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공인인증서로 세금 신고 땐 국세청 조사 빈도 줄어든다"
세무사, 계정 빌려주고 3억 챙겨
연 평균 8만번 접속했는데 국세청 5년간 조사 한번 안해
"불법 세무 대리 감시부서 필요"
[ 박상용 기자 ]
대개 사람들은 세무사라고 하면 쉽게 돈을 버는 줄 안다. 물론 잘나가는 세무사도 많다. 하지만 서울에서 20년 넘게 세무사로 일해 온 내가 보기엔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다. 협업으로 활동하는 세무사가 전국에 1만명이 넘는다. 여기에 600명 이상의 초임자가 매년 쏟아진다.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기존 세무사가 소비자와 수년간 맺어온 계약을 뺏어오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자영업자가 밀집해 있어 세무사 사이에서는 노다지로 알려진 서울 마장동 축산물시장과 가락동 청과물시장에서 계약을 따내기 위해 나도 열심히 뛰어다녔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먹고살기 힘들어진 나는 다른 꼼수를 생각했다. 5년 전 충남 천안과 경기 등지의 오피스텔에 작은 사무실을 냈다. 그리고 해당 지역의 한국외식업중앙회 지부와 접촉했다. 나는 협회 직원들에게 국세청 세무신고 웹사이트 홈택스에 접속할 수 獵?공인인증서를 빌려주겠다고 제안했다. 내 아이디로 홈택스에 접속해 세무신고를 대신해주는 서비스를 하면 자영업자들을 협회 회원으로 끌어들이기 쉬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무사 계정으로 협회 회원이 세금 신고를 하면 국세청도 공신력을 인정해 현장 감사를 잘 나오지 않는다”는 귀띔도 해줬다.
몇몇 지부가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솔직히 그쪽도 남는 장사였다. 협회는 마땅한 수익 사업 없이 회원에게서 걷는 회비로 직원 급여와 사무실 임대료를 충당하고 있었다. 더 많은 회원을 모집해야 원활한 운영이 가능했다. 일부 협회 지부가 벌써 수십년간 회원 모집을 위해 무허가로 세금 대리 신고를 하고 있다는 건 알 만한 세무사들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자영업자 역시 혹시나 있을지 모를 국세청 조사에 대한 부담 없이 매출 등을 줄여 신고할 수 있으니 마다할 필요가 없었다.
공인인증서 대여료는 세금 신고 건당 수수료 형식으로 받았다. 한 건에 10만원 정도를 받고 이 중 4만원가량을 협회 직원들에게 돌려줬다. 나는 세무사 업무를 하지 않고도 2010년부터 5년간 약 3억1800만원을 벌 수 있었다. 협회에 돌려준 돈은 2억1200만원 정도였다.
올해 경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이 같은 거래는 마침표를 찍었다. 벌금형을 받았고 세무사는 그만뒀다. 몸도 아프고 지쳤다. 지금은 모든 것을 정리하고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위 기사는 세무사 박모씨(50)의 관점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경찰은 한국외식업중앙회 일부 지부에서 세무사 ?공인인증서로 대신 세금 신고를 해준다는 제보를 받고 수사에 착수했다. 박씨의 공인인증서를 통한 홈택스 접속 건수는 연간 8만건에 이르렀다. 하나의 계정으로 하루 평균 220여번 로그인한 셈이다. 경찰 관계자는 “5년 동안 비정상적으로 많은 접속 건수가 기록됐는데도 국세청은 박씨와 협회에 대해 조사하지 않았다”며 “국세청에는 이 같은 불법 세무 대리 행위를 검증하고 관리하는 부서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국세청도 뾰족한 단속 대책이 없다고 인정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한 계정으로 여러 곳에서 접속하는 다중 접속은 차단하고 있지만 대리 접속 등을 막기는 쉽지 않다”며 “세무사들의 윤리의식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 세무사는 “박씨의 세무사 계정이라는 말에 자영업자들은 세무 특혜가 있을 거라고 오해했을 수 있다”고 전했다. 박씨의 계정으로 세무신고를 한 자영업자들은 대부분 신용카드와 현금영수증 등을 통해 증빙되는 매출을 신고했다.
이에 국세청 관계자는 “세무사 공인인증서로 홈택스 세무신고를 한다고 해서 특별히 감사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특혜를 주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처럼 세무사 계정을 대여한 세무업무 처리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세무사는 “쉽고 간단하게 세무사 업무를 불법 대리할 수 있지만 국세청이 막상 단속하려면 까다로워 비슷한 사례가 많을 것”이라며 “관계당국에서 체계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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