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는 스퀘어에닉스의 개발진이 직접 참여한 '파이널 판타지 시공의 수정'(이하 FF시공의 수정), 또 다른 하나는 구미의 자회사 에이림이 개발하는 '파이널 판타지 브레이브 엑스비어스'(이하 FF엑스비어스)였다. 3D게임이 난무하는 한국 마켓에서 보면 어딘가 오래된 게임처럼 느껴지는 두 게임이었지만 파이널 판타지의 IP인 만큼 기대가 컸다.
'라이브 어 라이브'로 유명한 토키타 타카시 프로듀서가 담당하여 화제를 모은 'FF시공의 수정' |
네이티브 게임으로서는 처음으로 외부 회사가 개발하는 FF로 발표되어 관심을 모은 'FF엑스비어스' |
특히 'FF엑스비어스'는 '브레이브 프론티어'의 개발진이 직접 개발하는 사실상의 후속작이기에 더 큰 관심을 모았다. 2013년 7월 일본에서 처음 론칭하여 슈퍼패미컴 시절의 파이널 판타지에서 보았던 장인 수준의 2D 그래픽과 함께 모바일 플랫폼에 최적화된 게임 시스템을 선보였고, 글로벌 1000만 다운로드를 돌파하는 빅 히트를 기록하며 현재까지도 그 인기를 지속하고 있다. 클래식 파이널 판타지를 떠올리게 하는 그래픽은 동, 서양의 취향이 크게 갈리지 않는 탓인지, 일본 모바일게임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서양권에서도 큰 인기를 모은 바 있다.
'브레이브 프론티어'는 필자와도 인연이 깊은 게임이다. 필자가 작년 구미코리아에 재직하면서 담당했던 프로젝트가 바로 '브레이브 프론티어'였기 때문이다. 필자로서는 처음 담당하는 로컬라이징 프로젝트라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잘 다듬어져 있는 게임 시스템과 운영 노하우에서 신규 개발 프로젝트보다도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힘든 개발과정 속에서도 팀원들이 스스로 플레이할 만큼 '브레이브 프론티어'는 잘 링榕沮?게임이었다. 업데이트 때 운영팀과 나눈 대화를 A4 수십장 분량으로 정리해서 게시판에 올리던 유저를 비롯하여, 브레이브 프론티어를 즐기는 애정 깊은 유저들이 기억에 남는다.
2013년 혜성같이 등장하여 인기 게임의 반열에 오른 '브레이브 프론티어' |
론칭 후 1주일 간 성적(일본 애플 앱스토어, 앱애니) |
■ 파이널 판타지의 깊이를 더한 전투 시스템
'FF엑스비어스'의 전투화면은 상단 전투신, 하단 캐릭터 6명의 커맨드 구성으로 기본적인 플레이 감각은 '브레이브 프론티어'와 거의 동일해 보인다. 6명의 캐릭터 정보를 터치해서 적을 공격하는 기본 조작과 공격이 동시에 적중할 때 발생하는 스파크로 대미지가 증가하는 시스템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같은 속성의 공격이 동시에 공격하면 추가대미지가 적용되는 '엘리먼트 체인' 시스템이 추가되어 공격 타이밍을 재는 것이 조금 복잡해졌을 뿐이다.
하지만 스킬을 사용하는 시점에서 달라진 점을 찾을 수 있다. '브레이브 프론티어'에서는 그저 브레이브 버스트(일종의 필살기) 게이지가 가득 차면 슬라이드 조작으로 간단히 필살기를 발동했던 것과 달리 'FF엑스비어스' 에서는 보통의 상황에서도 슬라이드 조작의 방향에 따라 일반공격, 방어, 아이템, 스킬의 4가지 커맨드를 선택하게 된다. 또한 스킬을 선택하면 한 페이지를 넘길 만큼의 스킬이 표시되고 그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하며, 회복스킬의 경우에는 스킬선택 후에 대상자가 누구인지 한 번 더 선택해줘야 한다. 6명을 한 번씩 건드려주기만 하면 조합에 따라 다양한 전략이 나오던 전작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커맨드와 스킬 선택으로 많을 때는 10회 이상의 슬라이드와 터치를 해 주어야 할 때도 있다. |
이쯤 되면 오토전투 버튼이 없을까 찾게 되는데, 물론 아래에 준비되어 있다. 하지만 오토 메뉴는 평타만 쳐 줄 뿐이다. 전작의 오토 전투가 필살기까지 자동으로 발동시켜 줬던 것을 생각하면 조금 의아한 점이다. 그 외에도 방금 전 턴에 했던 행동을 그대로 반복하는 REPEAT 버튼과 지금까지의 커맨드 선택을 초기화하는 RESET버튼이 있다. MP개념도 추가되어 스킬을 사용할 때도 잔여MP에 대한 고려가 필요해졌다. 많이 복잡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비슷한 복잡도의 RPG를 개발했던 필자의 시각에서는 '왜 자동전투 때 상황에 맞게 필살기를 발동시키지 않았을까?' REPEAT 와 RESET 버튼이 전략적으로 큰 의미가 있을까?' '어떻게든 2터치 이하로 줄여야 하지 않았을까?' 등의 의문이 들었다. 매 턴마다의 선택지가 많다면 좀 더 깊은 전투의 재미를 느낄 수는 있지만 반복 플레이의 피로도가 증가한다. 반면 게임을 심플하게 하려면 많은 요소들을 쳐내야 한다.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의 속성 별 내성과 다양한 상태이상, 그 치료수단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아이템과 스킬의 선택은 필연적이기 때문에, 개발팀은 결국 전투의 재미를 살리는 데에 집중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전투를 반복하면서 개발팀의 그런 의도가 점점 이해되기 시작했다. 머릿속으로 모든 상황을 생각해두고 터치 타이밍을 맞추어야 했던 '브레이브 프론티어'와 달리 'FF엑스비어스'에서는 커맨드 선택 상태가 되면 전투 진행 중이라도 시간이 멈춘다. 일부 캐릭터의 공격상황을 보면서 다음 선택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얼마나 강력한 파티를 갖췄는지가 기본이지만, 결국에는 자신이 육성한 캐릭터를 얼마나 섬세하게 다루는지가 전투 상황을 결정한다.
얼핏 보면 FF의 스킨만 씌운 듯 보이지만 전혀 다른 게임으로 완성되었다. |
지금의 파이널 판타지(이하 모든 시리즈 FF로 축약) 를 있게 한 요소 중 '액티브 타임 배틀 시스템'(이하 ATB)이라는 것이 있다. 모든 캐릭터들에게 타이머가 설정되어 있어 일정 시간이 지나면 캐릭터의 공격 기회가 돌아오는 시스템으로, 공격 차례가 되었는데도 행동하지 않으면 적이 한 번 더 공격하기 때문에 전투의 긴장도가 높다. 그러나 필자는 이 시스템이 오히려 전략적 선택을 방해한다고 생각한다. 시간의 압박 때문에 효과적인 전략을 연구하기보다는 자주 쓰는 패턴만을 선택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ATB는 'FF10' 에서는 폐지되기도 했다.
'FF엑스비어스'에는 ATB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채용했던 'FF4', 'FF5', 'FF6' 의 캐릭터들이 주로 등장하면서도, 전투 시스템은 ATB시스템의 안티테제에 가깝다. 직관적이고 빠른 전투보다는 한 턴 한 턴 전략을 연구하는 턴제 RPG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자동전투 시 스킬을 사용하지 않게 해 둔 것 역시 이런 전투를 좀 더 즐기도록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터치 시 즉각 반응하는 캐릭터들은 리얼타임 전투와 비슷한 플레이 감각을 선사하지만, 모바일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매 턴 전략을 위해 연구하는 시간이 본가 시리즈보다 더 많이 요구된다.
8가지의 속성이 존재하고 몬스터가 그 속성에 대해 내성이냐 약점이냐에 따라 대미지가 증감하지만, 기존의 모바일 RPG들과 같이 몬스터가 '나는 무슨 속성이요' 하고 대놓고 보여주지는 않는다. 외형으로 속성을 어느정도 추측할 수 있고,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에서 익숙한 적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예측도 가능하지만, 적의 외형과 속성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의 대표 마법 '라이브라'로 조사해야 확실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진입장벽이 높아진 전투와 달리 성장 쪽은 레벨업만 잘 해줘도 척척 진행되는 전작의 미덕을 잊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강화되었다. 소셜 게임 시절부터 시작된 전통인 '요일 던전'은 매일 '각성재료 던전', '경험치 던전', '제작재료 던전' 중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어 다음 주나 이벤트를 기다리지 않고 매일 꾸준히 돌아주면 게임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다. 액션 포인트의 충전시간도 최근 트렌드처럼 매우 빨라졌다.
이계로 워프하면 재료던전이 모여있는 차원의 틈새로 진입할 수 있다. 이후에는 메뉴 선택으로 간단히 이동 가능. |
■클래식 파이널 판타지의 모든 것을 담았다
'FF엑스비어스'가 발표되었을 때 필자에게 기대와 걱정을 함께 가져다준 것은 바로 던전 탐색 플레이였다. 발표 때의 스크린샷도 캐릭터를 직접 움직여 던전을 탐색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정말로 모바일에서 이런 플레이를 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간 스마트폰으로 포팅된 클래식 FF를 즐겁게 플레이해 오긴 했지만 버추얼 패드로 8방향의 이동을 하며 플레이하는 건 상당히 괴로웠기 때문이다. '브레이브 프론티어'가 성공한 것이 그런 군더더기가 없이 빠른 진행이 가능했다는 것을 개발진이 모를 리 없기 때문에, 발표 때부터 공언한 탐색 컨텐츠를 어떻게 풀어낼 지가 필자에게는 최대의 관심사였다.
실제로 플레이해 보니 역시 버추얼 패드의 이동은 불편했다. 그 어느 회사보다도 꾸준히 버추얼 패드 조작을 개선해 온 스퀘어에닉스가 관여하는 만큼 많이 다듬어져 있긴 했지만, 디바이스의 한계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FF엑스비어스'는 이 역시 거시적 플레이의 밸런스로 해결하고 있다. 보통 4~5개의 던전으로 이루어지는 1개 구역 당 1개만 탐색 던전으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분명 진입장벽이 있는 컨텐츠이지만 강요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남지만 남은 AP가 적을 때 유용한 컨텐츠로 작용한다.
이동에는 피로감이 좀 있지만 숨겨진 아이템을 찾아내는 재미는 분명 있다. |
새 지역이 열릴 때마다 출현하는 마을 역시 클래식 파이널 판타지의 재림이라 할 만큼 완벽하게 그 때의 느낌을 재현하고 있다. 약병 그림이나 'INN' 등의 간판을 보고 어떤 상점인지 구별해서 들어갈 때 아련한 향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새 지역에 들어서면 일단 마을에 가서 더 상위의 아이템과 마법을 구매해서 캐릭터를 강화시키는 것이 기본이다. 상점 건물 뒤쪽의 숨겨진 문으로 들어가면 상점주인 뒤의 숨겨진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거나 하는 2D 스타일의 기믹 역시 잊지 않고 재현되어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전투 시스템이 복잡해졌기 때문에 캐릭터의 성장 또한 장비, 액세서리, 어빌리티, 신뢰도(궁극 스킬을 개방하는 데 사용), 리미트 버스트 레벨(필살기의 스킬 레벨)로 매우 풍부해졌다. 때문에 마을에서 보내는 시간은 플레이를 계속할수록 차츰차츰 길어지게 된다. 마을이나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AP가 없을 때 플레이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마을과 던전 내부를 구석구석 뒤져보고, 마을의 NPC들에게 말도 걸어보게 된다. 심지어 마을의 특정 NPC에게 말을 걸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숨겨진 지역까지 존재한다. 이쯤 되면 조사하기 버튼이 없는 것이 아쉬울 정도다.
그런데 잠깐, 이거 언젠가 많이 했던 것 아닌가?
그렇다. 클래식 FF 시리즈는 물론, 90년대에 즐겼던 수많은 RPG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했던 것들이다. 'FF엑스비어스'를 플레이하면서 든 '우려하던 부분을 이렇게 영리하게 해결했구나'라는 이성적인 판단과는 별개로 오래전에 즐기던 그 느낌이 강하게 되살아났고, 필자는 그 순간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진득하게 즐기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모바일 플랫폼에서 이런 플레이를 자신도 모르게 즐기고 있는 것을 발견했고, 무엇보다도 이 감각이 너무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이거 이렇게 하면 뭔가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하고 무언가를 시도하면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플레이어에들의 소중한 기억을 되돌려준다.
상점 주인 옆에 상자가 있으면 건물 주변을 뒤적이던 기억이 한번쯤 있을 것이다. |
퀘스트를 클리어하지 않아도 게임 진행이나 레벨업에는 문제가 없기 때문에 탐색 던전과 마을은 어찌보면 장식에 가까운 컨텐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그래픽은 마치 혼을 불어넣은 듯한 모습이다. 게임을 진행할수록 점점 큰 규모의 마을이 등장하기 때문에 스킵하는 유저들도 많겠지만, 게임의 특성 상 고레벨이 될수록 AP가 없어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게 마련이다. 바로 그 타이밍에 '게임 세계'로 한번 들어가 보고 싶을 정도로 'FF엑스비어스'의 그래픽은 뛰어나다. 플레이스테이션 시대부터 3D RPG가 등장하면서 줄어들기 시작해서 2000년대 후반에는 거의 멸종한 2D RPG의 명맥이 갑자기 이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스토리 또한 'FF7' 이후의 시리즈처럼 심각한 전개가 아니라, 전형적인 왕도(소년만화 등에서 보여주는 전형적인 스토리라인을 일컫는 말)의 길을 따르고 있다. 약간의 동작과 이모티콘만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주인공들의 연출 속에서 플레이어는 멋진 일러스트의 캐릭터를 상상한다. 'FF6'까지의 바로 그 느낌이다. 제멋대로에 민폐 캐릭터지만 어딘가 숨겨진 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주인공 '레인'과 모든 것을 알면서도 말없이 주인공의 뒤를 받쳐주는 '라스웰'이 버디물의 구도를 형성하는 한편, 그 둘이 수수께끼의 소녀 '피나'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간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레인만을 걱정하는 라스웰. 일본에서 수많은 2차 창작물이 나올 것을 예견해 본다. |
이따금 게임 커뮤니티를 보면 모바일에서는 다 똑같은 RPG만 나온다고 개탄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정작 즐길 게임을 선택할 때는 이런 불편을 감수할 필요가 없는 게임들을 선택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필자가 '브레이브 프론티어 for Kakao'를 론칭할 시기, 이전까지 서비스해 온 '브레이브 프론티어'와는 달리 한국 마켓의 트렌드에 맞게 처음부터 많은 보상을 지급하고, 레벨을 쭉쭉 올릴 수 있도록 컨셉을 잡았었다. 신규 유저들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게임의 재미를 느끼는 모습을 보며 필자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스피어 제작 등의 소소한 컨텐츠들을 즐길 새도 없이 성장 일변도로 플레이하는 모습에 필자가 원작의 의도를 훼손했다는 자책감이 들기도 했다. 정답이 없는 선택의 문제이지만, 어쨌든 'FF엑스비어스'는 이 딜레마를 정면돌파하여 해결했다.
이런 장면들을 보고 무언가 추억에 젖었다면 당신은 최소 30대 이상. |
이번 칼럼을 준비하며 찾아본 개발진의 인터뷰에서 다카하시 에이지(高橋英士)제작 프로듀서의 '만약 파이널 판타지 6과 같은 흐름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면..이라는 작품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라는 코멘트를 볼 수 있었다. 필자가 느꼈던 모든 감상을 요약한 한 마디라고 할 수 있겠다.
사운드는 기본적으로 브레이브 프론티어의 악곡 스타일을 계승하고 있지만, 중간중간 클래식 FF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 많다. 클래식 FF 시리즈는 음원의 한계 때문에 항상 편곡 앨범이 따로 발매되었는데, 어레인지 앨범에서 류트와 하프 등의 악기를 사용한 음악을 들으면 게임을 플레이하며 상상했던 판타지 세계의 분위기를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바로 그 편곡 스타일이 'FF엑스비어스'의 BGM에 반영되어 있었다. FF6의 흐름이 이어져 왔다는 가정이 음악에도 적용되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모든 BGM은 퀄리티가 높으면서도 클래식 FF를 플레이할 때의 그 느낌 역시 살아 있다. 특히 월드맵 음악의 도입부는 리메이크된 'FF1'의 그것과 거의 동일해서 필자는 처음 들었을 때 기존 시리즈의 음원을 그대로 사용했나 싶었다. 물론 전투 승리 음악도 시리즈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적응하는 데에는 약간 시간이 필요했지만, 'FF엑스비어스'는 모든 면에서 1년 간 기다려 왔던 필자의 기대를 완벽하게 충족해 주 駭? 이렇게 '진득하게' 플레이할 수 있는 RPG도 참 오랫만이다. 이 정도 수준의 비주얼과 게임성의 깊이라면 큰 화면에서 컨트롤러로 즐겨도 무리가 없을 수준이기 때문에, 후속작이든 파생작이든 콘솔 플랫폼으로도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환마법은 스퀘어에닉스의 전매특허인 하이퀄리티 CG영상으로 연출하고 있다. |
■FF 엑스비어스를 만든 주역들
'FF엑스비어스'는 스퀘어에닉스의 퍼블리싱으로 서비스되고 있지만 개발은 한국 유저들에게는 생소한 개발사인 에이림에서 담당했다. 에이림은 구미 벤처스와 후지 스타트업 벤처스, B Dash 벤처스의 벤처캐피탈 3사가 공동 출자하여 설립된 벤처회사로 현재 에이림의 CEO이기도 한 하야카시 히사토시(早貸久敏) 총괄 디렉터, COO인 다카하시 에이지(高橋英士) 제작 프로듀서, 스기야마 히로시(杉山 浩) 치프 엔지니어의 3명으로 브레이브 프론티어의 개발을 시작했다. 모두 프로그래머 출신으로 피쳐폰 게임을 10년 이상 개발한 베테랑 개발자들이기도 했다.
구미 본사 오피스의 한켠에서 5명으로 '브레이브 프론티어'의 개발을 진행했고, 론칭 시점에는 약 13명 규모가 되었다. 2013년 7월 3일 브레이브 프론티어를 출시하여 뜨거운 반응을 얻었지만, 기대 이상의 유저들이 몰린 탓에 서버 장애가 발생하여 출시 직후 무려 일주일동안 서비스를 중단하는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다. 다카하시 프로듀서는 한 강연에서 '장기간이 되더라도 제대로 고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정말 이제 끝났다 싶었고, 수명이 단축되는 기분이었다.' 라고 말했다. 다행히 서비스가 재개된 후 하루가 지나지 않아 순위가 원래대로 돌아왔고, 이후 출시하는 해외 버전마다 많은 인기를 모았다. 에이림은 그 해 12월 주식회사 구미의 연결 자회사가 되었으며, 올해 10월 구미의 완전 자회사로 거듭났다.
도트 그래픽의 장인을 급구한다는 에이림의 구인 포스터.출처: http://www.a-lim.co.jp |
'FF엑스비어스'의 개발은 우연한 기회에 시작되었다. '브레이브 프론티어'가 스퀘어에닉스가 서비스하는 소셜 RPG '엠퍼러 사가'와의 콜라보레이션 이벤트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당시 있었던 술자리에서 하야카시 프로듀서가 '파이널 판타지를 만들게 해 주십시오!' 라고 스퀘어 관계자들에게 말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브레이브 프론티어'가 이미 스마트폰 시장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자랑하고 있었기에 어렵지 않은 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는 대기업인 스퀘어 에닉스의 간판과도 같은 IP이기 때문에 상당한 검토가 필요했다.
결국 프로젝트의 시동이 결정되었고, 스퀘어에닉스 측에서는 제 10 사업부의 시니어 매니저인 히로노 케이(広野 啓) 프로듀서가 협력하게 되었다. 그는 반다이남코에서 '건담 배틀 유니버스' 시리즈와 '마크로스 얼티밋 유니버스' 등 애니메이션 IP 게임과 인기 걸그룹 AKB 48을 소재로 한 'AKB 1/48'시리즈를 중견 개발사 아트딩크와 협력 개발하는 등, 다양한 IP의 프로젝트를 다수 프로듀스한 인물이다. '확산성 밀리언 아서'의 실사영화화를 진행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해 온 제 10 사업부와 다양한 외부 협력개발 경험을 가진 히로노 프로듀서가 있었기에 'FF 엑스비어스'의 협력 개발이 탄력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파이널 판타지에 대한 하야카시 디렉터의 각별한 관심을 보면, 필자는 'FF엑스비어스'를 에이림이 개발하게 된 것이 비단 우연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구미 코리아에 재직하던 당시 하야카시 총괄 디렉터가 한국지사 사무실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딱딱한 자리가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게임을 개발하기 전 금융회사에서 프로그래머를 하던 시절의 일화 등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스타크래프트를 굉장히 잘 하는데 어디 한 번 대전해볼 사람이 없냐고 묻는 등 소탈하고 유머가 있는 사람이었다.
공식적인 일정이 끝난 후 가진 술자리에서도 게임개발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게이머로서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필자 역시 'FF6' 때문에 게임을 만들게 된 만큼 가장 좋아하는 FF시리즈를 물어보았는데, 하야카시 디렉터는 파이널 판타지 4(이하 FF4)가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라고 했다. 잡 시스템으로 명성이 높은 'FF5'나, 수퍼패미컴의 한계를 보여준 'FF6'에 비해 수퍼패미컴 초창기에 발매된 FF4는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진다는 필자의 말에 하야카시 디렉터는 의아하다는 반응이었다. 'FF는 스토리!'라고 하면서 말이다.
등장 몬스터 중 FF4 몬스터들의 출연 비중이 높아보이는 것은 필자의 기분 탓일까? |
고전 게임을 수집하고 있다는 필자의 자랑 섞인 이야기에, 그는 집에 방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의 게임을 보유하고 있다고 맞불을 놓기도 했다. 벽장 한 칸 정도의 필자로서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열정이었다. 성공한 디렉터이기 이전에 게임을 사랑하는 유저이자, 파이널 판타지를 좋아해서 게임을 만들기 시작한 순수 개발자였다. 공식, 비공식적인 일정을 보내는 사이에도 'FF엑스비어스'의 아트워크를 직접 컨펌하던 그는, 파이널 판타지의 아버지 사카구치 히로노부(坂口博信)씨와 정기적으로 교류하면서 서로 조언을 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특이하게도 'FF엑스비어스'는 FF시리즈 중 가장 큰 인기를 자랑하는 'FF7'의 캐릭터가 일단은 등장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FF 시리즈의 전성기를 계속해서 이어간 'FF8', 'FF10', 'FF13'의 캐릭터들 역시 등장하지 않는다. FF의 IP를 사용하는 게임에서 가장 인기있는 캐릭터들을 배제한 파격적인 선택이다. 클래식 FF중 주인공 캐릭터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 'FF1' 과 'FF3'을 제외한 'FF2', 'FF4', 'FF5', 'FF6'의 주인공들이 메인으로 등장하며, 후기의 시리즈 중에서는 사카구치 히로노부 프로듀서가 'FF5' 이후 9년만에 디렉터로 복귀해서 만들었던 'FF9', 오우거배틀 시리즈로 유명한 마츠노 야스미(松野泰己) 디렉터가 진두지휘한 'FF12'의 캐릭터만 일부 등장한다.
팬들에게 인기가 높은 FF1의 첫 보스 '가란드'는 예상 범위였지만, FF3의 최종보스 '어둠의 구름'의 선정은 의외였다. |
이러한 캐릭터의 선정 기준은 무엇일까? 클래식 FF의 명맥을 잇는 작품이라는 컨셉 때문인지, 이미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FF 레코드 키퍼'와의 직접 경쟁을 피하기 위한 것인지, 이후에 거대한 이벤트로 등장시킬 예정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FF IP의 게임이라는 것을 종종 잊어버린다는 점이다. 'FF 레코드 키퍼'가 제목 그대로 모든 FF시리즈의 기억을 전달하는 소셜 게임으로서의 모범 사례였다면, 'FF엑스비어스'는 독자적인 게임으로 거듭난 모범 사례이. 플레이하다 보면 FF라는 사실을 종종 망각할 정도다.
■ 한국에서의 서비스를 기대한다
이전까지 나온 파이널 판타지 IP의 게임들 역시 눈여겨보아 온 필자이지만, 한국 서 洲봉?성공에는 약간의 장벽이 있었다. 한국에도 FF의 팬은 상당히 많지만 'FF 레코드 키퍼'처럼 FF시리즈의 향수로 게임을 지속할 팬들의 비중은 일본처럼 높지는 않다. 후기 FF의 아버지인 키타세 요시노리 디렉터가 직접 개발한 '뫼비우스 파이널 판타지'의 경우에는 한국에서 보기에도 수준높은 3D 그래픽을 자랑하지만 게임의 진행방식이나 전략이 상당히 독특한 편이라서 한국 유저에게 익숙한 RPG는 아니다.
그렇다면 'FF엑스비어스'는 어떨까? 우선 '브레이브 프론티어'가 이미 한국 마켓에서 큰 인기를 얻은 바 있고, 현재도 서비스 중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브레이브 프론티어'의 유저 커뮤니티에서 일본판이나 북미판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마니아 유저의 비중이 많은 게임이기도 하다. 한편 온라인 쪽에서는 최근 '신생 에오르제아 파이널 판타지 14'가 시장에 안착하면서 파이널 판타지의 인지도 또한 부쩍 올라간 상태이다.
그런 측면에서 'FF엑스비어스'의 한국 서비스 가능성은 다소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물론 'FF 엑스비어스'는 '브레이브 프론티어'와 달리 한국 유저에게 생소한 시스템과 조금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는 컨텐츠들이 있다. 오랫동안 콘솔 게임을 즐겨온 일본 유저들은 게임의 진행에 수수께끼가 있는 것에 익숙하고, 그걸 풀어내는 데에 공략위키의 편집 활동이 활발하기 때문에 이런 점들이 단점이 되지 않는다. 반면 빠른 레벨업과 경쟁형 컨텐츠에 익숙한 한국 유저들에게는 장벽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FF엑스비어스'의 한국 서비스를 누구보다도 기대한다. 비록 절대 다수는 아니지만, 필자가 플레이하며 느꼈던 2D RPG의 그 감 ♣?기억하고 있는 유저는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마켓에서 SRPG가 대두되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부모님 몰래 게임기를, 컴퓨터를 켜고 게임의 세계로 빠져들던 때의 그 느낌을 'FF엑스비어스'는 충분히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다.
김창선 william.kimcs@gmail.com
'스파이크 걸즈'의 게임 기획자로 게임업계에 입문했고, '다이스 어드벤처'의 디렉터를 담당했다. 모본, 엔씨소프트와 일본계 게임사를 거쳐 현재는 알트플러스(AltPlus) 코리아에서 디렉터로 근무 중이다.
일본 게임의 안팎에 정통하고, 특히 발빠르게 일본 게임 시장의 트렌드와 핫 이슈를 콕 집어주는 내공으로 주목을 받았다.</p>
정리=박명기 한경닷컴 게임톡 기자 pnet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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