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미국과 일본 등 12개국의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이 타결되자 일본 언론은 멕시코를 주목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을 인터뷰했고,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는 ‘TPP의 숨은 주역, 가려진 국가 멕시코’라는 커버스토리를 통해 멕시코를 집중 조명했다.
니에토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TPP는 참가국 모두에 혜택”이라며 “2020년엔 멕시코가 생산 대수 500만대의 세계 5위 자동차 생산국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계자동차공업연합회에 따르면 멕시코는 지난해 7위 자동차 생산국(336만대)이다. 5년 내 인도(6위·386만대)와 한국(5위·452만대)을 따라잡겠다는 것이다.
급성장하는 멕시코 車산업
일본이 멕시코에 주목하는 이유는 일본 기업들의 멕시코 활용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일례로 그동안 멕시코에 공장이 있는 일본 자동차회사들은 현지에서 생산한 자동차를 미국이나 캐나다에 무관세로 수출하려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원산지 기준 62.5%를 맞춰야 했다. 북미산(産) 부품 사용이 불가피 杉? TPP 체제에선 미국 일본 멕시코가 모두 ‘역내’로 묶이기 때문에 일본 자동차회사가 멕시코 공장에서 일본산 부품을 활용해 완성차를 생산해도 관세혜택을 받는다.
멕시코는 46개국과 맺은 FTA, 정부의 친(親)시장적 규제완화 노력에 힘입어 글로벌 기업들의 생산기지로 급부상했다. 멕시코에서 이뤄지는 투자의 60%가량이 외국인 투자다. 중남미 국가 중 그 비율이 가장 높다. 북미와 중남미 수출 거점으로 보고 진출하는 기업들이 많다. 예컨대 기아자동차도 내년 5월 완공을 목표로 연간 생산 30만대 규모의 공장을 멕시코 누에보레온주(州)에 짓고 있다.
KOTRA는 최근 한국이 수출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공략해야 할 ‘기회 국가’로 10개국을 선정해 발표했다. 1위가 베트남, 2위가 멕시코다. 둘 다 TPP 참여국이다.
멕시코는 제조업 활성화가 주된 기회 요인으로 꼽혔다. 현지 제조업이 활발해지면서 원·부자재, 기계, 부품 등의 수출 기회가 늘고 있다. 한국이 TPP에 참여하지 못하면 이런 기회가 고스란히 일본 등 TPP 참여국에 돌아갈 수 있다. 한국과 멕시코는 FTA도 체결돼 있지 않다.
‘동북아 분업’ 대신 ‘TPP 분업’
지금까지는 한국이 일본에서 부품·소재를 들여와 이를 중간재(부품)로 가공해 중국에 수출하면 중국이 완제품을 생산해 세계 시장에 내다 파는 ‘동북아 분업’이 글로벌 제조업의 큰 축이었다. 앞으론 ‘TPP 분업’이 대세가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누적원산지 규정에 따라 참여국들이 마치 한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것처럼 돌아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TPP 가입국이 역내 부품으로 제품을 생산해 다른 가입국에 수출하면 관세혜택을 받는데, 굳이 한국과 같은 역외 국가에서 부품을 사 올 이유가 없어진다. 한국의 중간재 수출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기업들이 경쟁력을 잃지 않기 위해 TPP 역내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면 국내 일자리가 줄어든다. TPP 참여국 간 연간 교역 규모는 약 10조달러에 달한다. 글로벌 경제의 새 질서로 떠오르는 ‘TPP 체제’에서 아웃사이더가 되는 것은 수출 때 관세혜택을 못 받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박성완 국제부장 ps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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