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주부 스파이

입력 2015-11-01 18:03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스파이라 하면 드라마틱한 걸 연상하고, 첩보원 하면 액션 스릴러물을 떠올린다. 첩자나 간첩이라는 말에는 간교한 이미지가 겹쳐진다. 모두가 음지에서 움직이는 그림자 인생이다. 그러나 이들이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꾸기도 한다.

여성 스파이의 대명사로 마타하리를 꼽지만, 미녀 스파이는 옛날부터 있었다. 중국 병가(兵家)를 집대성한 ‘36계’의 패전계(敗戰計)에서도 승산 없는 상황에선 미인계를 제일로 친다. ‘허니 트랩(honey trap)’이라는 말마따나 ‘달콤한 꿀 속의 함정’이 곧 미인계다.

미녀 스파이는 지성과 사교술까지 겸비했다. 영화 ‘색계(色戒)’의 실제 모델인 중국의 정핑루(鄭平如)도 뛰어난 미모에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상하이 사교계의 꽃이었다. 그녀는 친일파 정보기관 최고책임자에게 접근해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았지만 번번이 실패한 끝에 결국 총살됐다.

일본 최고 미녀 스파이라는 가와시마 요시코는 청나라 왕족 출신으로 일본 경찰국장의 양녀가 돼 만주국 건국에 공을 세웠지만 중국에서 체포돼 처형됐다. 옛 소련 여성 스파이 루스 쿠친스키는 ‘소냐’라는 암호명으로 더 유명했다.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영국에서 ‘붉은 오케스트라’라는 유럽 조직을 관리한 그녀는 정략결혼한 세 번째 남편과 아이 둘을 낳고 살면서 은밀하게 활약했다. 평범한 외모 덕분에 감시망을 피해 동독으로 탈출하기도 했다.

‘한국의 마타하리’로 불린 김수임은 미8군사령부 헌병감, 북한 초대 외무성 부상과 삼각관계를 유지하다 처형됐다. 2010년 미국 FBI에 체포돼 추방당한 러시아 스파이 안나 채프먼은 ‘본드걸보다 더 매력적인 여성’으로 불렸다. 체포 당시 28세 사업가였던 그녀는 남다른 미모에 러시아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구사했다. 스파이의 직업이나 활동 분야는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 각국 정보기관들이 여성 요원을 공개적으로 모집하고 있다. 영화 007시리즈로 유명한 영국 정보기관 MI6는 얼마 전 취업사이트에 주부 스파이 모집 공고를 냈다. 자격요건은 ‘다양한 대인관계와 폭넓은 경험’. 정직원으로 정년은 따로 없고 급여도 적지 않다.

미국과 캐나다 정보기관들도 여성을 내세운 홍보영상 제작에 나섰다. 앞으로 영화에 ‘본드 걸’ 대신 ‘본드 아줌마’가 나올 법도 하다. 인적 네트워크나 정보력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한국 아줌마들은 언제쯤 등장할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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