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닛산 '16년 동거' 프랑스 정부 입김에 깨질 위기

입력 2015-11-03 19:34   수정 2015-11-06 18:48

법 개정으로 르노 대주주 프랑스 정부 의결권 내년 2배
곤 CEO "정부 섣부른 개입 땐 동맹 깨질 수도"



[ 임근호 기자 ] 세계 자동차업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협력 관계로 손꼽히는 프랑스 르노와 일본 닛산자동차 연합이 최대 위기를 맞았다. 장기투자자의 의결권을 두 배로 늘려주는 법을 이용해 프랑스 정부가 르노·닛산 연합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6년 민영화됐던 르노는 다시 프랑스 정부의 입김에 좌우될 위기에 처했다. 르노가 지분 43.4%를 갖고 있는 닛산도 독립 경영을 위협받게 됐다.

○입김 세지는 프랑스 정부

발단은 작년 3월 프랑스에서 제정된 ‘플로랑주(Florange)법’이다. 전체 주주 3분의 2 이상의 반대가 없으면 2년 이상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는 자동으로 주당 1표인 의결권이 주당 2표로 늘어나도록 한 법이다.

문제는 국영기업이 민영화한 경우다. 1993년 정부 지분이 79%에 달했던 르노는 민영화되면서 경영권이 민간 이사회로 넘어갔지만 아직도 프랑스 정부가 단일주주로는 최대인 19.7%의 지분을 갖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플로랑주법 시행 2년이 되는 내?3월 르노에 대한 프랑스 정부 의결권이 19.7%에서 32.8%로 약 두 배가 된다”고 설명했다. 정확히 두 배로 늘지 않는 이유는 3.1%를 보유한 다임러 등 다른 장기투자자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진 민간 주주의 의결권이 월등히 많아 프랑스 정부의 입김은 제한된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정부 의결권이 전체의 3분의 1로 늘어나면 고용과 해고, 공장 이전 등 갖가지 경영 사항에 간섭할 것이란 우려가 높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닛산이 내년부터 콤팩트카 생산을 닛산 인도 공장에서 르노 프랑스 공장으로 옮기기로 했다”며 “이는 자국 내 고용을 늘리려는 프랑스 정부가 압박을 가한 것”이라고 전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최근 “우려를 갖고 이 문제를 지켜보고 있다”며 “일본 정부는 닛산과 르노의 현 지분 구조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닛산 의결권 되살려 정부에 대항 계획

1999년 이후 16년 동안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던 르노·닛산 연합은 프랑스 정부를 ‘공동의 적’으로 치부하고 있다. 지난 2일 5350억엔의 3분기 순이익을 발표하며 10년 만에 최대 순이익 기록을 갈아치운 닛산의 니시카와 히로토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부회장은 이날 “르노에서 프랑스 정부의 목소리가 커져가는 것에 크게 우려한다”며 “사태 해결을 위해 르노와 함께 프랑스 정부와 대화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르노와 닛산에서 최고경영자(CEO) 겸 회장을 맡고 있는 카를로스 곤은 “르노와 닛산은 서로 독립적이되, 협력한다는 미묘한 관?속에서 어려운 결정을 수없이 해왔다”며 “섣부른 정부 개입은 이 관계를 엉망으로 바꿔버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파산 위기에 처한 닛산을 르노가 구하면서 연합이 결성됐지만 양사는 종속관계가 아닌 기술 공동개발과 차량 공동생산 등 전략적 협력 관계를 유지해왔다.

르노·닛산 연합은 닛산이 갖고 있는 르노 지분 15%에 대한 의결권을 되살리는 방안을 계획 중이다. 프랑스 법은 두 회사가 교차로 지분을 보유한 경우 한 회사의 보유 지분이 40% 이상이면 상대 회사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르노의 닛산 지분(43.4%)을 40% 아래로 떨어뜨리면 닛산의 의결권은 되살아난다. 외신은 두 회사가 20~35%의 지분을 서로 균형있게 나눠갖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프랑스 정부의 반대가 걸림돌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경제산업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프랑스 경제지 레제코와의 인터뷰에서 닛산에 대한 의결권 부여를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닛산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르노는 위험을 감수하고 도왔다”며 “닛산 상태가 좋아진 지금 왜 르노가 당시의 동의를 포기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마크롱 장관은 지난 4월 르노가 ‘주당 1의결권’을 명문화하는 방안을 주총 의안으로 올리자 12억3000만유로를 투입해 지분을 15%에서 19.7%로 끌어올리며 반대했을 정도로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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