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콩쿠르 우승 앨범, 초기 물량만 5만장 찍어
클래식에 첫발 디딘 문외한 흥미 지속시킬 예술교육 절실
[ 김보영 기자 ]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클래식 아카데미 ‘풍월당’ 앞에 6일 오전 긴 줄이 생겼다.(사진) 국제 쇼팽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의 앨범을 사기 위해 몰린 사람들이었다.
유니버설뮤직은 초기 물량으로 일반 클래식 앨범의 20배에 달하는 5만장을 찍었다. 내년 상반기까지 10만장은 충분히 팔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조수미나 리처드 용재 오닐 등 ‘클래식 스타’의 앨범도 누적 판매량 5만~6만장이면 히트 앨범 반열에 들어가는 걸 감안하면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쇼팽 콩쿠르 효과다. 조성진 앨범 구매자 모두가 클래식 애호가는 아닐 것이다. 평소 클래식을 즐겨 듣지 않았다면 조성진과 다른 피아니스트의 연주가 어떻게 다른지 파악하기 쉽지 않다. 그만의 독특한 연주 스타일 또한 섬세하게 구분하기 힘들다. 상품의 질을 판가름하기 어려울 때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은 브랜드 등 겉으로 드러나는 신호다. 순수예술 시장에서 ‘슈퍼스타 경제학’ 현상은 유독 두드러진다.
일부 클래식 음악계 종사자들이 조성진 ‘열풍’에 대해 조심스러워하는 이유다. 한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올해와 지난해 좋은 콩쿠르에서 우승·입상한 훌륭한 젊은 연주자들이 많다”며 “실력만 놓고 본다면 그들도 주목과 관심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콩쿠르 출전과 무관하게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성장시키고 있는 이들이 많다”고도 했다. 맞는 얘기다. 많은 음악인이나 업계 관계자들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특정 분야의 붐을 일으켜 전체 수요 자체를 끌어올리는 데 ‘슈퍼스타’는 확실히 제 몫을 한다. ‘박세리 키즈’ ‘김연아 키즈’가 대표적인 국내 사례다. 조성진의 앨범을 듣고 처음으로 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는 사람이 적지 않을 듯하다. 처음에는 조성진 이름 석 자만 보고 앨범을 샀지만 점차 영역을 넓혀 가며 클래식 전반을 좋아하게 되는 시나리오를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일단 진입장벽을 넘으면 알수록 더 좋아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취향’이 형성되기까지의 과정이 지난할 뿐이다. 한 번 취향이 생긴 소비자는 종종 합리적이지 않은 행태마저 보인다. 예를 들어 자신이 보유한 작품을 누군가 시세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사겠다고 제안해도 응하지 않는 미술품 소장가들이 많다. 일종의 부존효과(자신이 소유한 것에 대해 집착을 갖고 애지중지하는 경향)다.
관련 업계 종사자들이 ‘예술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데이비드 트로스비와 지안프랑코 모세토 등 문화경제학을 연구한 학자들은 예술 소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소득 수준과 여가 시간, 예술상품 가격과 교육 등을 꼽았다. 이번 쇼팽 콩쿠르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엄청나게 흥미로운 클래식 특강을 해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성진의 우승이라는 인상적 사건 덕분에 문외한도 클래식 음악에 첫발을 내디딜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어떤 교육이든 지속성이 중요하다.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은 취임 2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문화예술계에서) 세계적 수준의 졸업생을 배출하지만 예술 소비가 없다”고 토로했다. 공급만 있고 소비가 따라주지 못하는 국내 예술 시장을 살리는 한 가지 방법은 꾸준한 예술 교육이다. 한 번 생긴 흥미를 지속시키고, 흥미가 없는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문화예술 교육의 범위와 규모를 확대해야 한다.
‘덕후(일본어 ‘오타쿠’의 변형으로 특정 분야에 관심을 쏟는 마니아)’들 사이에서 도는 말이 있다. ‘입덕(덕후가 되는 것)은 있어도 탈덕(덕후에서 벗어나는 것)은 없다.’ 취향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풍성하게 조성하는 것. 문화예술 수요를 늘릴 수 있는 핵심 요령이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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