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 180개 브랜드를 65개로…'포트폴리오 구조조정 시대'

입력 2015-10-30 20:34  

이상은 기자의 글로벌 insight


[ 이상은 기자 ] 미국 가정의 95%는 프록터&갬블(P&G) 상품을 쓴다. 안 쓸 수가 없다. 팬틴(샴푸) 타이드(세제) 페브리즈(섬유 탈취제) 오랄비(칫솔) 질레트(면도기) 팸퍼스(기저귀) 등 온갖 종류의 생활용품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상반기까지 보유 브랜드 수는 180여개에 이르렀다.

이 회사는 지난 7월 웰라와 클레어롤 등 43개 뷰티 관련 브랜드를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P&G 직원 출신이 경영하는 화장품 회사 코티가 130억달러(약 14조8000억원)에 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00년대 100억달러를 주고 웰라와 클레어롤을 사들이며 P&G의 성장을 주도했던 앨런 래플리 최고경영자(CEO)가 구조조정 해결사로 돌아와 자기가 산 회사를 도로 팔아치운 것이라고 전했다.

2000~2009년 P&G CEO로 일한 래플리는 금융위기 때 자신이 선택한 후계자 로버트 맥도널드에게 회사를 넘기고 떠났다가 실적이 나빠지자 2013년 복귀했다. 지난해 8월 100개 브랜드를 정리하겠다고 발표했다. 웰라는 코티에, 듀라셀 배터리는 벅셔해서웨이에, 비누 洹5葯湧?유니레버에 팔았다. 장기적으로 65개 브랜드만 남기겠다고 그는 밝혔다. 파는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안 돼서다. P&G는 최종적으로 남길 65개 브랜드만으로도 이익의 95%를 유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세계 1위 소비재기업 P&G뿐 아니라 세계 각국 기업들이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에 온 힘을 쏟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호황기에는 보이지 않았던 ‘비즈니스의 속살’이 드러나는 중이다.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이 “물이 빠져나간 다음에야 누가 옷을 안 입고 수영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한 대로다.

일찌감치 구조조정에 나섰던 기업들은 침체에서 더 빠르게 벗어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12년 7000억엔(약 6조6000억원)에 이르는 손실을 봤던 일본 파나소닉은 쓰가 가즈히로 사장을 영입해 TV 등 대표사업들을 과감히 정리했다.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 사업을 손실 처리하고 중국 공장은 생산을 중단했다. 대신 기업용 솔루션 등 기업간 거래(B2B) 사업을 강화해서 2013년 흑자전환했고, 올 상반기엔 1113억엔(1조480억원)까지 흑자폭을 늘렸다. 전년 동기보다 38% 증가했다.

PC 사업을 2012년 매각하고 TV 등 부진한 부문의 지출을 대폭 줄인 일본 소니는 올 상반기 1159억엔(약 1조1000억원) 순이익을 냈다. 5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엔화 약세 덕도 있지만 발빠른 구조조정이 없었다면 그 덕을 보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외신에선 연일 회사를 사고파는 소식이 쏟아진다. HP는 회사를 둘로 쪼개고 있다. 수익이 덜 나는 부문은 장기적으로 축소하거나 매각하겠다는 구상이다. 맥주회사 안호이저부시(AB)인베브가 사브밀러와 합치기로 약속했고, 제약 1등 화이자는 보톡스회사 엘러간을 사려고 타진 중이다. 못하는 사업에선 발을 빼고, 잘하는 사업은 다른 회사의 사업부를 사들여 키우는 ‘선택과 집중’ 전략들이다.

국내에서도 삼성그룹이 비주력 부문인 화학 계열사 일부를 한화그룹에 팔았고, 일부는 롯데그룹에 매각하기로 했다. 그러나 삼성을 제외하면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한계에 몰려 채권단이 개입하는 시점이 돼야 억지로 사업을 팔거나 축소하는 일이 많다. 등 떠밀릴 때까지 구조조정을 미루면서 자유로이 합종연횡하는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긴 어려울 것이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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