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인사말만 배우고 한국행
"어학당에서 사귄 한국 친구들과 본국보다 한국여행 많이 다녔죠"
외국인도 1차 면접은 영어 인터뷰…아이디어 적극 내 인턴경쟁 뚫어
"본국 돌아가 한국통신사 역할 하고파"
[ 공태윤 기자 ]
“한국에 온 지 7년 됐어요. ‘안녕하세요’ ‘사랑해요’ ‘미안해요’ 딱 세 마디만 알고 왔는데 지금은 중국 친구들이 오면 제가 관광 가이드를 할 정도가 됐습니다.”
롯데백화점 외국인 유학생 공채 10기로 입사한 중국인 자오쉐제 씨(30)는 “경주 전주 부산 등 안 가본 도시가 없다”며 “중국보다 한국 여행을 더 많이 다닌 것 같다”고 말했다. 어학당을 다니지 않았다는 퍄오후이링 씨(27)는 대학시절 한국 학생들과 학생회 활동을 할 정도로 한국말이 유창했다. 중국 지린성 출신인 선하이옌 씨(25)는 한국이 상하이보다 가까워 대학을 한국으로 오게 됐다고 했다. 톈이췬 씨(24)는 옌볜대 한국어학과에 입학한 뒤 한국의 매력에 푹 빠져 경희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외모와 말투를 보면 모두 한국인으로 착각할 정도다. 인도네시아 출신인 아드리안 레가 씨(29)는 2012년 ‘가나다라마바사’만 배워서 한국에 왔는데 어느덧 법학전문대학원까지 졸업하게 됐다. 낯선 땅 한국에 와서 한국 대기업에 입사한 외국인 유학생 출신 신입사원들에게 한국 생활과 취업 성공 비법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한국어로 세 시간 동안 진행했다.
한국 적응 비결은 ‘한국인 친구’
이들 외국인 신입사원은 한국어 어학당에서 한국인 친구를 사귄 것이 한국에 잘 적응한 비결이라고 입을 모았다. 자오씨는 충남대 어학당에서 만난 한국어 교사가 자신의 멘토라고 소개했다. “선생님 덕분에 한국에 대한 호감이 커졌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상담하면서 빨리 적응할 수 있었어요.” 한국어에 자신있었던 퍄오씨는 대학 학생회 활동을 통해서, 선씨는 편의점 영화관 커피숍 등 아르바이트를 통해 실전 한국어를 배웠다.
이들은 힘들게 한국어를 공부하면서도 장학금을 받은 ‘공부벌레’였다. 인하대 대학원을 나온 퍄오씨는 평균학점이 4.2점(4.5점 만점)이라고 공개했다. 자오씨는 4.1점, 레가씨는 4.0점, 톈씨는 4.1점 등으로 높은 성적을 받았다. 게다가 모두 한국어능력시험 ‘토픽’ 최고등급(6등급)을 통과했다.
면접 질문 포인트는 ‘문제해결 능력’
롯데백화점의 외국인 유학생 채용전형은 ‘서류전형→역량면접→인턴(4주)→프레젠테이션·최종면접’으로 이뤄진다. 1차면접에서는 중국인 지원자도 영어로 면접을 본다. 영어면접은 면접담당자 2명이 지원자 3명을 인터뷰한다. 롯데백화점 등 유통업 전반에 대한 기사를 두고 지원자와 대화하는 형식으로 진행한다. 톈씨는 “영어인터뷰를 잘하면 플러스 요인이 되지만 당락을 크게 좌우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토익점수가 860점이라고 밝혔다.
역량면접은 면접담당자 2명이 지원자 1명을 심층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주된 질문의 포인트는 문제해결 능력이다. 선씨는 대학시절 팀워크 과제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고객과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자오씨는 팀원과의 갈등 상황에서 자신만의 해결 방법을 면접 담당자에게 이야기했다. 퍄오씨는 “다양한 한국 경험을 쌓고 친구를 사귄 것이 풍성한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을 볼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마케팅 아이디어’ 적극 제출
이들은 지난 7월 4주 동안 롯데백화점 각 지점에서 인턴생활을 했다. 함께 인턴생활을 한 12명 중 이들만 최종 선발됐다. ‘비결’이 궁금했다. 톈씨는 “화장품 매장관리를 하면서 신세계, 갤러리아 등 다른 백화점과 비교한 보고서를 제출했다”고 했다. 롯데백화점 강남점에서 인턴생활을 한 자오씨는 “외국인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백화점 관련 아이디어를 내 점장에게 칭찬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인턴 후 최종 PT면접 주제는 ‘롯데백화점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마케팅’과 ‘현지 백화점 MD(상품기획자)의 역할’이었다. 톈씨는 중국인 ?선호하는 브랜드를 인터넷 설문조사해 엑셀 데이터자료로 만들었고, 자오씨는 한국 유통업체와 중국 기업들의 SNS 마케팅을 조사·분석했다. 자오씨가 제안한 중국 온라인 채널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와 웨이신(한국의 카카오톡과 같은 채팅 앱)을 통한 홍보 방안은 채택돼 실행 중이다.
“한국과의 가교 역할 하겠다”
9월14일 정식 사원이 된 이들은 6개월간 한국에서 연수를 받은 뒤 고국에 있는 롯데백화점에서 근무하게 된다. 각자에게 포부를 물어봤다. “한국에서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는데 헤어져야 해 아쉽다”는 자오씨는 “중국 롯데백화점 최초의 공채 여성 점장이 돼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싶다”고 꿈을 밝혔다. 선씨는 “롯데백화점 인턴생활을 하면서 꿈이 생겼다”며 “어딜 가든 누구에게나 쓸모 있고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레가씨는 “내게 기회를 준 롯데에 감사한다”며 “인도네시아의 한국통이 돼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인터뷰 후 신입사원들은 사진 촬영을 앞두고 “고향의 부모님이 내 얼굴을 보실 텐데…”라며 예쁘게 화장을 했다.
롯데백화점 외국인 유학생 공채 10기 프로필 (왼쪽부터)
자오쉐제(30)
국적:중국 / 충남대 대학원(마케팅학) / 마케팅부문 문화마케팅팀
퍄오후이링(27)
국적:중 ?/ 인하대 대학원(지속가능경영학) / 윤리경영부문 윤리기획팀
아드리안 레가(29)
국적:인도네시아 / 강원대 법전(국제법무학) / 해외사업부문 / 해외사업총괄팀
선하이옌(25)
국적:중국 / 성균관대 졸업(경영학) / 경영지원부문 인재개발팀
톈이췬(24)
국적:중국 / 경희대 대학원 졸업(경영학) / 글로벌MD 전략팀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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