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몇 년 전에도 비슷한 일을 겪은 것 같다. 바로 3D TV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굴지의 대기업들이 3D TV를 경쟁적으로 선보이며 시장에 파란을 일으켰던 그 때와 동일하다.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3D TV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장밋빛 전망을 제시했다. 그러나 예언은 빗나갔고, 그렇게 떠들썩했던 3D TV들은 거품이 꺼지듯 자취를 감췄다.
VR업계 전문가들은 VR게 湛?미래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분명 혁신적이고 잠재력 있는 분야임은 분명하지만, 대중화되기에는 해결해야 할 장애물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눈 앞의 환상에 얽매이지 말고 좀 더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VR콘텐츠 제작솔루션과 퍼블리싱을 제공하는 서틴플로어(대표 송영일)의 최삼하 이사도 VR게임을 신중하게 바라보는 전문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서강대학교 게임교육원 교수직을 겸임하고 있기도 하다. 지스타 현장에서 최 이사를 만나 VR게임에 대해 좀 더 들어봤다.
VR세상이 오긴 온다, 그러나 게임이 선두는 아니다
"게임업체들이 VR에 쉽게 접근하는 이유는 진입장벽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은 엔진에서 다 제공해주니 R&D가 필요하지 않다. 최근 게임시장이 어려워지면서 VR이 해결책으로 떠오르는데, VR게임은 엘도라도가 아니다. 철저한 준비 없이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최 이사는 VR게임이 대중화되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로 크게 3가지를 꼽았다. 이 중 가장 체감하기 쉬운 문제는 게임 속 인지부조화에 따른 부작용이다. 대표적인 경우로 현실의 나와 게임의 내가 불일치하면서 발생하는 멀미현상이 있다. 이 때문에 현재 대부분의 VR게임은 플레이어의 이동을 극히 제한하여 멀미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택한다.
최 이사는 "하지만 게임 속 인지부조화 문제는 어떻게 해서든 극복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최근에는 전류를 흘려서 불일치를 최소화하는 연구가 진행이 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최 이사가 가장 걱정하는 문제는 따로 있다. 대부분의 게임업체들에게 VR게임의 연출방식에 대한 기초적인 노하우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신기하다"와 "재미있다"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라고 말했다. 기존의 게임과 VR게임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완전히 다른데, 기존 게임을 VR버전으로 단순히 컨버전만 하는 것은 너무 안일하다는 설명이다. 반드시 VR게임만의 연출이 추가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신기한 것만 내세우다가는 3D TV와 같은 길을 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게임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올 때의 인지부조화 역시 좀 더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최 이사는 "트램펄린에서 뛰다가 바닥으로 내려오면 잠시 현실에 적응이 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며 "민감한 사람들은 이 인지부조화 때문에 교통사고를 겪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 이사는 서틴플로어도 초창기에는 VR게임을 우선 고려했다고 했다. 그러나 VR게임이 넘어야 할 장벽 때문에 고심하다가 결국 노선을 바꿨다. 대안으로 선택한 것은 영상이었다. 게임보다 인터랙션이 많지 않아 상대적으로 부작용이 적기 때문이다. 영상으로 대중화를 이룬 후, 게임 분야에도 차근차근 접근할 계획이다.</p>
현재 서틴플로어는 에버랜드의 놀이기구를 VR영상으로 만드는 'VR 360 에버랜드'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롤러코스터인 'T익스프레스' 영상이 완성단계에 이르렀으며, 사파리를 비롯해 총 7개의 영상이 준비중이다. 이번 지스타에서는 삼성전자의 VR 기어를 통해 'T익스프레스'를 체험할 수 있도록 시연대를 마련해 놓았다.
실제로 'T익스프레스' VR영상을 체험해봤다. CG로 만든 VR게임은 많이 해봤지만, 실사로 이루어진 VR영상을 체험하는 것은 처음이다. 롤러코스터가 천천히 올라갈 때의 긴장감, 무서운 속도로 떨어질 때의 속도감이 잘 표현됐다. 뒤를 돌아보면 롤러코스터를 탄 사람들이 손에 닿을 듯 느껴진다. 롤러코스터 특유의 진동과 움직임이 없어 실제와 똑같은 느낌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럭저럭 롤러코스터의 맛을 살려냈다.
이렇게 만든 영상들은 에버랜드와 협업하여 사회 소외계층을 위한 CSR(사회공헌)에 활용된다. 몸이 아파서 에버랜드에 갈 수 없는 아이들이나, 테마파크 입장료가 부담스러워 갈 수 없었던 노인들이 대상이다. 이를테면 래핑버스 속에 VR 시연대를 설치하고, 소외계층에 직접 찾아가 놀이기구를 간접 체험할 수 있게 돕는다. 최 이사는 내년 초면 구체적인 청사진이 그려질 것 같다고 귀띔했다.
사실 서틴플로어에게 VR영상 콘텐츠 제작은 주력 사업이 아니다. 회사의 궁극적인 정체성은 VR영상 제작솔루션 제공과 VR관련 MCN사업이다. 이번 에버랜드 프로젝트는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계획한 것으로, VR영상 전부가 무보수로 제작됐다. 물론 스타트업인만큼 회사의 인지도를 올릴 수 있다는 부분도 고려했다.</p>
서틴플로어는 360도 방향으로 영상을 촬영하고, 이 영상을 연결해서 붙이는 '스티칭'에 노하우를 갖고 있다. 후발주자이긴 하지만 기존 VR업체들보다 기술면에서 더 진보했다는 설명이다. 그가 예시로 든 모 업체의 경우, 끊임없이 움직이는 서틴플로어의 'T익스프레스' 영상과는 달리 시점을 한 곳에 고정해서 촬영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서틴플로어는 풀CG가 아닌 실사촬영을 접목한 게임에 관심이 많다. 예를 들면 2000년대 초반 유럽에서 유행했던 어드벤처게임과 같은 것들이다. 플롯의 진행은 배우들이 등장하는 실사 영상으로 처리하고, 퍼즐과 같은 게임 부분은 CG로 처리하는 형태다. 최근에는 '도시를품다'처럼 모바일게임 분야에서도 비슷한 게임이 등장하고 있다. 시장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얘기다.
최 이사는 "서틴플로어는 기술적 파트, 카메라연출, 아트워크에 대한 노하우가 잘 준비가 된 기업"이라며 "한국에서 제대로 된 VR 선두기업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p>
부산=서동민 한경닷컴 게임톡 기자 cromdand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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