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이 시민 압도하는 파탄 상황
국회도 거리도 대중독재에 마취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폭력에 대한 성찰》에서 주먹으로 할 일을 왜 말로 하느냐고 다그쳤던 사람은 조르주 소렐(1847~1922)이다. 그람시와 무솔리니 모두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폭력주의자. “요즘 노조는 왜 폭력에 호소하지 않는 거지?” “폭력이 사라진 것이 이 시대의 진정한 문제”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렐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도처에서 폭력이 되살아나고 있다. 인터넷에는 폭력에 대한 호소가 넘친다 할 정도다.
파리 테러는 중동 정세의 심각성을 또 드러냈다. 아랍의 봄 5년에 형식적 민주화조차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는 거다. 내전과 분열만, 황량한 사막을 지배하고 있다. 오랜 식민주의의 부작용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제국은 소수를 지도자로 내세워 다수를 제압하는 방법으로 분열의 씨를 뿌렸다. 어떻든 아직은 국민국가를 형성할 역량이 없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리비아, 이집트가 모두 내전 중이다. 사우디는 궁정 쿠데타를 목전에 두고 있다. 낡은 지배구조가 벗겨진다고 곧바로 공화정으로 이행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재확인됐다. 미국이라는 균형핀이 빠지면서 균열과 적대감이 번성하고 있다. IS는 내부 투쟁을 위해 외부의 적을 만들어내는 약삭빠른 전략을 쓴다. 오바마 외교전략의 실패다. 그리고 이제사 4·19도 5·16도 광주도 충분히 이해된다.
민주주의는 실로 어려운 제도다. 백인이거나 유럽인이 아니면서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를 찾기 어렵다.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한국 정도였다. 백인과 유럽인이 아니면서 중화학공업을 건설해낸 나라다. 그것도 독재 체제였기에 가능했다. 그나마 민주주의 수준은 공업화 수준에 비해 아주 낮다. 일본은 천황제 국가요, 한국은 지금도 인민독재, 민중독재 유혹에서 허우적거린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결여 때문에 생겨난 일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자유의 타락, 즉 후진적 방종이 만들어낸 것이다.
민주주의가 단순히 독재의 부재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시민이 인민을 넘어서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대중 폭력의 유혹을 받게 된다. 주말 서울 도심에서의 무법천지는 시민의식을 압도하는 민중주의적 퇴행이다. 소위 ‘87 민주화 체제’ 30년의 일탈이다. 민중은 결코 민주주의를 수용하지 않는다. 민중이나 인민은 대중의 의지를 핑계로 독재정치를 희구하는 존재다. 히틀러가 그랬듯이, 스탈린이 그랬듯이, 북한이 그렇듯이 민중은 언제나 독재자를 필요로 한다. 지난 주말 ‘민중 총궐기’를 선언한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는 그런 허위의식일 뿐이다. 관용은, 민주주의를 아무렇게 해도 좋은 것, 다시 말해 폭력과 착각하도록 만든다. 나는 주권자이므로 공권력 정도는 우습다는 식이라면 민주주의는 끝장이다.
오늘날 한국 국회가 원초적 권력의지에 충만한 조 坪?집단으로 변질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회는 ‘제한된 입법’이라는 개념을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민중주의적 조직으로 부패하고 있다. 그들은 사법, 행정, 입법이 아니라 선출됐으므로 모든 것을 거머쥐고 싶을 뿐이다. 입법과 법, 도덕적 희망과 법률적 처벌을 굳이 구분하기도 싫은 것이다. 그들에겐 민주주의를 지탱할 지력도 경험도 없다.
한국 국회의 대중독재적 시도는 그런 정황을 잘 보여준다. 하나는 국회선진화법이다. 이 법은 헌법이 명시적으로 규정한 의결정족수가 요구하는 것보다 더 강화된, 5분의 3 의결이라는 위헌적 정족수를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령에 대한 국회 심의권도 국회의 우월적 권력의지를 노출시키고 말았다. 더욱 패악적인 것은 인사청문회다. 이는 장관들을 무릎 꿇려 ‘존경하는 의원님’들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서 통과하도록 만든 깡패식 통과 의례다. 국회는 점점 그렇게 민중독재 인민위원회처럼 행동하고 있다.
아랍의 봄 5년의 결과를 직시하거나, 87 민주화 체제 30년의 도시 폭력을 보노라면 우리는 민주주의의 앞날에 대해 절망하게 된다. 민주주의는 그것에 걸맞은 시민이 존재해야만 가능한 제도다.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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