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지은 기자 ] 한 반도체회사 생산공장에서 일하는 박모씨(27)는 명절 때마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병 걸린 사람이 많다는데 괜찮으냐. 회사를 빨리 옮기라”는 얘기를 부모님에게서 듣는다. 박씨는 “아무래도 오래 다니기 힘들 것 같다. 20~30대의 생산직 상당수는 이런 고민을 안고 산다”고 말했다. 결혼을 앞두고 상견례에서 “자식을 낳을 때 문제가 있을까 걱정된다”는 말을 들고 울음을 터뜨린 여직원도 있을 정도란다.
반도체 업계에선 반도체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돼 걱정이 많다고 토로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서로 유치하려는 반도체 공장이 국내에선 푸대접을 받는다”며 “반도체산업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인력 확보는 물론 공장 건설도 어렵다”고 말했다.
부정적 인식은 반도체 직업병 논란과 연관이 깊다. 이 문제는 2007년 3월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황유미 씨(당시 23세)가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하며 불거졌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공장과 백혈병의 상관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2007년 안전보건공단, 2009년 서울대 산학협력단, 2010년 미국 안전보건기관인 인바이론사의 조사에서 공장 환경과 백혈병의 상관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씨 유가족은 시민단체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과 함께 시위를 시작했고, 작년 2월엔 황씨 이야기를 다룬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되면서 악의적 소문이 인터넷 등을 통해 더 빠르게 퍼졌다. 삼성전자는 인도적 차원에서 1000억원을 출연해 발병한 직원과 가족에게 보상금을 주고 있다. 하지만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이런 논란 탓인지 최근 몇 년간 반도체 업계에는 젊은 인력이 크게 줄었다.
반도체산업이 위험하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 2008년 안전보건공단의 역학조사를 비롯해 여러 차례 조사가 실시됐지만 반도체 공장과 질병의 연관성이 발견된 적은 없었다. 미국, 영국, 대만에서도 반도체 직업병 논란이 있었지만 통계적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물론 반도체 공정에선 다양한 화학물질이 사용된다. 인체에 유해한 물질도 있다. 하지만 정밀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공정인 만큼 화학물질을 안전하게 처리하는 장비를 갖추고 있다. 시설이 첨단화되기 전에는 직업병 유발 요인이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지금은 다르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삼성전자는 화학물질 사고예방 전담 조직을, SK하이닉스는 최고경영자(CEO) 직속 특별안전 점검단을 운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과학적 근거도 없는 무분별한 의혹을 확산시켜 반도체산업을 위축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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