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성 기준은 높이되 행정절차는 간소화 필요
제품에 안전문제 발생 땐 유럽처럼 '신속경고' 도입을
[ 안재광 기자 ]
유아용품 제조업체 동인기연은 미국에서 유아용 카시트에 대해 안전시험을 받고 있다. 미국 수출을 계획 중이기 때문이다. 51개 항목에 대한 깐깐한 시험을 대부분 통과한 상태다. 한국에 없는 시험 항목도 여러 개 받았다. 지난 2년여간 시험 비용으로만 2억원 가까이 썼다.
시험을 받지 않고도 제품을 팔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면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사후 규제’가 강해서다. 미국에서 시험 인증을 받으면 제품 신뢰도가 올라가는 것도 고려했다. 이 회사 양성모 상무는 “강력한 안전기준을 충족하는 게 당장은 부담이지만 제품을 검증한다는 면에서 사업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자발적 리콜하면 낙인 찍혀”
어린이 제품 안전관리 현황을 논의하는 좌담회가 지난 28일 서울 삼성동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회의실에서 열렸다. 지난 6월 ‘어린이제품 안전특별법’ 시행으로 강화된 안전 誰蔓?기업에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 소비자의 안전의식 수준이 높아졌는지 등을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좌담회는 국가기술표준원이 주최하고 한국경제신문사가 후원했다. 오춘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의 사회로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제대식 국가기술표준원장은 “어린이 제품 안전관리를 과거에는 일반 공산품으로 분류해 놓고 일부만 했는데 특별법 시행으로 만 13세 이하 어린이가 쓰는 모든 제품으로 확대했다”며 “새로운 형태의 제품이 계속 출시되는 것을 감안해 사후에 문제 발생 시 리콜 등의 조치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업계 대표로 나온 양 상무는 “국내에선 기업이 양심적으로 자발적 리콜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리콜하는 순간 ‘저 회사는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낙인이 찍히기 때문이다. 손해를 감수하고 기업이 자발적 리콜을 하려면 소비자들 인식도 그만큼 올라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황선옥 소비자시민모임 부회장은 “어린이 제품을 구매하는 부모들에 대한 안전교육부터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품을 고를 때 안전한 제품인지 식별하는 방법이나 사용 시 주의사항 표기 등을 기업에만 부담시킬 게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제 원장은 “유치원이나 주부 모임 등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을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허경옥 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교수는 “안전성 기준은 높이더라도 기업이 처리해야 하는 행정적 절차를 완화하는 등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력한 사후규제 마련해야”
허 교수는 “유럽연합(EU)은 안전 문제가 발생하면 EU 회원국에 즉각 알리는 신속경고 시스템(RAPEX)이란 제도가 있다”며 “어린이 제품에 한해서라도 중국 등 인접국이나 EU와 신속히 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갑홍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장은 “일부 비양심적 수입 유통업자들은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제품을 잔뜩 팔아 이득을 남기고 부도를 내는 경우도 있다”며 “어린이 제품 안전기준을 강화해 저가 불량 수입품을 시장에서 퇴출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제 원장은 “아직 사전 규제 위주로 제도가 운영되고 있지만 앞으로는 소비자가 자유롭게 제품을 선택할 수 있게 해주고 안전문제가 발생하면 강력하게 제재하는 사후 규제 쪽으로 정책 방향이 옮겨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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