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중국 '반도체 추격' 따돌리려면 '1992년 극일' 되살려야

입력 2015-11-08 18:20  

중국의 샌디스크 인수 파장

샌디스크 등 잇따른 M&A…중국 반도체 굴기 본격화
메모리 설계·SW인력도 흡수…5년 내 한국 치명상 우려
차세대 메모리 원천기술 개발·고급인력 육성 절실

박재근 <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 >



중국 국영기업 칭화유니그룹이 지난달 21일 미국의 낸드플래시 업체 샌디스크를 190억달러(약 21조5000억원)에 인수했다. 지난 9월 인수한 웨스턴디지털을 앞세워 사들인 것이다. 샌디스크는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 2위(28.8%)인 일본 도시바와 합작한 회사다. 또 칭화유니그룹은 “600억위안(약 10조7000억원)을 들여 중국 국내에 공장을 짓기로 했다”며 메모리반도체 양산을 선언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본격화한 것이다. 중국의 반도체시장 공략은 최근 들어 빨라지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지난해 ‘국가 반도체산업 발전 추진 요강’을 발표하고, 1200억위안(약 21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했다.

2030년까지 중국 메모리 소비량의 40%까지 국산화한다는 목표다. 세계 1위 반도체시장인 중국이 부품 수입 의존도를 줄이고 자체 생산을 통해 수익성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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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보기술(IT)산업 규모는 2013년 12조4000억위안으로 세계 D램의 19.2%, 낸드플래시의 20.6%를 소비했다. 중국의 해외 반도체업체 인수합병(M&A)은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세계적 반도체 장치업체인 일본 도쿄일렉트로닉스 인수를 추진했다. 특수 메모리를 설계하는 한국의 제주반도체와 피델릭스 및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설계하는 니모스텍이 중국 업체에 넘어갔다. 칭화유니그룹은 세계 D램 3위(27.7%)이며 낸드플래시 3위(20.6%)인 미국 마이크론 인수도 시도했다.

무서운 반도체 M&A 식욕

그동안 한국은 비교적 느긋했다. 최소 5~10년의 기술 격차 때문에 중국이 메모리 사업에 당장 진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봤다. 그러나 올해 중반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설상가상으로 컴퓨터의 두뇌에 해당하는 CPU(중앙처리장치)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인텔이 낸드플래시 시장에 진입한다고 선언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는 없는 3차원 크로스포인트 메모리를 마이크론과 합작해 내년 초부터 미국에서 생산하고, 향후 3~4년간 중국 다롄의 인텔팹에 55억달러(약 6조2000억원)를 들여 3차원 낸드플래시와 3차원 크로스바포인트 메모리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인텔의 메모리 사업 재진입은 30년 만이다. 한국 반도체산업의 미래를 점치기 어려운 형국이다. 한국 반도체산업은 삼성전자가 1983년 D램 사업에 첫발을 내디디고 1992년 삼성이 64메가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면서 일본전기, 도시바, 히타치를 따돌리고 메모리업계 1위에 등극했다. 1995년에는 삼성이 D램 세계시장 점유율 1위, 현대전자 4위, LG반도체 7위를 차지했다.

외환위기 때인 1999년 김대중 정부의 빅딜 정책으로 LG반도체와 현대전자가 현재의 SK하이닉스로 합병했다. 2000년부터 2009년 사이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D램시장 1, 2위 업체로 성장, 일본 D램 업체들을 몰락시키고 대만과의 치킨게임에서도 이겨 세계 시장의 70%를 확보했다.

이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낸드플래시 시장에 본격 진입하며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했다. 현재 세계 D램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 45.1%, SK하이닉스 27.7%며, 낸드플래시 시장은 삼성전자 35.3%, SK하이닉스 15.2%로 세계 메모리반도체 1, 2위를 달리고 있다. 한국의 반도체는 1995년에 수출 100억달러를 달성했으며, 총 수출액의 10.9%, 제조업 근로자의 약 4%를 고용하는 산업으로서 경제의 주춧돌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 R&D사업 끊긴 한국

이런 한국 반도체산업의 위상은 중국의 부상에 적잖이 흔들릴 수 있다. 전문가들은 2~3년 내 인텔과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경쟁할 것이고, 중국은 5년 내 D램과 낸드플래시에서 한국의 턱밑까지 따라붙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국 반도체산업 환경은 여러모로 불리하다. 반도체 장치의 국산화율은 21% 수준이다. 최첨단 장치는 거의 수입에 의존한다. 반도체 재료의 국산화율도 50% 수준이다.

석·박사급 연구개발(R&D) 인력도 급감하고 있다. 서울대 반도체 공동연구소가 배출한 석·박사 인력은 2008년 103명에서 2014년 42명으로 줄었다. 중국은 6년 전부터 100개 대학당 연 100명씩 10년간 장학금과 생활비를 전액 지원, 10만명의 석·박사 인력을 배출하는 ‘10만 인력양성 공정’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수년간 정부의 메모리반도체 R&D 사업도 급감, 내년에는 신규 R&D 사업이 전혀 없는 지경에 처했다. 메모리 업체가 세계 1, 2위 하는 대기업인데 왜 정부가 나서느냐는 부정적인 인식 탓이다. 국가 R&D 사업이 없어 교수들이 관련 연구를 할 수 없고, 그로 인해 전공을 바꾸는 교수가 늘다 보니 석·박사 배출도 줄어들고 있다.

국내 시설투자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SK하이닉스의 중국 우시 D램 공장 건설, 삼성전자의 중국 시안 낸드플래시 공장 건설에 중국 지방정부는 토털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나 SK하이닉스의 이천 신규 D램 공장은 8년 만에 준공할 수 있었고, 세계 최대 메모리 공장을 경기 평택에 짓는 삼성전자는 송전선 설치 반대 시위와 지역 건설업체의 일감 지원 요청 시위로 공장 건설이 늦어지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사업을 시작해 10년 만에 일본을 따돌린 힘을 다시 발휘해야 할 때다. 중국과 5년 이상 격차를 유지하려면 국가적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

차세대 메모리반도체 기술개발도 필요하다. 수직형 자성 메모리와 저항 메모리, 뇌신경 모방 메모리 소자 및 응용기술, 사물인터넷(IoT) 메모리 소자에 대한 기술, 그리고 미국 중국 일본에서 시작하고 있는 3차원 크로스바메모리에 대한 기술개발이 시급하다.

장치와 재료 국산화율 높여야

반도체 장치와 재료의 국산화율도 높여야 한다. 현재 국산화율은 반도체 장치 20%, 재료 50%에 머물고 있다. 최근 수년간 정부의 반도체 중소·중견기업의 R&D 및 사업화 지원 감소로 장치 및 재료 연구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주성엔지니어링, 원익IPS, 유진테크, 테크노세미켐, 케이씨텍 등 제1차 반도체 장치 및 재료사업 육성 경험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인력 양성도 중요하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가 국내 10개 연구중심대학과 맺은 산학 프로그램, SK하이닉스의 계약학과인 나노반도체공학과를 통해 석·박사 인력이 양성되고 있으나 그 수가 매우 적다. 정부가 주도하는 차세대 메모리의 설계·소자·공정·재료·소프트웨어 분야 석·박사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조속히 만들어야 한다.

박재근 <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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