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몰입·고헌신·고성과…'3고(高) 관리'가 조직의 진정한 혁신"

입력 2015-11-15 18:49  

제프리 페퍼 교수-이근면 인사혁신처장 대담

"기업과 종업원 모두 성장을 목표로 해야 기회 창출
1년마다 보직 바꾸는 한국 공무원…전문성 의심돼"

"공무원도 성취 목표와 임무 깨닫게 해야 성과 내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애는 게 혁신의 첫걸음"

사회=이재창 부국장 겸 지식사회부장



[ 이재창/은정진 기자 ] ‘인재경영의 창시자’로 불리는 제프리 페퍼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석좌교수는 “훌륭한 리더는 직원을 평가하는 대신 그들의 잠재력을 끌어내 조직의 성과를 높인다”는 경영 원칙을 설파하고 있다. 최근 미국 제너럴일렉트릭이 30년 만에 인사시스템을 대대적으로 바꾼 것도 직원을 최우선시하는 페퍼 교수의 ‘인간중심전략’을 수용한 결과라는 게 미국 경영학계의 평가다. 교육부, 한국직업능력개발원, 한국경제신문사 공동주최로 열린 ‘글로벌 인재포럼 2015’에 참석한 페퍼 교수는 “고몰입, 고헌신, 고성과 등 ‘3고(高) 관리’가 조직의 진정한 혁신”이라고 강조했다.

페퍼 교수 못지않게 인사경영에 분명한 철학을 지닌 사람이 공직 인사혁신을 책임지고 있는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이다. 그는 37년 동안 글로벌 기업 삼성에서 인사업무를 맡아 우수 인재를 발굴하고 키웠다. 지난해 11월 초대 인사혁신처장에 취임한 뒤 민간의 유능한 인재를 잇달아 영입하고, 성과급제를 확대하는 등 공직 사회에 혁신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페퍼 교수와 이 처장이 성과를 내는 좋은 조직을 만들기 위한 조건과 공직사회 혁신 방안 등을 놓고 1시간20여분간 열띤 토론을 벌였다.

▷사회=요즘 한국 사회에서는 성장의 한계에 도달한 기업들이 어떻게 생존해야 할지가 화두입니다.

▷제프리 페퍼 교수=최근 기업들이 왜 성장하려 하지 않을까요. 정말 알 수 없습니다. 많은 기업이 성장 정체를 막는다며 임금이나 직원 수를 줄이곤 합니다. 당장 경제적 수익은 높아지겠지만 그걸로 기업이 성장하는 건 아닙니다. 전략적 문제를 놓치고 있습니다. 성장하지 않는 건 기업 내 혁신이 부족하거나 마케팅 방식, 제품 개발, 제조 효율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지 않는다면 절대 성장의 해법을 찾을 수 없다고 봅니다.

▷이근면 인사혁신처장=기업은 성장해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기업이 성장하지 않으면 사회나 국가에 이바지하는 것은 물론 종업원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삼성의 성장은 종업원에게는 하나의 기회였습니다. 기업과 종업원은 성장이 목표여야 합니다. 그래야 미래 일자리와 새로운 기회가 생깁니다. 기업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성장 동력을 창출하고 혁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업원과 경영자가 그 방향으로 합의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은 성장을 멈추고 도태될 것都求? 과거 미국 포천지가 선정한 50대 기업의 4분의 1은 10년 만에 밀려났습니다. 성장이 멈춘 거죠. 시간이 갈수록 종업원은 더 많은 임금과 승진을 요구할 겁니다. 기업은 자기 능력보다 더 많은 부담을 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저성장의 늪에 빠집니다. 배의 침몰을 막으려면 적정 인원이 내려야 하듯 성장을 위해 기업과 종업원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 혜택을 볼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사회=조직의 최대 성과를 끌어내는 바람직한 리더상은 어떤 것입니까.

▷페퍼 교수=리더는 인간의 삶을 책임지는 존재라고 봅니다. 리더로서 물리적, 심리적으로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리더는 자기 직원들의 건강이나 복리후생을 책임져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통해 직원들이 일에만 매달리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좋은 성과가 나오겠지요.

▷이 처장=맞습니다. 직원들의 복리후생은 생산성뿐 아니라 사회적 비용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복지 및 건강시스템은 사회와 기업 정책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제가 기업에 있을 때 집이 먼 직원들을 위해 곳곳에 버스를 배차해 편하게 출퇴근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개인적 비용과 기업 생산성 비용, 그리고 (출퇴근 교통체증과 같은) 사회적 비용까지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제도개혁에도 불구하고 한국 공직사회의 혁신은 기업에 비해 느리기만 합니다. 시스템이 아닌 다른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입니까.

▷페퍼 교수=싱가포르는 공무원이 민간기업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높은 수준의 보수를 받고 많은 교육과 경력 개발 기회도 가집니다. 이 두 가지를 통해 그들은 스스로 공직의 리더로서 또 전문가로서 사회에 이바지하는 가치가 크다는 점을 인지합니다. 이것이 쌓여 싱가포르는 능력 중심의 공직사회를 확립할 수 있었습니다.

▷이 처장=싱가포르 모델은 성공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공직 분야는 경쟁률이 매우 높습니다. 조직이 개인의 성과보다는 안정성에 더 관심을 두기 때문입니다. 공무원이 되려는 사람은 많지만 공무원으로서 뭔가를 하려는 사람은 적은 것도 같은 이유죠.

▷페퍼 교수=공무원들도 자기가 하는 일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그들의 임무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일반적으로 공무원은 자기 일상업무가 조직과 국가의 목표에 어떻게 이바지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데요. 자신의 목표와 임무 등 성취동기를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인적 관리 기술입니다. 조직 내 개인이 성공사례를 냈을 때 축하하고 성과를 인정해야 합니다. 다수의 공무원 조직은 그러지 못합니다.

▷이 처장=맞습니다. 공무원 조직은 효율이 아닌 공적 가치를 위해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집단 성과와 집단 속 개인의 성과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페퍼 교수=오랫동안 저는 개인 성과를 찬양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한 유명 투자가가 다른 회사로 이직한 뒤 같은 성과를 못 낸 사례도 있습니다. 성과는 개인의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조직의 재능과 인프라 안에서 발휘되기 ㏏?都求? 개인만큼 개인을 둘러싼 환경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사회=한국 공무원의 보직 이동이 너무 잦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 처장=인적관리 분야에서 37년간 일하면서 느낀 인사의 핵심은 ‘신뢰’와 ‘사람에 대한 애정’입니다. 그런데 인사혁신처장에 취임한 뒤 바라본 공직은 그런 애정보다는 공무원 관리의 질과 생산성만을 높이기 위해 1년마다 보직을 바꾸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1년마다 보직을 바꾸면 그 직종에 대한 전문성이 생길까 의문입니다.

▷페퍼 교수=맞습니다. 보직 기간이 많이 주어져야 해당 기술과 경험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충분한 시간이 있어야 배울 수 있고 네트워크도 구축할 수 있습니다.

▷이 처장=산업화 시기엔 제너럴리스트(다방면에 걸쳐 아는 사람) 양성을 목표로 삼았지만 지금은 스페셜리스트(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사람)와 제너럴리스트를 적당히 섞은 인재가 나와야 합니다. 세계 인구의 1%도 안 되는 인구를 가진 대한민국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룰 수 있었던 힘은 ‘인재의 힘’이었습니다.

▷페퍼 교수=그렇죠. 한국이 성공한 첫 번째 이유는 교육에 대한 투자였다고 봅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 과학, 엔지니어링까지 가르치는 등 한국은 교육에 대한 투자가 매우 중요한 가치였습니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근무시간이 가장 길 정도로 근면성도 뛰어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성장보다 더 큰 성장을 이루려면 ‘고몰입’ ‘고헌신’ ‘고성과’ 관리가 필요합니다.

▷이 처장=말씀하신 것 중 ‘고성과’ 관리는 앞으로의 숙제네요. 이미 모든 지식이 세계 어디서나 공평하게 제공되기 때문이죠. 더 이상 지식의 격차는 없어진 사회 속에서 어떻게 고성과 조직을 만들어 낼지가 걱정입니다.

▷사회=조직원들이 혁신작업에 동참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페퍼 교수=사람들이 혁신하지 않는 것은 그 안의 ‘두려움’ 때문입니다. 두려움을 없애는 게 혁신의 첫걸음이죠.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새로운 것을 실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말입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무엇이 혁신을 가로막는지 머리를 모으는 겁니다. 혁신의 장애물에 대한 우선순위를 세워 하나하나 치워버리면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사회=이재창 부국장 겸 지식사회부장 정리=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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