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장동력 찾고 M&A전략 짜
어디에 얼마큼 투자할지 결정
핵심정보 쥔 만큼 '보안' 강조
[ 김보라 / 도병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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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외환위기 이전만 해도 국내 기업에 최고재무책임자(CFO)라는 자리는 없었다. 회계팀장이나 재무팀장이 있을 뿐이었다. 명칭만큼이나 이들의 역할도 단순했다. 하루하루 결산을 하거나, 모자라는 자금을 은행에서 빌려와 메우는 게 주된 역할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단순히 ‘곳간지기’로도 불렸다. 전략적 사고나 장기적 전망은 이들에게 없었다. 지금은 아니다. 결산은 기본이다. 주요 전략 수립도 이들의 몫이다. 회계와 세무 등 전통적인 업무는 물론 경영분석과 평가, 컨설팅, 기업설명회(IR)까지 책임진다. 기업 인수합병(M&A)과 사업재편 등 기업의 운명을 바꿔놓는 업무도 CFO가 맡고 있다.
○‘경리’에서 ‘CEO의 오른팔’로
기업 재무팀은 외환위기 이전까지 ‘경리부’ ‘자금부’ ‘관리부’ 등으로 불렸다. 이들은 한국 고도성장기 돈의 흐름을 만들던 주인공이었다. 당시 기업들이 과감한 투자를 하면서 경리들은 매일같이 만기가 돌아오는 어음을 막는 게 주요 임무였다. 대낮에 어음이 잔뜩 든 검은색 007 서류가방을 들고 서울 명동 일대를 누비던 사람들은 십중팔구 대기업 경리였다. 이들은 다른 부서의 투자 예산 비용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역할도 맡았다.
재무팀의 역할은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부채비율이나 재무구조 등이 기업의 주요 화두로 떠오르면서다. 기업 파산을 막기 위해 부채 비율을 낮추는 것도 이들의 임무였다. 외환위기 이후 역할은 ‘기업 구조조정 본부’였다고 할 수 있다. 매일 경영진단을 하면서 자산매각을 추진하고, 재무구조 개선에 나섰다. 당시 재무팀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하루하루 ‘살생부’를 만드는 것 같았다”고 회고하곤 한다.
2000년대 들어서도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다. 분식회계를 막기 위해 회계 시스템 선진화에 주력했다. 신성장 동력을 찾는 업무도 도맡았다. 기초시장 조사와 사업성 분석, M&A 전략 등을 마련하며 ‘최고경영자(CEO)의 오른팔’로 급부상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유증으로 경기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이들의 역할은 더욱 커졌다. 사업재편과 신성장 동력 발굴 등 기업의 미래 먹거리 발굴도 이들의 몫으로 다가왔다. 그러다 보니 CFO 역할은 CEO 못지않게 커지고 있다.
○주 ?업무 다루다 보니 보안이 생명
대기업 재무팀은 통상 자금그룹, 회계그룹, 세무그룹으로 나뉜다. 자금그룹은 자금 입출과 조달 운용 등을 맡는다. 매일 들어오는 돈과 나가는 돈을 점검해 입출금이 차질없도록 하는 게 주요 임무다. 주식이나 채권 등으로 자금을 끌어들이고, 동시에 여유 자금을 굴리는 일도 한다. 외환 관리, 원자재 시황, 세계 증시에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 해외 투자자들과도 수시로 이야기를 나누며 일일 리포트를 작성한다. 자금조달 및 운용에 문제가 생기면 이들이 책임져야 한다.
회계그룹은 국내 계열사, 해외 계열사 등을 연결해 재무제표를 작성하는 역할을 한다. 세무그룹은 수출입에서 발생하는 세무 문제를 예측, 해결하고 신규 투자와 M&A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무 리스크를 책임진다. 이런 역할이 합쳐진 재무팀은 기업의 움직임과 돈의 흐름을 한눈에 보고 있다. 기업의 성장성과 건전성도 가늠할 수 있다. 사업부별 성과도 실시간으로 평가할 수 있다.
회사의 핵심 정보를 쥐고 있기 때문에 대기업 재무팀은 철저한 ‘보안’을 요구받는다. M&A 정보나 계열사 구조조정 등의 정보가 새어나가면 수개월에서 수년을 공들인 프로젝트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어서다. B기업 재무팀 관계자는 “실적이나 M&A 발표를 앞두고는 동료가 화장실을 자주 가는 것까지도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게 된다”며 “몇 달간 다른 부서나 계열사에 근무하고 있는 동기들과 연락하는 것도 차단한 채 은둔하며 살아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김보라/도병욱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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