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노사정 대타협 한 달 넘도록 논의도 안해
입법 전 판결땐 소송대란 '제2의 통상임금 사태'
[ 백승현 기자 ]
대법원이 토·일요일 근무시 휴일근로 수당에 연장근로 수당까지 가산할지에 대한 판결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대법원이 1, 2심과 같이 중복할증(통상임금의 200% 지급) 판결을 내리면 기업들에 12조원 이상의 비용 부담을 안기고 ‘수당 추가지급’ 줄소송이 예상되는 등 상당한 혼란이 우려된다. 노·사·정이 기업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근로시간 단축을 적용하기로 합의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국회는 관련법을 정비하는 데 손을 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회 입법 전에 대법원 판결이 먼저 나오면 산업 현장에서는 통상임금 때와 같은 혼란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25일 “대법원에서 최근 근로시간 단축 판결을 위한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안다”며 “성남시 환경미화원들이 제기한 소송의 고등법원 판결이 3년 전에 났으니 더 미룰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쟁점은 현재 휴일근로 수당(통상임금의 50% 가산)을 주는 토·일요일 근무에 대해 연장근로 수당(50% 가산)까지 줘야 하는지 여부다. 해당 사건 1, 2심은 물론 유사 소송 대부분의 하급심이 “휴일근로 수당에 연장근로 수당(50% 가산)을 합해 통상임금의 200%를 지급하라”고 판결한 상태여서 대법원도 같은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현재 기업들은 고용부의 행정해석을 근거로 통상임금을 100%로 봤을 때 연장근로에 대해 50% 가산하고 휴일근로에 대해서도 50%를 가산해 각각 150%를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이 ‘휴일근로는 연장근로이기도 하다’고 판결하면 기업들은 휴일근로에 대해 통상임금의 200%(통상 100%+연장 50%+휴일 50%)를 지급해야 한다.
이 경우 임금상승분과 인력 채용에 따른 추가 인건비 등으로 기업들은 12조3000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는 게 한국경제연구원의 분석이다. 한경연은 특히 12조3000억원 중 중소기업(300인 미만)이 부담해야 할 비용만 8조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대법원은 판결 이후 잇따를 소송과 기업의 인건비 폭증 등 현장 혼란을 우려해 3년간 판결을 미뤄왔다. 판결 전에 국회에서 관련법을 정비할 시간을 준다는 취지에서였다. 고법 판결 이후 입법을 위한 노동계와 경영계의 논의도 진행됐다. 지난해 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내 노사정소위원회에서는 현행 주당 68시간(기본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휴일근로 16시간)인 최대근로시간을 52시간(기본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줄이는 데 의견접근을 이뤘다.
지난달 15일 노·사·정 대타협에서는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하되, 법 개정 후 1년이 경과한 시점부터 기업규모를 기준으로 1년씩 4단계에 걸쳐 시행한다’고 합의했다. 노·사·정이 단계적 실시로 뜻을 모아 국회에 입법을 의뢰한 것이다.
하지만 ‘공’을 넘겨받은 국회는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한 법 정비는 뒷짐 진 채 역사교과서 등 정쟁에 매달리고 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대타협 직후 각각 당 내에 노동개혁 특위를 설치했지만, 정작 여야 간의 본격적인 논의는 시작도 못했다. 정치 이슈에 묻혀 연내 노동개혁 입법은 이미 물 건너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노동계 관계자는 “정치권에서는 내년 총선 때까지 노동 이슈를 끌고갈 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여야 간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11월 초 법안이 국회에 자동상정되더라도 입법에 속도를 내지는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