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엔진은 차갑게 식어가는데 정치권은 정쟁에 몰두하고 있으니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수출이 이렇게까지 줄어도 괜찮은지 모르겠다. 심각하다. 지난달 감소폭이 무려 15.8%다. 일시적인 현상이라면 다행이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감소폭이 다달이 커져 가고 있어서다.
수출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감소폭이 커지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선박은 지난달 인도된 물량이 상대적으로 적어서, 석유제품이나 석유화학제품은 정기 시설 보수 탓이라고 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도크가 넘쳐 주문을 대지 못하던 선박이었다. 석유화학공장이 수요가 넘치는데 설비 보수에 들어갔겠는가. 늘 홍보에만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 탓에 수출이 줄어드는 것이고, 우리는 선진국에 비해 선방하고 있다고 말한 것은 청와대 경제수석이다. 경제수석의 판단이 이 수준이라면 그만두고 총선에나 나가보는 게 나을 것 같다. 수출이 위기에 봉착했는데도 정부의 대책이 없는 이유다.
수출 15% 감소는 무슨 의미일까. 수출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다. 성장을 주도하는 것이 수출이고, 고용을 일으키는 것도 수출이라는 얘기다. 그런 수출이 이 지경이 됐다는 것은 하루에도 수백 개 기업이 좀비로 전락하고, 수십 개 기업이 죽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고용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러면 수출 감소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수출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려면 제품군이 다양하게 진화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수출 주력 제품은 지난 10여년간 바뀐 적이 없다. 신흥국에 집중돼 있는 수출 지역도 마찬가지다. 전혀 바뀌지 않았다. 정부가 입이 마르도록 떠들어온 수출 확대 구호가 품목의 다양화와 지역의 다변화다. 책상머리 정책의 결과다.
따져보자. 조선산업이 살아나리라고 생각하는 전문가가 얼마나 되는지, 석유화학이나 철강이 과거의 영화를 되찾을 날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자동차나 전자가 효자 역할을 이어가리라 생각하는지 말이다.
앞으로도 10년 정도는 확고한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던 조선산업이다. 그러나 지금 현대중공업이나 대우조선을 보라. 이렇게까지 망가질 줄 누가 알았는가. 붕어빵 찍어내듯 배를 만들어온, 소위 ‘카탈로그 영업’만 해왔으니 기술력이 있을 턱이 없다. 구조조정에 성공한들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업계 스스로의 평가다. 석유화학이나 철강은 도무지 벗어날 수 없는 공급과잉의 덫에 걸렸다. 고부가가치화는 말로만 추진했을 뿐이다. 자동차 또한 환율과 강성 노조 탓에 도약이 힘들 것이고, 전자도 가속화하고 있는 중국의 메모리 시장 진출에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게 됐다. 수출 급감이 단순한 세계 경기 침체 탓이 아니라 모든 산업의 경쟁력이 위기에 봉착한 결과라는 얘기다.
더 심각한 것은 수 纛甄? 수출보다 더 큰 폭으로 줄고 있어서다. 10월까지 누적 감소율이 16.5%다. 무엇보다 자본재 수입이 감소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게 문제다. 기업의 설비 투자가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얘기다. 앞으로의 수출도 어둡기만 하다는 뜻이다. 사정이 이런데 성장의 구조를 바꾸고 경쟁력을 키워나갈 산업 정책은 행방불명이고, 규제는 늘어만 간다.
대통령이 취임 직후 무역투자진흥회의를 부활시킬 때만 해도 뭔가 되겠다 싶었다. 그러나 그 회의에서 풀린 수출 애로가 무엇인가. 대통령이 여덟 차례에 걸쳐 주재한 회의다. 소득은 없고, 수출만 줄었을 뿐이다. 하긴 정부가 그때라도 제 정신을 차렸다면 얘기가 조금이라도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포퓰리즘 정치 탓이다. 소위 동반 성장과 경제 민주화라는 이름 아래 도입한 온갖 규제는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모두를 ‘루저’로 만들고 말았다.
정치판은 여전히 정치 이벤트에 몰두하고 있다. 여야가 의기투합해 만들어내는 것은 반(反)시장법이고 기업 활동을 돕는 법은 정쟁에 휘말려 늘 계류 중이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원샷법), 규제비용총량제를 명시한 행정규제기본법, 배임죄 요건을 강화한 형법 개정안처럼 국회에서 낮잠을 자는 법안이 어디 한둘인가. 노·사·정 합의를 바탕으로 한 노동개혁법안 역시 처리가 불투명하다. 이 사람들, 우리 경제의 성장엔진이 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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