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총선 보수당 압승으로 '국민의 개혁의지' 확인한 캐머런
고강도 추가 긴축안 본격 추진
작은정부·적은복지·낮은세금…파업요건 강화한 노동개혁도 나서
[ 박종서 기자 ]
“어쩌면 좋아.”
지난 5월8일. 영국의 대표적 여론조사회사 가운데 하나인 ICM의 마틴 분 대표는 영국 총선거가 끝나자 트위터에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총선을 앞두고 진행한 여론조사가 완전히 틀렸기 때문이다. 여론조사에서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보수당 정부와 에드 밀리밴드 대표의 노동당이 초박빙 승부를 벌일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결과는 보수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보수당은 650개 의석 가운데 331석을 차지해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노동당은 232석을 얻었을 뿐이다. ICM뿐만 아니라 오피니움 유거브 등 내로라하는 여론조사회사들이 모두 ‘쓴맛’을 봤다. 영국 여론조사위원회는 여론조사 결과가 모두 빗나가자 원인을 밝혀내겠다며 조사를 착수하기에 이른다.
英 보수당, 의외의 ‘압도적 승리’
보수당의 승리는 琉매?의외였다. 2010년 집권한 캐머런 정부는 매정하리 만큼 철저하게 재정 긴축정책을 펼쳤다. 대학등록금 상한제를 없애 등록금이 최대 세 배까지 오를 수 있도록 허용했고 국민 생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건강보험(NHS) 예산을 대폭 줄였다. 학교 지원금도 예외 없이 깎았다.
학생과 교사들은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다. 정부에 대한 반감이 크게 높아졌다. 공무원도 9만명을 줄였다. 노조는 총파업까지 나설 기세였다. 2013년 보수당 지지율은 노동당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뒤졌다. 긴축에 지친 유권자들이 캐머런 정부에 표를 몰아주리라는 예상은 찾아볼 수 없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어느 정당도 과반 의석을 갖지 못하는 ‘헝 의회’가 예상된다며 향후 시나리오를 복잡한 순서도와 함께 다루기까지 했다.
하지만 보수당은 끝내 승리했다. 개혁은 고통스러웠지만 희망의 실마리를 던져준 캐머런 정부를 믿어야 한다는 심중(心中)의 목소리가 힘을 발휘하면서다. ‘번 돈만큼 쓰자. 많이 쓰고 싶으면 많이 벌자’는 캐머런의 상식에 공감하는 국민이 많았다는 얘기다.
캐머런 2기 정부의 ‘주마가편’
국민의 뜻을 확인한 캐머런 2기 정부는 더욱 개혁의 고삐를 죄고 있다.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한다는 ‘주마가편(走馬加鞭)’이다. 영국 정부는 4년간 120억파운드(약 20조8000억원)의 복지 비용을 줄이는 예산 개혁안을 내놨다. 근로연령층 가구당 연간 복지혜택 한도를 2만6000파운드에서 런던 지역은 2만3000파운드, 런던 이외 지역은 2만파운드로 낮추기로 했다. 저소득층 가정 출신 학생에게 주던 지원금은 대출로 바뀐다.
캐머런 총리는 정부부터 지출 감소에 앞장서기로 했다. 임기 안에 10만명의 공무원을 추가로 감 축한다는 계획이다. 10만명은 영국 일반직 공무원 43만9000명(지방자치단체 비정규직 등 제외)의 20%가 넘는 규모다. 총리와 장관 봉급은 2020년까지 동결된다.
캐머런 정부는 2019회계연도까지 정부 지출을 200억파운드 삭감한다는 목표 아래 부처별로 25% 또는 40%에 달하는 예산 삭감안을 마련 중이다. 구체적인 예산 절감 방안은 다음달 25일 최종 발표된다.
강도 높은 긴축정책이 펼쳐지지만 세금 부담은 감소한다. 개혁안에 따르면 법인세율은 현재 20%에서 2020년까지 18%로 떨어진다. 캐머런 정부는 세율 인하와 규제 완화를 통해 영국 기업들의 부담을 해마다 8억5000만파운드씩 줄여주겠다고 약속했다.
국민들의 소득 증대도 캐머런 정부의 핵심 목표다. 캐머런 총리는 기존 최저임금제도를 대체하는 생활임금제도를 내년 4월 도입한다. 생활임금은 25세 이상 근로자에게 적용되며 처음에는 시간당 7.7파운드로 시작하지만 2020년에는 9파운드로 오른다. 최저임금(시간당 6.7파운드)보다 임금 수준이 높고 연간 인상폭도 크다.
복지 혜택을 줄이는 대신 기업 활동을 촉진해 경제를 키우고 국민 스스로 소득 향상에 나서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 ‘정통 우파’를 표방하는 보수당 정부 개혁안의 핵심이다.
대처 총리 이후 가장 강력한 노동개혁
캐머런 정부는 최근 마거릿 대처 전 총리 이후 30년 만에 가장 강력하다고 평가받는 ‘노동조합법안’ 개정안을 내놨다. 새로운 노조법은 합법 파업의 기준을 대폭 강화한다. 유권자의 50%가 투표에 참여해야 하고 찬성 투표 수가 40%를 넘어야 한다. 파업 투표의 유효기간을 4개월로 한정하고 노조가 파업에 들어갈 때 대체인력 투입이 가능해진다.
영국 정부는 노조 활동을 크게 위축시킬 수 있다는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친기업 환경을 조성, 일자리 창출을 촉발하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로 판단하고 있다. 캐머런 총리는 “노사 균형을 맞추고 안정적인 기업경영 환경을 조성하겠다”며 개정 강행 의사를 밝혔다.
외신들은 “지난 4월 소비자물가가 0.1% 떨어져 1996년 이후 최저를 기록했고 지난 8월에도 상승률이 0%대로 나타나 영국 경제가 완전히 정상화했다고는 볼 수 없다”면서도 “노동개혁과 긴축 재정 등 일련의 각종 개혁 조치들이 성공을 거두면 영국 경제 발전의 토대가 더욱 단단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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