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종교적 상징·욕망의 수단…'천의 얼굴' 닭

입력 2015-11-05 18:20  

치킨로드

앤드루 롤러 지음 /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80쪽 / 1만9500원



[ 고재연 기자 ] 한국인의 치킨 사랑은 유별나다. 전국 3만6000여곳에 달하는 치킨집은 전 세계 맥도날드 매장보다 많다. 한국뿐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닭은 인간에게 사랑받는 식품이다. 키우는 과정이 까다롭지 않고 빠르게 번식하는 데다 어느 한 부분도 버릴 것이 없기 때문이다.

과학 전문기자인 앤드루 롤러는 《치킨로드》에서 단순한 식량을 넘어 닭이 어떻게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인류 문명을 변화시켰는지 추적한다.

닭은 고대부터 종교적 상징이자 유용한 치료 약이었다. 닭의 울음소리는 성(聖) 금요일에 예수를 배신하는 베드로 사도를 증언했다. 닭 뼈에서 추출한 단백질은 류머티즘 관절염 환자들의 고통을 완화해 준다.

치킨의 유래는 서부 아프리카의 ‘튀긴 닭 전통’에서 시작됐다. 1890년대 미국 남부 목화농장에서 일하던 수만 명의 흑인은 산업화한 북부의 공업 도시로 쫓겨났다. 그렇게 도망치는 과정에서 흑인들은 식당차에 들어가지 못하는 모욕을 당했다. 이때 음식을 등짐에다 싸오는 과정에서 서부 아프리카에서 유래한 튀긴 닭 전통이 미국 전역으로 퍼졌다.

닭은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반영하기도 했다. ‘투계’에 이용되면서다. 필리핀 마닐라의 투계산업은 도박의 한 종류를 넘어 필리핀 정·재계의 은밀한 결단이 이뤄지는 현장이었다. 필리핀 사람들의 ‘투계 중독’은 스페인 행정관에게 중요한 세수의 원천이면서 그들을 통제하는 수단이 됐다. 닭의 타고난 싸움꾼 기질에 인간의 욕망이 투영된 사례다.

저자는 한때 사람들에게 기쁨과 치유를 제공했던 닭의 여정을 통해 인간의 역사를 조명하고, 닭과 인간이 어떻게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한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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