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도 땜질식 구조조정 아닌
기업 스스로의 사업재편 유도해야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insill723@sogang.ac.kr >
여러 직장을 옮겨다니다 대학교수가 된 지 올해로 10년째다. 이력이 날 만도 한데 아직도 심적으로 크게 부담되는 것은 취업전쟁을 앞둔 학생들을 상대로 진로나 인생 상담을 하는 일이다. 정부의 다양한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청년들에게 괜찮은 일자리를 제공해줄 만한 경제 성장세는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달 초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5월 전망치보다 0.4%포인트 낮춘 2.7%로 또다시 하향 조정했다. 점잖게 보고서로 이야기해서 그렇지 한국 경제에 대해 심각하게 경고한 것이다.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해졌지만 정부는 올해를 ‘경제활성화의 골든타임’으로 설정하고, 정책목표의 최우선 순위에 ‘경제 살리기’를 올렸다. 지난 27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도 ‘경제’였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더 절망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번 3분기 경제성장률은 1.2%로 2010년 2분기의 1.7% 이후 최고치라고 하지만 오랜 내수경기 침체로 질식 상태에 있는 골목상권을 살리기엔 역부족이란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대기업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대기업 경영정보를 수집하는 재벌닷컴이라는 곳에서는 국내 30대 그룹 계열사 5곳 중 1곳이 ‘좀비기업’이라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내놓았다. 기업 부실에 대한 충격적인 결과는 지난 6월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도 이미 나와 있다. 영업을 해 벌어들인 수익으로 이자도 내지 못하는 이자보상배율 1 미만인 한계기업 비중이 2009년 12.8%(2698개)에서 2014년 15.2%(3295개)로 커졌다고 한다. 최근 부실 문제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조선업은 이 비율이 18.2%(2014년)나 된다.
더 이상 두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도 수출 둔화와 내수 침체로 곪아왔던 부실기업 구조조정 문제를 대놓고 이야기하고 있다. 국회에 계류 중인 ‘기업 구조조정 촉진법(기촉법) 상시화 법안’과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원샷법)’을 조속히 처리해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2001년부터 네 차례 한시법으로 제정·시행된 기촉법의 상시화나 선제적 인수합병(M&A) 등을 통한 사업재편 후 세제·금융·법률 지원을 하는 원샷법이나 갈 길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업황이 장기간 저조한 가운데 실적 부진에 허덕이는 기업을 정리하고 우량 기업 중심으로 시장을 재편하는 것은 전체적인 산업 발전을 위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이번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되는 기업의 대부분이 국가 기간산업 업종인 조선·해운, 철강, 화학·에너지 업체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 주도의 땜질식 한계기업 처리 방식으로 기업 구 뗍뗍ㅐ?추진한다고 하니 의구심이 깊어지는 것이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6월 기업 구조조정 전문회사를 통한 민간 주도 기업 구조조정에 정책의 초점을 맞춰 구조조정 전문회사 설립을 추진하다가 없던 일로 한 것이 그 한 예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 자명한 상황에서 사업구조를 재편하고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일은 정부의 걱정에 앞서 기업들에는 생존이 걸린 문제다. 이미 유화업계 등 일부 산업은 자발적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기업들의 부실화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 상황이 심상치 않은 데다 내년 4월 총선과 맞물려 있어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은 한계가 있다. 차라리 좀 돌아가더라도 기업들이 자신감을 갖고 스스로 구조조정을 하게끔 시장에 신호를 보내 시장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학생상담을 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우선 학생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은 후에 그 학생의 장점을 찾아내는 일이다. 그렇게 하면 상담받은 학생이 용기를 내 어려운 취업문을 뚫는 데 성공하기도 한다. 마찬가지 이치로 기업이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자신감을 갖고 스스로 구조조정을 추진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래야 한국 경제의 미래가 열린다.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insill723@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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