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 55% TPP 역내 조달 땐 자동차 무관세…미국 시장, 일본에 잠식 우려

입력 2015-11-05 18:10  

'최고수준 개방' TPP 협정문 공개

뉴질랜드가 공개한 TPP 협정문 들여다보니

정부의 국영기업 지원 금지 어길 땐 무역보복 조항 넣어
베트남에 공장 둔 섬유는 오히려 수출 늘어날 수도
한국, 일본 농산물 협정 수준에 맞춰 쌀 개방 압력 커질 듯



[ 김재후 기자 ] 한국이 배제된 채 타결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참여국들이 누적 원산지(참여국에서 생산된 부품을 사용하면 자국산으로 인정받는 것) 기준을 미국 일본 캐나다 등 12개 가입국 모두에 일괄 적용키로 한 협정문이 5일 공개됐다. 한국이 제외된 TPP 참여국끼리 무역을 독식하게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올 들어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한국 수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란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한국 車부품회사 피해 우려

TPP 사무국인 뉴질랜드 외교통상부가 이날 공개한 TPP 협정문은 애초 예상을 뛰어넘는 최고 수준의 개방 내용을 담고 있다.

누적원산지 규범을 12개 가입국에 일괄 적용키로 한 게 대표적이다. 누적원산지 인정 기준은 55%로 정해졌다. 가령 일본 자동차 회사가 베트남 등 TPP 회원국에서 조달한 부품의 부가가치?자동차값의 55% 이상이면 자국산으로 인정돼 참여국인 미국 캐나다 호주로 수출할 때 무관세를 적용받는다.

이럴 경우 한국의 자동차 부품회사들의 타격이 예상된다. TPP 참여국이 한국산 부품 대신 베트남 멕시코 등에 있는 공장에서 부품을 조달할 가능성이 높아져서다. 섬유제품은 한국 회사들이 베트남에 공장을 둔 경우가 많아 베트남 현지 공장의 수출이 늘 가능성도 있다.

완성차는 그나마 피해가 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산 승용차의 현재 미국 내 수출 관세율은 2.5%로, 미·일 양허안엔 이 관세율을 발효한 뒤 15년차부터 10년간 없애기로 했다. 이에 비해 한국산 승용차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에 따라 내년부터 무관세로 미국에 수출된다. 다만 한국이 TPP에 가입하면 동남아산 일본 차가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국내에 무관세로 들어와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는 점은 우려 요인이다.

가전제품과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은 이미 정보기술협정(ITA) 타결로 대부분 제품을 TPP 참여국에 무관세로 수출하고 있어 TPP 타결에 따른 기회 손실은 크지 않다는 게 산업통상자원부의 설명이다.

◆서비스 등 규범 수준도 높아

이번 TPP 협정문에선 정부가 국영기업에 지원하는 행위를 금지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로 인해 상대국 산업에 피해를 야기할 경우 소송을 걸 수 있도록 했다. 한국전력 한국가스공사 한국석유공사 등 30여개 기업이 해당한다.

미국 등이 이 조항을 넓게 해석하면 산업은행 등도 포함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한국이 TPP에 가입하면 국책은행의 기업 부실 지원 등에 대해 TPP 회원국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김학도 산업부 통상교섭실장은 “국별 의무 적용을 받는 국영기업 명단은 협상과정에서 조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韓 가입시, 쌀 추가개방 압력

일본은 TPP 협정에서 쌀 소고기 밀 보리 등 5개 농산물을 ‘5대 성역’으로 정했으나 최종 협상에선 관세 비관세 장벽을 상당 부분 제거하고 개방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80여개 농산품을 양허에서 제외했다. 12개 가입국 중 일본의 관세철폐율만 95%로 낮은 이유다.

특히 쌀 시장을 열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일본은 한·미 FTA 협상처럼 초기엔 쌀 시장을 개방하지 않는다는 방침이었으나 미국과 호주에서 관세율할당물량(TRQ)을 의무 수입하기로 했다. 한국도 TPP 가입 시 추가로 쌀 시장을 개방해야 할 압력이 높아질 것으로 정부는 예상했다.

■ 누적원산지 규정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맺은 국가 내에서 원재료를 조달할 경우 모두 국산 재료로 간주(원산지를 역내산으로 인정)해 특혜 관세 혜택을 부여하는 것. 예를 들어 일본이 미국에 자동차를 수출할 때 자동차 가격의 55%가 넘는 부품을 TPP 가입국에서 조달하면 관세를 면제받는다.

세종=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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