상한제 효과를 높이기 위해 세입자 요구에 따라 임대차계약을 한 차례 더 연장하는 계약갱신 청구권을 함께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번주 맞짱토론에선 전·월세상한제 도입 여부에 대한 이언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이용만 한성대 부동산학과 교수의 찬·반 주장을 소개한다. 전·월세상한제를 찬성하는 쪽에선 이 제도가 전·월세시장 안정을 위한 단기 대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미국 독일 프랑스 등의 국가에서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보완책을 잘 마련하면 단기 전셋값 폭등과 같은 부작용도 해소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반대 측에선 이 제도가 단기적으로 전셋값 급등을 초래하고 전세의 월세화를 부추겨 무주택 서민이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장기적으로는 주택 품질을 떨어뜨리고 전·월세난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시장 부작용이 우려되는 규제를 도입하기보다 주택시장의 월세화 현상을 받아들이는 가운데 임대주택 공급 확대 정책을 강화해 전세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찬성 / 美·獨 등 선진국선 이미 도입…2년 임대차 기간도 1~2년 늘려야

“빚내서 집사라”는 정책이 전세난 부채질

고삐 풀린 전셋값이 월세전환 속도를 가속화하고 고리 월세를 양산하는 등 주거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빚내서 집 사고 빚내서 전세금 올려주라’는 이율배반적인 서민 주거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전세가 안정을 외면하고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은 전세가 상승과 전세난을 부채질했다.

전국 평균 전세 실거래가격은 2013년 1월 1억2900만원에서 올해 9월 1억5900만원으로 3000만원이나 올랐고, 서울의 아파트 중위 전세가격은 3억5900만원에 달하는 등 전세가 상승세는 지속되고 있다. 특히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대로 초저물가를 기록함에도 불구하고 전세가 상승률은 실거래가 기준으로 지난 7월 11.9%에서 8월 12.1%, 9월 12.2%로 계속 오르고 있다.

지금은 비상 상황이다. 수도권 거주 맞벌이 부부가 최소생계비만을 제외하고 고스란히 매년 2000만원씩 저축한다고 해도 한 번에 5000만~1억원씩 오르는 전세가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결국 이들은 반전세로 전환하거나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극심한 전세난으로 인해 월세로 전환해 살면서 빚에 허덕이게 되고 경기침체와 저출산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민 주거비 부담을 완화하고 임대차 안정화를 위해서는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를 도입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임대차 안정화의 기본 제도인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를 도입하면 전셋값이 급등하고 임대주택 공급이 축소된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또 1989년 12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임대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연장되면서 4개월간 전세가격이 19.1% 급등한 것을 반대 이유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경제성장률이 10%대를 웃돌았고, 임대기간 연장이 시행되기 전인 1987년부터 1990년까지 4년간 전세가격은 매년 13~17.6%씩 올랐다. 오히려 임대보장기간 연장(계약갱신청구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확대 적용)으로 1990년 16.8%였던 전국 전세가 상승률은 법 개정 다음해인 1991년 1.9%로 낮아지면서 안정됐다. 정부가 사실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또 외국에선 전·월세를 국가가 제한하다가 부작용이 심해 점차 없애는 추세라고 주장하고 있다. 1960년대 말~1970년대에 정착한 서유럽과 미국 대도시의 임대차 안정화제도는 임대차 갱신, 공정임대료, 분쟁조정, 인상률 상한선 체계를 갖추고 있다. 표준임대료나 공정임대료와 같은 임대료 조정제도를 시행하는 나라에서는 모두 인상 상한선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독일은 50% 이상의 임대차 가구가 10년 이상의 장기임대차를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베를린시의 2006~2008년 물가상승률은 4.7%인 반면 임대료 상승률은 1.7%에 그쳤다. 미국 뉴욕시는 2008년 기준 총가구 수가 333만가구로 서울시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그 중 임대차 가구는 67.2%인 215만가구이며 임대료 규제를 받는 임대주택도 66%나 됐다.

경제적 약자들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영역이자 정부의 역할이다. 이런 비상 상황에서도 시장에만 맡겨둔 채 팔짱 끼고 바라만 보고 있을 거라면 정치가, 정부가 왜 필요하겠나. 제재가 필요할 때 방치하고 시장에 맡겨야 할 때 개입한다면 더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것이다. 정부는 대출을 풀어 수요를 인위적으로 확대하는 정책을 중단하고 임대차 안정화 정책의 기본인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제를 도입해 서민 주거안정과 주거비 부담을 완화해줘야 한다.

반대 / 주택시장 월세로 바뀌는 중…가뜩이나 부족한 전세 사라질 수도

가격 규제는 반짝 효과뿐…정책의 도덕적 해이

선한 의도로 시작한 정책이 선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책이 바뀌면 이해관계자들의 행동도 바뀌기 때문에 정책이 애초에 의도한 것과는 다른, 정반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전·월세상한제는 이른바 ‘미친 전셋값’에 힘겨워하는 서민의 주거를 안정시키겠다는 의도에서 시작되겠지만 불행하게도 그 의도는 달성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요즘 전세 물량은 씨가 말랐鳴?한다. 주택 임대인들이 월세시장으로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는 주택 가격이 상승해야 비로소 임대인이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다. 그런데 최근 주택 가격이 안정되면서 전세를 공급할 유인이 없어진 데다, 저금리로 인해 전세금을 받느니 월세를 받는 것이 더 유리하다 보니 전세 물량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이다.

반면 임차인들은 여전히 전세를 선호하고 있다. 저금리가 장기화하면서 대출을 받아서라도 전세로 사는 것이 월세로 사는 것보다 비용 측면에서 싸다 보니 전세를 더 많이 찾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전세시장에서는 공급 부족, 보증부 월세나 완전 월세 시장에서는 공급 과잉이라는 상반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 청구권이 도입되면 결과는 뻔하다. 그렇지 않아도 전세 공급자들이 월세로 돌아서는 가운데 가격 규제까지 더해지면 전세 공급자들의 이탈은 더 빨라져 전세 매물이 급속도로 줄어드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최근 도심에선 전셋값이 집값과 비슷해져 집주인들이 전세금을 올리는 데 한계가 있는 반면 월세는 당장 수익률도 높고 향후 운신의 폭도 넓기 때문이다. 전세 제도가 없는 미국과 독일 등 일부 선진국의 전·월세상한제 도입 사례가 국내 현실과 맞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규제 도입 초기엔 전세로 거주하던 사람들이 규제의 혜택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혜택도 1~2년뿐이다. 계약갱신기간이 끝나면 어쩔 수 없이 전세 대신 보증부 월세나 완전 월세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

전·월세상한제는 장기적으로는 월세 공급까지 축소시킬 수 있다. 임대차 시장이 전세에서 월세로 바뀌는 과정에서 월세가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구조 변화가 이뤄지면 시장 수급에 의해 월세 가격이 올라갈 수도 있다. 이때 전·월세상한제라는 가격 규제가 가해지면 주택을 임대하는 사람들이 서서히 임대주택시장에서 빠져나오면서 장기적으로는 민간임대주택의 공급 자체가 줄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임대료 규제를 ‘좋지 않은 정책’으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존 임차인은 즉각 수혜를 받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는 매력적이겠지만 그에 따른 폐해는 장기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정책의 도덕적 해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임대차 시장이 구조적으로 변화하는 상황에서 전셋값을 안정시키려면 전세 공급자들이 전세시장에 계속 머물도록 인센티브를 주거나 수요자들이 전세 대신 보증부 월세나 자가 보유 쪽으로 가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월세 세입자 세액공제의 대상자와 공제 폭을 확대하고, 자가 구입을 통해 주거 안정을 얻으려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여기에다 준공공임대주택처럼 적절한 인센티브 아래 임대료 상승률에 제한을 가하는 민간임대주택을 많이 공급한다면 장기적인 주거 안정까지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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