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정상기업 사업재편 못 돕는 '원샷법'은 속 빈 강정

입력 2015-10-25 18:27  

시급한 기업 구조조정

기활법은 '공급과잉 업종' 부실기업 정리에 초점
정상기업의 M&A, 선제적 사업재편 지원 못해
한발 앞선 일본 산업경쟁력강화법 효과 주목해야

최준선 <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정상적으로 잘나가고 있는 기업들도 선제적 구조조정에 돌입하고 있다. 세계 경제상황이 그만큼 녹록지 않다. GE, 듀폰, 다우케미컬, 히타치 등이 그렇다. 이들 기업은 선택과 집중을 위해 세계 1위 사업도 팔았고 업종전환도 꾀하고 있다. 인수합병(M&A)도 활발하다. 지난 5년간 구글은 154건, IBM은 50여건, 일본 소프트뱅크는 40여건의 M&A를 성사시켰다.

한국은 선제적 구조조정(사업재편)과 M&A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비슷한 입법례가 없는 까다로운 주주총회의 특별결의 요건, 반대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 공정거래법상 경제력 집중 억제 정책 등이 큰 장애요인이다.

경영진의 외형에 대한 집착과 무감각, 가족 간 경영권 분쟁, 합병과 분할에 대한 경험 부족, 사업재편에 반대급부를 노리는 노동계도 걸림돌이다. 그러니 회사가 어려워질 대로 어려워진 뒤에야 어쩔 수 없이 사업재편에 나선다. 지난해 8월부터 1년간 대주주가 바?상장사 40곳의 M&A를 전수조사한 결과 경영권 프리미엄 가격이 평균 12.2%에 불과하고 주가 대비 할인율은 75.4%나 됐다고 한다. 몸값을 더 받으려고 버티다 결국 다른 계열사까지 동반 부실에 빠진 채 헐값으로 매각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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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의 수익성은 날로 악화하고 있다. 현재는 미세조정만으로 급변하는 산업 환경에 대처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진단이다. 선제적 구조조정이 필요한 때다. 언제든 부도날 기업이 170여개에 달한다는 보고다.

정상기업 사업재편 절실

정부가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기활법·일명 원샷법)’ 제정에 속도를 낸다고 한다. 그러나 기활법에 기대할 것은 없는 것 같다. 미국의 GE, 듀폰, 다우케미컬, 일본의 히타치, 신일철(新日鐵), 소니, 오카모토유리, 세가 등이 한 것 같은 선제적 구조조정에는 도무지 쓸모없는 법안이라는 점에서다. 기활법은 적용 대상이 ‘과잉공급의 해소를 통해 생산성을 향상하기 위해 합병 등 조직개편과 병행해 사업혁신을 꾀하는 국내기업’(과잉공급 업종)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이 법의 적용을 받게 되는 업종은 사실상 정부가 해당 업종을 과잉공급 분야라고 낙인찍는 부정적 영향만 우려된다. 사업재편보다는 부실기업 정리에만 소용되는 법률이 될 것 같다.

기업체질 개선에 상당한 성과를 봤다는 일본의 2014년 ‘산업경쟁력강화법’은 △사업재편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경우 △첨단설비투자를 촉진하는 경우 △벤처기업에 적용된다. 기활법은 일본이 부실기업뿐 아니라 정상기업에도 폭넓은 세제 및 규제완화 혜택을 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과는 딴판이다. 이 법안의 골자인 규제완화 폭 또한 형식적 절차를 간소화한 수준이어서 얼마나 도움이 될지 알 수 없다. ‘속 빈 강정’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이 법률이 정상기업에도 적용되면 상법 등의 규정은 사문화(死文化)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그러나 이 법률은 위기돌파용 한시법(限時法)이다. 지금 경제상황이 어려워 어느 정도 회복될 때까지 법률 발효일로부터 5년간만 시행되도록 만든 법이기 때문에 그 기간이 지나면 다시 상법 등이 적용된다. 5년 내 집중적으로 효과를 봐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좀 더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 또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상의 부실징후기업은 이 법률의 적용에서 제외되는데, 법안 스스로 한계를 설정한 것은 답답한 모습이다. 부실징후기업에 대해서도 당연히 이 법률의 서비스를 받을 필요가 있다.

세제지원 등은 근거규정뿐

일본은 세법상 지원도 막강하다. 등록면허세 경감, 자산평가손의 손실처리 허용으로 법인세 경감, 사업재편 투자를 위한 준비금에 과세 이연조치 등을 취하고 있다. 한국은 근거규정만 두고 있어 어느 세월에 가시적인 조치가 나올지 알 수 없다. 구체적인 지원책, 예컨대 사업재편에 따른 등록면허세 감면, 적격합병·분할 요건 및 사후관리 합리화, 중복자산·주식양도차익에 대한 과세이연 등이 포함돼야 한다. 특히 분할의 경우에는 근래에 과세당국이 ‘적격분할’ 기준을 대폭 강화해 적격분할로 인정받지 못하면 세금폭탄에 노출된다.

기업 합병이나 영업양수도, 기업분할의 경우 이에 반대하는 소액주주는 회사에 주식매수를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지배구조 재편에 조(兆)단위 자금이 들기도 하는데, 2007년 LG그룹이 통신계열사를 합병하는 데 1조원, 2008년 KB금융그룹이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데 2조4200억원이 들었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이 주식매수청구권 때문에 무산됐으며, 2012년 롯데케미칼·KP케미칼, 2014년 삼성엔지니어링·삼성중공업 협의처럼 결과적으로 합병을 통한 사업재편이 무산됐다. 이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의 합병에서도 이것이 문제가 됐다.

미국은 38개주가 상장법인에 주식매수청구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의 경우 주주들이 2000명 이상인 상장회사의 주주는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상장회사는 장내에서 언제든지 자유롭게 주식을 매각할 수 있기 때문에 회사에 대해 매수를 청구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기활법은 소규모 분할, 역삼각합병과 역삼각분할합병제도를 도입한다. 역삼각합병은 모회사의 주식을 지급하며 자회사가 피인수회사에 흡수되고, 피인수회사의 주식을 모회사가 취득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비슷한 제도인 삼각주식교환, 삼각분할합병 등은 여전히 인정하지 않는다. 또 발행주식총수의 100분의 10 이내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에 해당하는 주식을 소유한 주주가 반대하면 소규모 합병 등을 할 수 없도록 했는데, 지분율이 10%에 가까운 기관투자가 한두 곳만 반대해도 소규모 합병이 불가능하다. 제도개선을 했다고 하기에도 민망하다.

反기업정서도 문제

제도보다 중요한 것은 기업의 사업재편에 대한 위정자의 의지일 것이다. 지금처럼 방치하는 태도나 ‘재벌특혜법’으로 폄하하는 반(反)기업정서가 문제다. 기활법은 정상기업에는 적용되지도 않게 설계돼 있으므로 ‘재벌특혜법’이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일본에서도 1999년 ‘산업활력재생특별조치법’ 도입을 시작으로 2009년 ‘산업활력법’, 2014년엔 ‘산업경쟁력강화법’으로 확대 개편했지만, 이들 법률이 재벌특혜법이라는 비판은 없었다. 실제 50% 이상의 중소기업이 이 제도를 이용했다. 승인절차의 지연도 문제다. 목마르게 기다리는 금융, 세제 지원 및 경영상의 부담 완화는 이 법률을 통해 얼마나 달성할 것인가. 아직도 위기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최준선 <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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