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약 제조 주력하다 2009년부터 신약개발 착수
최근 10년간 8000억 투입…R&D 비중 타 업체 3~4배
표적항암제·폐암치료제 등 잇따라 대형 수출 성공
글로벌 시장서 기술력 입증
[ 김형호 기자 ] 한미약품이 국내 제약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지난 3월 미국의 일라이릴리와 6억9000만달러 계약으로 대규모 기술수출에 물꼬를 튼 이후 올 들어서만 세 번째 초대형 계약에 성공했다. 사노피아벤티스와의 5조원 규모 기술수출 계약에 업계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계약 규모는 지난해 국내 제약시장(약 15조원)의 3분의 1에 달한다.
정윤택 보건산업진흥원 제약산업단장은 “신약물질 발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국적 제약사와 꾸준한 연구개발을 통해 신물질을 찾아낸 한미약품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사례”라며 “국내 업체들의 해외 임상이 늘고 있어 앞으로 이런 방식의 기술수출이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만 세 차례 ‘수출 대박’
한미약품은 올 들어 미국, 독일, 프랑스 등의 주요 다국적 제약사와 잇따 ?대형 기술수출에 성공했다. 3월 6억9000만달러 규모의 표적항암치료제 수출에 이어 7월 독일 베링거인겔하임과 7억3000만달러 규모의 폐암치료제 계약을 성사시키는 ‘대박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한미약품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연구개발은 이번에 기술수출에 성공한 당뇨치료 신약 ‘퀀텀프로젝트’였다. 주 1회 인슐린 주사제를 포함해 월 1회까지 투여 기간을 늘린 당뇨치료제는 나온 적이 없는 획기적인 신약이기 때문에 기술수출에 사활을 걸다시피 했다. 이번 수출은 미국 공정거래법상 승인절차를 남겨두고 있지만 한미약품은 어렵지 않게 승인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법에 따라 거래 규모가 일정 금액 기준을 초과하면 미국 법무부와 연방거래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R&D로 한국 제약산업 가능성 입증
2000년대 중반까지 복제약(제네릭)을 제조하는 업체였던 한미약품은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연구개발 투자에 나섰다. 의약품 리베이트 쌍벌제 도입 등으로 국내 영업환경이 악화되자 신약 및 개량신약으로 눈을 돌린 것. 상위 업체들의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이 5% 수준에 그칠 때 한미약품은 연평균 13%를 신약 개발에 투입했다. 무리한 연구개발비 투자로 유동성 위기를 겪을 때마다 임성기 회장은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임 회장은 “신약 개발은 내 목숨이나 마찬가지”라며 연구진을 독려했다.
임 회장은 당뇨치료 신약인 퀀텀프로젝트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글로벌 제약사로 발돋움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판단에서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지출한 1370억원의 연구개발비 가운데 1000억원을 당뇨치료 신약 개발에 쏟아부었다. 최근 10년간 연구개발비만 8000억원 이상을 투입한 임 회장의 집념이 빛을 발한 것이다.
사노피아벤티스와의 초대형 계약으로 한미약품은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력 있는 제약사로 인정받는 계기를 얻게 됐다. 국내 제약사의 연구개발 노력에도 큰 자극제가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정윤택 단장은 “가족경영 중심으로 내수시장에 안주했던 국내 제약업계에 신약 개발이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연초 10만원대의 한미약품 주가는 3월 수출 계약을 전후해 급등하기 시작, 6월에는 60만원대까지 치솟았다. 이후 사전정보를 이용한 내부자 거래 혐의가 불거지면서 30만원대까지 하락했으나 대규모 계약 가능성이 나오면서 최근 50만원대를 회복했다. 한미약품은 5일 0.55% 내린 54만7000원에 마감했다.
■ 퀀텀프로젝트
바이오 의약품의 약효 지속시간을 연장해주는 한미약품의 독자 기반기술인 랩스커버리(LAPSCOVERY)를 적용한 지속형 당뇨신약 후보 물질. 당뇨치료제의 투약 횟수와 투여량을 최소화해 부작용을 낮추고 약효는 최적화할 수 있는 기술이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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